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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료보험/병원 경험

by 봄마을

미국 의료 보험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담은 아래의 브런치 포스팅을 한 지 4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https://brunch.co.kr/@anecdotist/48


사실 이 글은 원래 NIW 영주권과 영주권 소유자의 랜딩에 대해 다룬 (브런치가 아닌) 다른 문서의 일부분인데 NIW 영주권자가 아니더라도 미국 병원 시스템과 의료 보험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따로 브런치 포스팅으로 올렸습니다.


포스팅 후 지난 4년 동안 조회수가 2만 9천 회를 넘기는 등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미국 병원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분도 있었고, 건설적인 지적을 하신 분도 있었고, 거짓말을 한다며 앞뒤 없는 비난을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근거나 논리 없이 욕설과 함께 작성된 댓글들은 작성자 프로필이 연결되는 브런치의 특성을 고려해 그분들의 품위를 지켜드리기 위해, 그리고 새로 글을 읽는 분들의 마음의 평온함을 위해 지웠는데, 어떤 분들에게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반드시 나쁜 제도여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반응도 있었습니다.


이 글을 새로 쓰는 이유는 미국 생활 8년 차에 접어든 현재 시점에서 한 번쯤은 이론적인 설명이 아닌 직접 경험한 부분들을 정리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미국 의료 보험의 개념에 대해 잘 모르신다면 위에 링크한 포스팅을 한번 읽어보고 이 글을 읽으시는 게 이해에 좀 더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Deductible과 OOP Max는 잘 동작합니다


작년에 가족 중 한 명이 병원 신세를 제법 많이 졌습니다. 응급실은 세 번 방문했고 911 전화를 통해 엠뷸런스와 경찰도 두 번 불렀네요. 대학병원 입원 일수도 한 달을 거의 채웠고 그 밖에 특별한 의료 센터에서 치료를 받은 기간은 넉 달이 됩니다. 통원치료는 1년 넘게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이 기간 청구된 병원비는 모두 18만 달러, 그러니까 요즘 환율로 계산하면 대략 2억 5천만 원 정도 됩니다. 하지만 제가 실제로 지불한 병원비는 3천7백 달러(520만 원) 정도입니다.

보험사 온라인 정보 페이지 캡처입니다.


앞선 포스팅에서 이야기했듯이 청구액은 의미가 없고 실제 부담한 병원비가 중요하죠.


1년 500만 원의 병원비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지나치게 부담스럽다고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치료 초반에 OOP Max에 도달했기에 이후부터는 집으로 날아오는 병원 청구서는 모두 $0 가 찍혀 있었고 병원비에 대한 고민 없이 무엇이 최선의 치료인가, 어떤 의사가 이 분야에서 잘한다고 유명한가 하는 부분만을 신경 쓰며 가족을 케어할 수 있었습니다. 동등한 비교가 될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 1인실을 한 달 입원했다면 입원비만 해도 천만 원은 나왔을 거라 생각됩니다. 여기에 매일 치료를 받았던 의료 센터 비용을 포함 여타 다른 모든 비용들을 생각하면 저렴하게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받았다고 느꼈고 특히 한국과 미국의 GDP차이나(총량 기준 17배, 1인당 GDP 2.5배) 평균 연봉 차이를 생각하면 제 보험의 OOP Max 금액이 부담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Health Saving Account라고 하는 세금 혜택이 있는 투자 계좌 이용을 하기 위해 deductable이 높은 보험을 선택했기에 이정도 병원비를 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낮은 병원비를 냈겠지요. 확실히 미국 의료 보험은 감기에는 쓸모없지만 큰돈 들어가는 치료에 장점이 있습니다.


사회 복지 시스템은 잘 동작합니다


치료 중에 주정부에서 지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8주 동안 매주 두 차례 의료 인력이 집을 방문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내 보험이 있으니 보험 처리하겠다고 했지만 제가 보험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해당 방문치료는 주정부 및 지역 의료 서비스들이 참여한 펀드에서 비용이 지불되므로 환자는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며 거절당했습니다.


이 밖에도 무상으로 지원받은 다른 의료 복지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받으면서 이렇게 좋은 복지가 무상으로 지원된다는 부분에 아내와 둘이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세금이 아깝지 않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네요. 언젠가 이 부분에 대해 자세하게 정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자세히 설명하면 치료를 받은 가족의 질병 정보가 공개되므로 할 수 없습니다. (미국에 거주하시고 병을 치료 중이라면 chatgpt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관련된 복지 서비스를 확인하시는 게 좋습니다. 모르면, 못 받습니다.)


