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3년차 육아휴직 중인 아빠로 만 2년을 가족을 돌보았습니다. 그때 써놓았던 기억들을 세상에 꺼내놓아 봅니다. 아래 글은 육아휴직 일년차 때 썼던 글입니다.
'원하는 나'와 '진짜 나'는 분명 다르다.
우리 첫째 아이(남, 9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어떤 상황이나 대상이 통제가 안 되면, 심각하게 떼를 부립니다. 예를 들어, 받아쓰기를 했는데 두세 개 틀리면 한 30분 동안 웁니다. 아빠인 제가 나무라지도 않고, "다음에 잘하면 돼", 아! 아빠는 네가 빵점을 받아도 사랑하고, 백 점을 받아도 사랑해!"라고 육아서에서 배운 대로 얘기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들은 또 상대방의 반응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만 말합니다. 뜬금없이 자신이 봤던 괴물 얘기나, 유튜브의 마인크래프트 방송 얘기만 하고, 남의 말은 잘 안 듣습니다.
자기주장 강하고, 자기 말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어릴 때 순했는데 어찌 우리 아이는 할아버지를 쏙 뺏을까?" 이런 생각으로 수년을 키웠는데, 어느 날 아내가 말합니다. "첫째가 자기 마음대로 안 될 때 짜증 내는 거 자기하고 똑같아!" 둔기로 뒤통수를 쾅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약속시간에 늦거나 하는 걸 잘 못 참습니다. 약속시간에 늦을 거 같으면 가족들을 다그치고 서두르게 만드는데 그 와중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혹은 아내가 퇴근 빨리한다고 하고, 늦게 오게 되거나 하는 상황에서, 설령 이유가 합당해도 짜증이 납니다. 물론 속으로만 짜증 내고 인내하기도 하지만, 짜증을 확 내버리기도 하지요. 요즘은 이전보다 비교적 잘 이해하고 참는 편인데, 그래도 표정은 굳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구나. 아이가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 오면 짜증 내는 거, 정도는 달라도 내 모습이었구나!" 내가 원하는 나는 '순한 사람',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이지만, 아내 눈에는 아들이나, 나나 오십 보 백 보였던 것입니다. 이후로 아들의 짜증이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이전에는 또 우네 혹은 또 짜증 내네! 아~ 도대체 얘는 누굴 닮아서 이러나?" 이랬다면 요즘은 "이 모습을 내가 잘 훈육하지 못하면, 커서 여러 사람 힘들게 하게 되겠구나. 나부터 고치고, 아이에게도 할 수 있다고 격려해야겠다."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문제를 인식하니 아들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마음이 넓어진 거 같습니다.
감정도 뿌린 대로 거둔다.
여러 육아서들을 공통적인 지침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라!'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아이는커녕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사랑했던 적이 있던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벌, 직장, 집, 자동차, 연봉 여기저기 비교하며 불행하기 바쁘죠.
저는 아이를 낳기 전부터 평생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아빠를 만나면 포옹부터 하는 편한 존재로 아이들에게 기억되고 싶습니다. 현실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아침에 학교가 늦을 거 같으면 고성을 지릅니다. " 빨리, 빨리 안 움직여?", "아빠 말 무시하는 거야?" 이제 10살도 안된 아이들이 아빠 고함소리에 겁에 질려 긴장하고 서두르는 모습이 보기에 안쓰러워, 고함을 친 날은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거의 매일 아침마다 "고함 금지!, 짜증은 내 문제다!" 이런 식으로 Not To Do List를 썼습니다. 아이들이 깨기 전에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쓰기를 통해 의식화하니, 소리 지르려 다가 참아지는 게 가능했습니다. 몇 달 꾸준히 썼고, 집은 이전보다 평화로워졌습니다.
요즘 아이는 아빠는 친절한 성격이라고 닮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고, 잘 때 제 볼에 뽀뽀도 해줍니다. 저에게 이전보다 훨씬 더 친절합니다. 친절을 베풀었더니 친절이 돌아왔습니다. 이런 걸 기대했던 게 아닌데, 불과 석 달 만에 변화는 아주 뚜렷했습니다.
남편이 살림을 하면 여자가 된다.
저는 그다지 여성스러운 성격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자 같다고 느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아이들 돌보는 일은 감정이 많이 필요합니다. 위해서 언급한 대로, 한번 말해도 안 듣기 때문에 여러 번 '참고-타이르고-설명하고’, '참고- 타이르고-설명하고'의 무한 반복입니다. 감정의 소비가 많으니, 감정적으로 누가 날 좀 위로해주고 격려해 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생떼를 달래느라 진이 다 빠져서 식세기에 그릇을 넣고 있는데, 아내가 퇴근을 합니다. 육아의 힘듦을 토로하니 솔루션을 제시하고 자빠졌습니다. 내가 원한 건 "우리 남편, 아이들 돌보니라, 힘들지? 고마워!" 정도인데, 묻지도 않은 처방을 제시하니 서러움이 북받칩니다. "가만!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대산데?", 몇 년 전 아내가 육아 휴직하고 제가 솔루션 제시하고 자빠졌던 그때, 아내에게 듣던 바로 그 말을 제가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감정노동을 많이 하면, 우울하기도 하고, 위로도 많이 필요해지는 것이지, 그것이 남녀의 차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여태껏 저는 여자라는 존재는 '얘기하면 잘 들어주고, 위로받기를 원하는 공통된 특징이 있는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자의 특징도 아니고, 남녀의 차이도 아니고, 감정 노동을 누가 하느냐의 차이였습니다. 감정노동을 많이 하면 위로가 필요하게 될 뿐입니다. 그게 남자든 여자든 상관이 없습니다.
반면에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매뉴얼대로,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사고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러다 집에 오면, 종일 하던 대로 논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루 종일 하던 대로 그냥 하는 건데, 육아하는 사람은 감정이 팍! 상합니다. 마음(감정)을 알아줘야 풀리는걸, 해결책(논리)을 제시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친구하고 관계가 힘들어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숙제하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