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6-관계의 주인은 나다(친구편)

관계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세 가지 이유

by 아빠는치료사

우리는 많은 관계 속에 산다.


일과 나, 친구들과 나, 직장동료와 나, (시)부모님과 나 등이 대표적인 관계다.

내가 내일을 싫어하면, 친구들이 싫으면, 직장동료들이나, 시부모가 미우면 내 삶은 비참해진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기는 참 힘들다.


왜냐하면 관계에는 시간과 정성이라는 것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긴 시간을 통해 맺은 관계일수록 끊어내기가 참 어렵다.


오늘은 친구와의 관계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금 내 주위의 친구는 내가 선택했는가?


일반화할 수 없겠지만, 낮은 자존감으로 오래 살아온 아내를 얘기를 들어보니,

큰 특징이 있었다. 친구관계가 굉장히 수동적인 것이다.


하루는 단짝친구와 관계에 해답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을 들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오랫동안 교제한 친구가 큰 문제점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 문제는 그 친구가 약속을 잡고, 본인 기분에 따라 자꾸 펑크를 내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살다 보면 한 두 번 그럴 수 있지만 자주 그런단다.


갑자기 보고 싶다고 만나자고 하고, 갑자기 사정이 생겼다고 그 약속을 취소한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다 만나게 되면 정말 잘해주고, 친절하단다.

아내에게 말해 주었다.


"미안한 말인데, 그 친구는 자기를 아끼는 않는 것 같다"


아내도 그렇게 생각해서 연락이 오면 안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연락을 끊고 멀리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난 그게 왜 불편한 건지 모르겠다.


나였다면, 쉽게 단절했을 것이다.


나를, 또 내 시간을 그렇게 쉽게 생각하는 친구라면 나는 너무 쉽게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

희생의 대상은 가족이지, 친구가 아니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희생해야 유지되는 친구관계가 건강한 것인가?

나라면 기분 나쁘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나빠도 별 수 없고..) 멀리 했을 것이다.


그리고 연락이 안 오면, 내 의도대로 되었으니, 좋아했을 것이다. 나에게는 고민거리가 아닌데, 왜 아내에는 이것이 고민일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세가지가 생각났다.


첫째, 관계의 주인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경험이 없다)


아내는 푸대접하는 사람과의 관계 끊기가 왜 이리 힘들까? 아내는 아버지가 일찍 회사를 관두셔서 학교생활이 힘들었다.


중요한 것은 부자동네에서 특이한 가난한 환경이니, 부자친구들에게 자기 사정에 대해서 까고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소극적으로 되었다.


그래서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친구들을 마다하지 않는 방식의 교제를 했다고 한다.


시작부터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았기에,

맺음도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기 어려운 것 아닐까?

둘째, 관계의 주인은 나다.(주도권에 대한 인식이 없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을 믿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다.

믿는다면 신과의 교제 즉, 기도하고, 성경을 읽거나 하는 행위로 그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다.

안 믿으면 안 믿는 대로 살면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자신을 선택하기를 기다리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장 20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시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 이사야 30장 18절)


신이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셨다.

하물며 인간끼리의 선택에 대해서 말해 무얼하나?

나는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의 주인이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말한다.

푸대접하는 친구 때문에 힘든 마음이 드는 분들께 말하고 싶다.


"당신이 그 관계의 주인입니다. 당연히 주인이 관계를 정하시는 거예요."



셋째, 외로울까 두렵다(내가 나와 안 친하다.)


친구의 연락을 고의로 안 받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뭔가 나쁜 짓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속에는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대접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지속함으로써 얻을 스트레스와 마음의 병을 생각해 보시길 권한다.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불나방이 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자존'감은 '스스로를 존재'하게 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내가 나를 좋아하면 외롭지 않기 때문이다.


자존감 높은 사람들은 혼자 책도 읽고, 산책도 하면서 잘 논다. 친구가 없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나는 소중하다. 그래서 내가 관계를 결정해야 한다.


이건 신이 나에게 주신 권리이다. 그래서 신도 대신 못해 준다. 누구와 교제를 나누며 살아갈지 고민해 보자.


나를 소중히 여길 권리가 있다고 믿어보자.

- 아빠는 치료사-


P.S 소중한 독자님들,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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