적절한 치료를 필요한 시간에 즉시 받을 수 있었습니다


911에 전화하니 경찰과 엠뷸런스가 수분 내에 도착을 했고 경찰차의 에스코트+교통 통제(큰 교차로를 지날 때 앞서가던 경찰차가 교차로 중심에 가서 차를 세우고 모든 차량을 멈춰 세웠고 엠뷸런스는 달리는 속도 그대로 교차로를 지났습니다)를 받아가며 금방 응급실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는 수납 과정 없이 즉시 의료진이 환자를 넘겨받았고 이미 911과 연계되어 환자의 기본적인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기에 제가 모든 걸 처음부터 설명하는 시간을 절약했습니다. (나중에 의료진이 저를 찾아와 다시 확인하기는 했습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의료 상황이었지만 응급실에는 필요한 모든 전문의가 있었고 추가 진료가 필요한데 바로 연결이 안 되는 경우 화상으로라도 연결해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전담 간병인이 환자에게 1:1로 붙어 필요한 부분들을 챙겼기 때문에 응급실 내에서 보호자인 제가 검사나 환자 케어를 위해 따라다닐 필요는 없었습니다. 같은 시간 제게는 다른 소셜워커(Social worker)가 붙어서 보험 정보를 확인하고 이후 절차 등을 설명해 줬는데 간호사, 의사, 소셜워커 모두 친절했고 환자들을 케어하는데 충분한 인력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한국 응급실에서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의료진은 항상 부족했고 환자들은 많아 순서를 기다리는 경우가 잦았는데 제가 경험한 미국 응급실은 의료진들이 넘쳐나서 모든 환자가 도착 즉시 1인 처치실로 옮겨져 필요한 케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치의 병원이 입원 병원과 가까운 탓도 있을 것 같은데, 입원 후 응급실에서 환자 기록을 보고 주치의 병원에 연락했고 몇 시간 뒤 주치의가 응급실을 찾아와 환자 상태를 함께 확인하고 보호자인 저와 앞으로의 치료 방향이나 보호자로서 알아야 할 내용들에 대해 이야기도 했습니다. 응급실 의사에게 이미 들은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좀 더 마음이 편했습니다. 주치의는 환자의 상태와 치료 내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에도 종종 치료 방향에 대한 상담을 해주곤 했습니다.


병동 입원은 마음이 편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병실은 화장실이 딸려 있는 1인실이었습니다. 환자 상태에 따라 다르리라고 예상되는데, 제 가족의 경우 간병인이 24시간 병실에 상주하며 환자를 케어했습니다. (3교대인지 4 교대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간병인이 바뀌었습니다). 간병인들과 잠깐 이야기해 본 바로 그들은 기본적으로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는 게 원칙이라고 했습니다. 간병인들의 나이대는 다양했는데 의과대학 대학생도 있었고 나이가 좀 있는 노부인도 있었습니다.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등 시간을 보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었는데 휴대폰은 금지였습니다. 환자를 절대로 혼자 두지 않았으며 병동을 가볍게 걷고 싶다거나 하는 경우에도 간병인들이 늘 함께 따라다녀서 제가 함께 움직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병실 안에 환자를 위한 침대 말고는 의자만 있을 뿐 누울 수 있는 가구류가 없고 침구도 없어서 보호자 역시 병실에서 잠을 자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처음엔 보호자가 병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게 가능한지 알지 못했습니다. 병동을 떠나고 싶지 않아 담당 간호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병실에 계속 있고 싶은데 가능한지 물어봤는데 이왕 있을 거면 편하게 쉬라면서 별도의 보호자용 룸을 제게 배정해 줬습니다. 보호자 숙소는 병동 같은 층에 있었는데 샤워실과 화장실이 포함된 원룸 같은 구조였습니다. 침대도 환자용 침대가 아니라 일반 침대여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이 숙소 이용은 무료여서 청구서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런 공간이 보호자에게 제공되는 게 미국의 모든 병원에서 의무적인 사항인지는 모르겠습니다.


Nurse station에는 항상 간호사와 의사들이 상주하고 있어서(새벽 시간에도 상주하는 의료진 수가 많다고 느꼈습니다) 필요시 즉시 케어를 받았습니다. 근무조가 바뀔 때마다 담당 의사와 간호사가 찾아와서 보호자 및 환자와 상태를 확인하고 자신이 인수받은 환자 차트 내용이 맞는지를 항상 확인했습니다.


