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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Sep 21. 2021

벌써 3년 혹은 이제 겨우 3년


미국에서 이민자로 맞이한 첫 아침 사진




2018년 6월 22일로부터 3년이 됐습니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LA 국제공항에 도착한게 2018년 6월 21일. 해가 떨어진 뒤에 간신히 숙소를 찾아가 골아 떨어졌다가 다음날인 6월 22일 새벽같이 눈을 떴지요. 그렇게 맞이한 미국에서의 첫번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 붙어 있는 창문과 블라인드가 시야에 들어왔고 잠시 그대로 누워 응시하다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블라인드를 보면서 밝아오는 창문과 아직 어두 컴컴한 방 천장을 보면서 마치 한칸한칸 계단을 밟아 오다가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던져지는 내 삶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던져지는게 아니라 뛰어드는 거였지만.


수없이 다녔던 미국 출장 덕분에 미국에서 맞이하는 아침이 제게 특별한 경험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잠시 머무는 입장으로 방문한 것과 정착을 하기 위해 방문해서 맞이하는 아침은 정말 다르더군요. 일단은 1년쯤 쉬면서 몸건강, 마음건강을 되찾고 생각해 보자는 생각으로 넘어오기는 했지만 가장인 제가 고정 수입원이 없다는 사실은 랜딩 첫날부터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왔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무모해보이기까지 하는 결정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고정된 수입원도 있고 어느 정도 정착도 했으니 훨씬 나은 상황인 것 같지만... 한번 더 해보라고 하면 못할 것 같습니다.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지인들과 공교롭게 지난 1주일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연락이 됐습니다. 전직장에서 함께 고생하다 같은 시기 이민을 와 타주에 살고 있는 동료와 서로의 미국삶이 어떤지 한참 이야기 했고 한국에 남아 있는 친구, 동료들과도 이래저래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습다. 그들의 시선에는 내가 이민을 가서 한국에서보다 더 즐겁게 생활을 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들의 관점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서 '삶'이라는 것에 대해 참 여러 생각이 들었습다. 저는 미국에 와서 단 한번도 단단한 바닥을 딛고 서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도전을 할 때마다 불꺼진 볼링장에서 볼링을 치는 기분이었으니까요. 한국에서의 삶이라고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년 혹은 내가 50세를 넘긴 뒤의 일에 대한 불안이 아닌 당장 오늘 문제가 터질 수도 있다는 이민자 특유의 극단적인 불안감은 하루하루를 survival 한다는 기분으로 살게 만들었습니다. 일상에서 오르락내리는 불안의 크기가 비교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요.


하지만 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 보나마다 '한국으로 돌아올거냐' 라는 질문이 나올텐데 그건 또 아니니까요.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라고 입을 여는 순간 내 모든 설명은 한겨울 입깁처럼 의미 없이 흩어져 버릴 테니까, 아예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사실 저도 잘 설명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디 삶이 이분법적으로 어디가 더 낫다 아니다로 말할 수 있는 존재던가요. 더구나 이민은 왕복 티켓이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또 다른 이민일 수 밖에 없으니 어지간해서는 선택지에 넣기 어려운 옵션입니다.


어떨땐 한달전에 랜딩한 것 같다가도 어떨때는 10년전에 랜딩한 것 같다는 생각이 교차하는, 그런 애매한 3년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3년 혹은 이제 겨우 3년.


시간은 빨리 흐르고, 그 안의 일상은 느리게 갑니다. 이민자의 삶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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