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부모 아래 태어날지 선택할 수 없다.
그건 우리의 의지와 무관한, 운명의 몫이다.
어떤 이들은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자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같은 고통을 물려받기도 한다.
비록 선택은 못 했지만, 그 환경의 영향은 최소화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먼저 내 성장환경을 제대로 바라보는 일이 필요했다.
부모를 택할 권리는 없지만,
용서할지, 멀어질지, 절연할지—
선택은 분명, 내 몫이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부모와의 관계의 주인도 나다.’
이 글이 그 방향을 세우는 데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이는 “아빠”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요동친다.
지인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부모는 그 아이를 먼 친척에게 맡기고 떠났다.
연락조차 없었다. 버림받았다고 믿으며 자라야 했다.
나중에야 다시 부모를 만났지만, 깊은 상처는 그대로 남았다.
“나의 부모는 날 버렸어.”
이 생각은 친구의 영혼을 좀먹었다.
직장 동료들과 부모 얘기만 나와도 갑자기 숨이 막히고,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면서 더 분노가 치밀었다고 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꺼내 다루지 못한 채 화로, 우울로, 무력감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어떤 집에서 자랐는가?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아빠는 안정적인 수입을 벌고, 엄마는 존중과 사랑으로 아이를 감싼다.
이런 집에서 자란 아이는 대부분 자존감이 높고, 세상을 따뜻하게 본다.
가수 박진영 씨가 그 예다.
스스로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다고 했지만,
그 평범함은 사실 특별하다.
그는 축복받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다.
경제적으로는 불안정하지만, 엄마의 정서적 지지가 견고한 경우다.
내 친구 한 명은 단칸방에서 컸다.
아버지의 실패로 자주 이사를 다녔지만,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격려는 그 아이를 지켜냈다.
결국 누구보다도 빨리 좋은 직장에 들어가,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아가고 있다.
자존감은 통장 잔고보다,
한 사람의 진심 어린 지지에서 자란다.
아버지는 돈을 잘 벌지만, 가정은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부모의 기대가 너무 높고, 아이는 늘 비교 속에서 살아간다.
한 친구는 아버지가 약사였다.
늘 “나는 아버지만 못하다”는 말이 입에 붙어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겉으론 부유해도,
속은 우울과 열등감으로 메말라 있다.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모두 무너진 환경.
이런 환경 속의 아이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을 슬픔 혹은 분노로 바라본다.
끊임없이 자신을 방어하고,
사람들 사이에 머무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내 부모가, 나에게 잘못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탓한다.
국가가, 회사가, 사회가, 내 배우자가, 내 자녀가 날 힘들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근원을 들여다보면,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여전히 내 안에 울고 있다.
정서적 지지가 없는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스스로 자존감 높은 어른으로 크는 건 정말 어렵다.
성공한 사람이 그걸 전부 자신의 노력 덕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좋은 환경은, 그 자체로 자산이다.
부모 두 사람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널 믿어줄게”
라고 말해주는 사람만 있었어도,
삶은 훨씬 덜 외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정서적 지지를 받아본 적 없는 부모는
그걸 어떻게 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난이 반복되고, 상처가 되물림된다.
당신의 삶은 축복이다.
그 사실에 감사하자.
그리고 조금 더 겸손하자.
운이 좋았다는 것을, 타인의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하자.
당신의 분노와 슬픔은, 정당하다.
하지만 그 감정을 그냥 품고만 살지는 말자.
“내가 사랑받지 못해서, 이렇게 화가 많구나.”
“내가 이해받지 못해서, 이렇게 억울했구나.”
그때 비로소 해결책이 눈에 들어온다.
책일 수도 있고, 상담일 수도 있고, 따뜻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정서적 지지를 못 받은 나에게, 지금의 내가 그것을 주는 것이다.
토닥여주고, 괜찮다고 말해주자.
어릴 적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말을, 지금 내가 해주는것이다.
세상이 그 사람을 특별하게 만든 게 아니라,
그는 그저 사랑받는 법을 배운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 사랑을 지금,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나라서 소중하다.
– 아빠는 치료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