환자 식사는 일률적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레스토랑처럼 메뉴가 있고 환자가 원하는 음식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응급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식사 제한을 해야 하는 경우엔 거기에 맞게 메뉴가 제한됩니다. 다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병원식은 아주 맛있거나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끼니 때우는 느낌의 식사라 보호자들이 환자 먹을 걸 싸 오는 경우들도 많아 보였습니다. 저희 가족도 그렇게 했습니다.


환자 치료와 비용 청구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모든 과정에서 치료를 받기 전 비용 이야기가 나온 적은 없습니다. 응급실부터 병실 입원까지 어떤 단계에서도 수납을 먼저 하고 오라거나 비용이 얼마인데 치료를 받을 건지 말건지를 보호자나 환자에게 물어보는 일은 없었습니다. 의료진도 보호자도 현재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가 뭔지만을 이야기했고 거기에 집중해서 모든 게 진행됐습니다.


입원하거나 응급실에 가면 처음에 보험정보를 확인하는데 이때 의료보험이 있고 없고에 따라 어떻게 절차가 달라지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2023년 통계를 보면 미국 전체 인구의 8%가 보험이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보험이 있었고, 해당 병원이 제 보험을 받는 것과 OOP Max 이상으로 병원비를 낼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비는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청구서는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집으로 날아옵니다. 이메일로 올 수도 있고 우편으로 올 수도 있는데 대부분 청구서가 먼저 오는 게 아니라 어떤 치료를 받았고 얼마가 청구될 거라는 걸 알려주는 우편이 청구서보다 먼저 옵니다. 내용을 확인하고 금액에 이상한 게 있으면 병원 혹은 보험사와 미리 확인하라는 의미입니다. (청구 내용을 미리 확인하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병원과 보험사간 금액 차이가 나서 큰 금액이 청구되기도 하는데 휴먼에러도 있고 시스템적으로 반영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화해서 확인하면 수정됩니다. 모든 게 처음부터 딱 맞아떨어지고 깔끔해야 하는 한국인 입장에서 확실히 불편한 것 중 하나였습니다.)


청구서는 한 곳에서 하나가 오는 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여러 개가 옵니다. 엠뷸런스 이용 비용, 응급실 이용 비용 등등이 서비스 주체에 따라 각각 청구되기 때문에 내가 언제 어떤 케어를 받았는지 잘 기억하거나 메모해 놓지 않으면 이 청구서가 뭐에 대한 청구서인지 많이 헷갈립니다. 당연하지만 이미 지불한 의료비가 보험의 OOP Max에 도달했다면 청구서에는 $0 가 찍힙니다. 비용을 청구하는 주체가 여러 곳이다 보니 전체 의료비가 OOP Max를 넘는 금액이 청구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일단 지불했는데 이렇게 지불된 금액 중 OOP Max를 넘는 금액은 나중에 환불이 되었습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OOP Max를 넘겼는데, 이번엔 청구서가 온 뒤 지불하지 않고 기다려 보니 금액이 경감된 청구서가 다시 배송되었습니다. 미국 병원비는 서둘러 내지 말고 내가 받은 치료와 청구한 기관, 청구된 금액등을 모두 확인해 본 뒤에 내는 게 좋습니다.)


그 외에, 좀 더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보면;


건감 검진은 1년에 한 번씩 받고 있습니다


제 이야기입니다. 저는 몇 가지 만성 질병이 있고 그래서 6개월에 한 번씩 주치의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습니다. 일 년에 두 번 검사를 받는 셈인데, 한 번은 병원비가 청구되지만 다른 한 번은 1년에 한 번씩 인정되는 건강 검진으로 처리해서 보험사가 전액 지불합니다. 얼마 전에는 나이가 이제 됐다면서 대장내시경 검사도 처방해서 받았는데 이 역시 보험사에서 지불했습니다.


한국처럼 별도의 건진센터가 있어서 청력 시력 포함 정말 모든 걸 원스탑으로 검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영상의학이나 혈액검사 등 일반 병원에서 하기 힘든 검사들만 하는 전문 검시 기관들이 있어서 이곳들을 이용해서 건강검진을 합니다. 제가 다니는 병원은 제 건강 정보를 의료 서비스 회사 한 곳과 연계해서 제공해 주는데 매년 각종 수치들이 어떻게 바뀌는지 이력도 확인 가능합니다. 주치의와 만나서 건강검진 중 어떤 건 주치의에게 검사받고 어떤 건 전문 병원으로 전원 받아서 검사받는 식인데 어쨌든 건강 데이터는 주치의가 관리합니다.


