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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는치료사 Mar 29. 2024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우는 아이와 부러진 주걱(2)

주걱(조리개)을 바닥에 힘껏 던졌던 그날,



첫째 아이가 제가 보기에는 사소한 일로 울었기에 분개했고, 화가 치밀어 올랐었습니다. 던지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이는 저의 분노를 느끼고 다급히 가방을 메고, 처음으로 점퍼와 마스크까지 완전히 준비된 채로 초조하게 아빠의 분이 풀리기를 기다렸습니다. 


급하게 입은 점퍼의 깃은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 있었고, 가방끈은 양 어깨 똑바로 올려지지 않은 어설픈 모습이었지만 아이는 아빠가 왜 화났는지 알고 있었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거 같습니다. 


"화내서 미안하다."라고 감정을 수습하고 아이들을 학교로 보냈지만 당연히 아들도 딸도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아내는 "괜찮아. 그럴 수 있는 거야."라고 위로하였지만 저는 반년 넘게 끊었던 담배를 다시 핀 거 같은 실패감이었습니다.(실제로 저는 담배를 6년을 폈었고 끊은 지 19년이 넘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화가 치밀어 차올랐는지 궁금했습니다. 고함을 지르지 않았어도 고성을 지른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공포 분위기가 집에 가득 넘쳤었고, 아이들은 무서웠을 겁니다. 감정을 해부해 보고 싶었습니다. 


분노의 이유를 알고 고치고 싶었습니다. 또 이런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올렸습니다.



내 안에 너(상처) 있다.


"내 안에 너 있다."


이동건 씨가 '파리의 연인들'이라는 드라마에서 했던 명대사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마음에 있다는 말로 당시 엄청난 화제였었죠. 그렇게 내 안에 부모가 준 사랑, 친구나 선생님이 준 사랑만 가득하면 좋겠습니다만, 제 안에 상처는 또 말썽을 일으킵니다.


'나의 부모님이 이 책을 읽었더라면'이라는 책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나의 감정의 원인이 부모로부터 온 상처 일수 있고, 그 상처로 인해 아이들의 감정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감정을 인정해 주라는 것입니다. 


감정을 억압당한 아이는 정작 꼭 해야 할 얘기를 하지 못하게 되어, 부모와 사이가 좋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성추행을 당해도 평소 부모님의 감정 억압적 태도로 말 못 한 아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이가 학교에 늦어서 울었을 때 분노했던 이유는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으로 올라갑니다.



윤선생 영어교실이 내게 준 공포


초등학교 때,  전 날에 공부한 걸 그다음 날 아침 일찍 선생님이 전화해서 확인하는 시스템의 학습지인 '윤선생 영어교실'이라는 걸 했었습니다. 


아버지는 없는 형편에 공부는 시켜야겠다는 의지가 강하셨습니다. 귀찮았던 공부를 안 하고 그냥 잤고, 다음날 아침 일찍 비몽사몽 전화를 받았는데, 답변을 잘 못하고 흐리멍덩한 제 모습에 화가 난 아버지는 통화 중인 저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하셨습니다. 


소리 지르는 것은 여러 번 봤지만 욕설은 처음 들었는데, 그 소리를 수화기 너머 선생님이 들으시고 겁을 먹고 벌벌 떨며 애써 수업하시던 그 말투가 기억납니다. 저는 창피했고 무서웠습니다.


아버지는 없는 집에서 아까운 돈을 써서 학습지를 시켜줬는데, 열심히 하지 않는 제가 답답했을 겁니다. 

아버지는 어릴 때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아버지가 안 시켜줘서 못했었는데, 저는 할 수 있는 환경이 있는데도 하지 않았던 것이 화가 났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할아버지는 여자문제 도박문제 등으로 가정을 안 보살피는 사람이었고, 그 시절의 아버지는 그런 상처들로 화가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자식인 저에게 가감 없이 자주 보여 주었습니다. (나중에 신앙을 가지시고 화내는 빈도가 많이 잦아지셨지만 그땐 이미 제가 서울로 가버린 이후였습니다.) 


저도 30대가 되고, 삶의 어려움도 겪고 신앙도 생기면서 아버지의 삶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고 측은함을 느꼈던 거 같습니다. 같은 남자로서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를, 부모님의 아무런 도움도 없이 홀로 짊어지셔야 했던 아버지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완전히 용서했고, 아버지와 비교적 사이좋게 지내다 의료사고로 갑작스레 아버지를 천국으로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주신 사랑만 기억하고 싶었고,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처는 세월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내가 분개했던 이유

  

1. 무의식은 상처를 기억하고 따라 한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울던 아들이 답답해서, 주걱을 던지는 내 모습은 안타깝게도 저의 아버지를  몹시 닮아 있습니다.  


나의 무의식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강력했던 자극에 영향을 받았고, 수십 년이 지나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분출이 되었습니다. 


상처가 가슴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무의식은 의식과 다르게 그런 '폭력적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으로 카테고리를 옮겨놓지는 못했나 봅니다.


2. 아들을 질투한다. 


아버지는 학벌에 대한 열등감 컸었습니다. 그래서 남자인 저에게는 특별히 교육 강요가 심했고 학원이나 과외를 시켜줄 때마다 "너는 마음껏 공부만 하면 되니, 얼마나 좋냐?" , "네 아빠는 네 할아버지한테 10원도 도움 못 받고 결혼했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나의 부모님이 이 책을 읽었더라면' 책을 보니 많은 부모가 자식에게 질투를 하지만 인정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솔직히 저는 아이가 가끔 부럽습니다. 모든 면에서 저보다 풍부하고 풍성해 보이는 아이가 가끔은 부럽습니다. 제가 아버지에 당한 거(?)에 비해 저는 충분히 잘해 준다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그 질투는 가끔 화로 돌변한다는 걸 인정해야겠습니다.


3. 하필 그날 "고함 금지"라고 안 썼다.


저는 거의 매일 아침 NOT TO DO LIST를 씁니다. "고함/한숨 금지, 짜증은 내 문제다"라는 식으로 씁니다. 


하필 그날은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고 안 썼습니다. 아직은 저는 쓰지 않고는 행동 변화가 안 되나 봅니다. 아직은 완전히 변한 게 아니니 계속 써야겠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이런 저의 모습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드실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신이 준 상처를 이겨내보려고 아직도 애쓰는 아들을 천국에서 보신다면 어떤 마음이 드실까요? 


아버지도 아마 미안해서 눈물이 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아들아 내가 상처줘서 미안하다." 라고 얘기한다면 저는 아마


"아빠, 아빠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잖아. 할아버지가 너무 아프게 해서 그런 거 잖아. 아들 진짜 괜찮아."


라고 말해 줄 거 같습니다.


저를 위해 많은 희생을 하셨던 아버지는 빈번한 분노로 가족들에게 상처주는 성격을 자신의 문제로 여기셨고 점차로 좋아지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아직도 저는 아버지가 너무 보고싶고,자랑스럽지만  상처를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대물림할 수는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만이 온전한 사람을 만든다.'라고 믿고 하루하루 감사하며 깨달은 것들을 실천하며 살아가 보려 합니다.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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