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사는 마을에는 야생 동물들이 제법 많이 산다. 애초에 마을이 넓은 숲 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주위에 사람의 발길은 커녕 눈길도 닿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숲이 많아 동물들이 사람들을 피해 몸을 숨길 곳이 많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마을에 내려와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잦다. 여기에 더해 집집마다 정원이 잘 되어 있고 부드러운 잎채소를 키우는 집들도 많아 이런 동물들이 먹을 것들도 많고.
육식부터 초식 혹은 잡식 동물까지 다양하게 있고 철저하게 사람 눈을 피하는 동물도 많은데 라쿤, 그라운드 호그, 붉은 여우, 코요테가 자주 언급된다. 라쿤과 그라운드 호그는 나도 제법 골치를 썩었는데, 음식을 물에 씻어 먹는 라쿤의 특성 때문에 뒷마당에 수영장이 있는 우리집에 자주 출몰했었다. 어느집인가 자꾸 바게뜨 빵을 야생 라쿤에게 먹이로 줬는데 이 라쿤이 그 바게뜨를 물고 우리집에 와서 수영장에서 씻어 먹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러다 수영장에 빵을 빠뜨려서 아침에 수영장 스키머를 열어 보면 팅팅 불어 있는 바게뜨를 찾는 적도 있었다.(빵을 잠깐 놓쳤는데 갑자기 어디론가 빵이 빨려들어가 사라지는걸 본 그 라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라운드 호그는 늦봄부터 뒷마당에 드나들기 시작해서 아내의 올해 채소 농사를 망쳤다. 마을에 다름쥐와 토끼들이 많은데 이런 작은 동물들을 노리고 여우(우리 마을에 출몰하는 여우는 붉은여우인데 어린왕자 삽화에 등장하는 여우와 똑같이 생겼다.)와 길고양이들이 상주한다. 코요테는 상주하지는 않아서 정말 드물고 일년에 한번 정도 어딘가에서 출몰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하지만 가장 눈에 많이 띄는건 사슴이다. 압도적으로 많고, 덩치도 커서 눈에도 잘 띄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결정적으로 부드럽고 맛있는 풀이나 채소를 찾아 주택가를 돌아다닌다. 벌건 대낮에서, 밤까지 쉬지 않고 계속 돌아 다닌다. 심지어 갓 태어난 새끼를 조용한 주택 뒷마당에 숨겨놓기도 한다.(아직 먼 거리 이동이 어려운 갓 태어난 새끼의 경우 어미가 한곳에 숨겨놓고 자신은 돌아다니며 먹이 활동을 한 뒤에 다시 돌아와 돌본다. 몇 해 전엔 우리집 뒷마당을 아예 보금자리로 삼은 새끼와 어미가 있어서 뒷마당을 잘 쓰지 못했다. 뒷마당에 나가면 새끼가 놀라서 도망갈까봐.)
동네를 운전할때도 사람들이 길로 뛰어 나올까봐 걱정하는게 아니라 사슴이 뛰어 나올까봐 걱정하며 운전한다. 동네 산책을 하거나 러닝을 하면서도 사슴을 자주 마주치는데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다. 동네 초등학교는 넓은 잔디 운동장이 있는데 아이들이 체육 활동을 하는 동안 구석에선 사슴들이 풀을 뜯고 있을 정도니 정말로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
처음 이 마을에 자리 잡았을때는 나도, 아내도, 아이들도 모두 사슴이 이렇게 많이 마을을 돌아다닌다는 사실에 신기해 했었는데 이제는 그냥 무덤덤. 오히려 집 근처에 오면 얼른 다른 곳으로 갔으면 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풀 뜯다가 배변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슴똥은 작고 동글동글한 구슬같아서 치우기가 번거롭기 때문. (그나마도 예전에나 치웠지 이제는 그냥 잔디밭 거름이 되라.. 하며 놔둔다. 귀찮아서 매일같이 못 치운다.)
그래서 난, 우리 마을을 사슴의 마을 이라고 부른다. 마을에 사슴들이 많은 사슴의 마을. 언제까지 이곳에 살지는 모르겠다. 아내와 현재 이야기 한 바로는 막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독립하면 이사를 가자는 쪽인데, 정말로 여기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면 다른건 몰라도 이 많은 사슴 무리는 그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