한국처럼 X-ray나 CT 같은 검사가 건강검진에 필수로 들어 있지는 않습니다. 미국에서 이런 방사성 검사는 증상이 있거나 환자의 요청이 있어야 진행하며 이빨이나 눈 관련 검사는 치과와 안과에서 1년에 한 번씩 예방 차원 검사를 받고 보험사에서 전액 지불합니다. 어쨌든 혈액 검사와 심전도를 비롯 필수 검진등은 잘 받고 있고 어지간한 질병들은 잘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주치의 권고로 심장 쪽 CT만 별도로 촬영했는데 전문 CT/MRI 기관을 이용했고 비용은 10만 원 정도 나왔습니다. (다행히 이상은 없었습니다)


병원 체계가 한국과 다릅니다


종종 미국에서 아파서 주치의 예약하려 했더니 며칠 뒤에나 가능하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접합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한국과 미국 병원 시스템 차이를 생각해지 못해 발생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과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은 아마도 주치의 병원, urgent care, acute care hospital 일 겁니다. 이런 기관들은 붉은색으로 표시했습니다.


주치의(PCP: Primary Care Provider)는 내 건강 관리를 1차로 담당하는 종합비타민 같은 존재입니다.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시급하지 않은 질병 관련 상담을 할 때 역할을 합니다. PCP는 발병 후 치료하러 만나기보다는 발병하기 전 평소 건강 관리를 위해 그리고 간단한 질병의 치료를 위해 방문합니다. 환자들의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일정수 이상의 환자가 등록하는 걸 막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전화해 보면 새로운 환자는 받지 않는다고 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환자 수가 너무 많아지면 말 그대로 예약했을 때 지나치게 오래 기다려야 하니까요. 기본적으로 여기는 치료보다는 건강 관리(혹은 만성질병 관리)와 몸에 이상을 느꼈을 때 어떤 병이 의심되고 어떤 전문의를 만나면 되는지를 상담해 주는 방향성을 조언해 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의사가 아닌 전문간호사가 PCP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PCP는 내가 지금 당장 크게 아파서 의사 전문적인 진료가 필요할 때 찾는 곳이 아닙니다. 때문에 아파야 병원을 찾는 문화가 있는 한국인들에게 미국의 PCP는 이해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어전케어(Urgent Care)는 심각한 질병 혹은 부상이 아니지만 가급적 빨리 의사를 만나봐야 할 때 이용하는 병원입니다. 대부분 예약 없이 바로 병원을 찾아가서 접수 후에 기다리다 의사를 만나는 구조입니다. 어찌 보면 한국의 동네병원과 가장 비슷합니다. 위에서 예로 든, 지금 바로 의사를 만나야 하는데 며칠 뒤에나 주치의가 가능하다고 하는 건 Urgent Care를 찾아가야 하는데 주치의에게 연락한 잘못된 케이스입니다. 평소 내 보험을 받아주는 Urgent Care 위치를 확인해 뒀다가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바로 찾아가면 됩니다. 제 경우도 아이들이 독감에 걸린 것 같았을 때, 학교에서 운동하다 넘어져서 다쳤을 때, 갑자기 심하게 배가 아프다고 했을 때 모두 주치의가 아닌 Urgent Care를 바로 찾아가서 의사를 만났습니다.


전문병원(Specialized hospital)은 말 그대로 특정 질병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입니다. 보통 주치의가 특정 질병이 의심되니 찾아가 보라고 refer를 해주면 가게 됩니다.


응급실(ER: Emergency Room)은 Urgent Care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큰 부상 혹은 심각한 급성 질병을 갖게 됐을 때 대응하는 기관입니다.


일반병원(General Hospital) 은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의 종합병원 혹은 대학병원과 비슷합니다. 의대와 연계되어 있는 경우도 많고 입원 병동도 보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진료과목을 모두 대응합니다. 장기/단기 치료 환자 모두를 대응하며 수술도 가능합니다.


급성치료종합병원(Acute Care Hospital)은 General Hospital의 한 형태지만 좀 더 응급/단기 치료에 집중하는 병원입니다. 환자들은 수술이나 치료 후 장기로 입원하지 않고 보통 30일 이내에 퇴원하거나 다른 일반 병원으로 전원 됩니다. 응급 상황 치료에 특화된 이런 병원의 자원을 장기 치료 환자에게 묶어두지 않기 위함입니다. 많은 경우 응급실과 붙어 있어서 24시간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미국 Hospital의 91%가 이런 급성치료종합병원입니다. 가끔 한국인 이민자들 중에 수술이나 급성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상황에서 아직 다 낫지도 않았는데 퇴원시켰다며 분노를 표출하는 분들을 보는데 미국 병원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런 곳들은 완치가 아니라 응급 상황만 넘기는 게 목적이며 새로운 응급 환자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자 환자를 퇴원시키거나 전원 시킵니다.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더라도 단기적으로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면, 즉 장기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역시 퇴원시키거나 전원 시킵니다. 여기는 철저하게 단기/응급 수술/치료를 위한 병원입니다. 퇴원이 완치와 같은 의미인 한국 병원 시스템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개념이기는 합니다.




이밖에 또 어떤 걸 적어야 하나 싶네요.


저는 전반적으로 미국 의료 시스템과 의료보험에 대해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진료를 필요할 때 받을 수 있다는 전문성과 즉시성, 그리고 터무니없는 비용 증가를 막아주는 의료보험의 안전판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 의료 체계도 나름 문제들을 많이 안고 있고 사회적으로 더 나은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건 사실입니다. 어떤 보험회사 사장이 살해된 경우도 있었죠. Covid-19 대유행 때 대규모 해고와 함께 직장의료보험을 잃은 뒤 Corona virus에 걸린 사람들이 의료보험 없이 거액의 진료비를 맞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미국 전체 인구의 8%가 의료보험이 없는데 이들에게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위에서 설명한 것과는 또 다른 세상일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BBB 법안 때문에 오바마케어 자격이 박탈되는 사람들도 많이 나올 테니 이 역시 의료 보험의 사각지대가 늘어나게 되는 상황이죠. 넓은 나라인 만큼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회사가 보험 지원을 많이 해주는 곳도 있고 지원이 없는 곳도 있습니다.


이렇듯 미국 의료 시스템의 불합리성이 크게 표출되는 특정 상황이 있고 그걸 경험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를 하나하나 들고자 하면 아마 끝도 없이 나올 겁니다.


하지만 불합리한 의료진 혹은 의료서비스, 약속한 의료비 지급을 피하기 위해 애쓰는 보험회사 등의 문제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런 문제들은 한국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불합리들이니까요. 여기서 그 내용들을 다룰 생각은 없습니다만, 한국 의료 시스템만이 갖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도 많죠. 그중에는 한국 의료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의심할 정도로 심각한 것들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의료 최고". "미국 의료는 지옥"이라고 이분법으로 고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구분할 수도 없을뿐더러 저는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이나 인터넷에 묘사되는 미국 의료 시스템이 100% 진실이라면 여기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나라가 된 지 오래겠지요. 제가 경험한 미국 의료 시스템은 충분히 지속 가능한 장점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미국 역시 시스템적으로 자신이 가진 불합리성이나 약점을 해결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바마케어가 그렇고, 코로나 사태를 통해 부각된 공공보험의 필요성을 인지한 각 주가 내놓은 공공보험 프로그램들도 그렇습니다.




주위 이민자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인데 미국에 이민자로 랜딩하면 다음의 것들을 반드시 먼저 처리해야 합니다.


(1) 의료보험을 가입하기

(2) 가입한 보험을 받아주는 Urgent Care를 찾아 위치를 저장해 놓기

(3) 가입한 보험을 받아주는 PCP를 찾아 등록한 뒤 첫 검진을 받기

(4) 가입한 보험을 받아주는 ER을 찾아 위치를 저장해 놓기


등입니다. 미국과 한국은 다릅니다. 한국이 빨리빨리 문화라면 미국은 미리미리 문화입니다. 주치의 등록 등의 일들은 아프기 전에 미리 해놓는거지 아프고 나서 급하게 진행할 일이 아닙니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미국에서 살기로 결심했다면 미국 의료 시스템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민은 단순한 서류상 주소지 변경이 아니라 '뿌리를 뽑아 터전을 옮기는' 일이기에 새로 뿌리를 내릴 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이민의 필수 조건이겠죠. 자꾸 비교하며 투덜거리기보다 새로운 땅의 장점을 찾아내고 받아들이는게 좀 더 나은 이민자의 삶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인 우리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우리의 자녀들은 더 긴 시간 이방인으로 떠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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