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의 위력을 체험하지 못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 역시 글을 안 쓰고 살았었다. 전업주부가 되면서 육아가 너무 힘들어 살기 위해 글을 썼다. 집안일도 힘들고, 아이들 감정을 받아내는 것도 힘겨웠다. 심리학 책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글로 써보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 할 수 있는 뭐라도 해보자 싶어서 나의 있는 상황과 감정을 토하듯이 써보기 시작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우는 아이와 부러진 주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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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다. 나의 수치스러운 면을 드러냈지만, 사람들은 공감했다. 뇌가 흔들리는 경험이었달까? 이 글 이후로 감정에 대해 밝히는 것에 과감해진 것 같다. 감정을 글로 쓰면, 그 감정에 대해 전두엽을 써서 객관화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뇌를 자극하고, 완성된 글은 상황 밖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해준다.
상황 속에서 나와, 상황 밖에서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첫째는 초등학교 2학년, 둘째는 유치원 다닐 때였다. 둘 다 같이 우는데 집안일은 쌓여서 너무 바쁘다. 우는 이유가 성인으로서는 어이가 없는 이유이기 때문에 짜증이 많이 난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는 ‘당혹’, ‘짜증’, ‘분노’ 등의 감정 속에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감정 속에 있는 지 알아채는 것은 이성적 뇌, 즉 전두엽의 몫인데, 감정 속에서는 쓸 수 없다.
하지만 글을 쓰면, 상황 속에서 나를 상황 밖에서 내가 바라보고 진단을 할 수 있다.
“네가 육아 일이 버겁구나.”
“마음이 약해졌구나.”
적어도 자신을 공감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으면 상황을 바로 보기가 어렵다. 일종의 메타인지 훈련이 글쓰기인 것이다.
*메타인지 ?
생각에 대한 생각(thinking about thinking)’을 말한다. 다시 말해, 내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 스스로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이다.
지난주 자동적 사고를 복기해 보자.
나는 아내의 “침울한 표정”을 “아내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결론으로 이어서 생각했다. 나 역시 내가 이런 사고의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지난주에 처음 써보았었다.
아내의 침울한 표정 인식
“또 저렇게 침묵 시위하겠구나…”
↓
“말로 하면 되지, 왜 저럴까?”
↓
“저러다 나를 떠나겠지.”
↓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아.” (1차 결론)
↓
“이 결혼은 나의 실수야.”
↓
“하지만 아이들을 버릴 수 없어. (이혼할 수 없어)” (2차 결론)
↓
“내가 저지른 일이니 책임지고 살아야지. 하지만 너무 우울해…” (부정 감정으로 빠짐)
써보고 나니 더 보이는 게 있었다.
“아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 이 결론은 잘못되었다.
→ 침울한 표정은 내가 원인일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침울한 표정만으로 ‘날 버릴 거다’라는 생각은 연애 시절 헤어졌던 상처로 인해 상황을 과장하는 것이다.
“내가 저지른 일이니 책임지고 살아야지. 하지만 너무 우울해”
우울한 이유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남은 평생 살아야 한다는 부정 결론 때문이었다.
→ 사람의 마음은 날씨처럼 변화무쌍한 것인데, 마치 고정된 것 처럼 가정했다.
이러한 자동적 사고 과정의 결론은 ‘우울’이라는 감정이었다.
뭔가 합리적인 생각을 한 것 같아도 나는 과거의 상처를 통해 상대방의 행동을 과장하여 판단했다.
그리고 우울이라는 감정으로 들어갔다.
우울 감정의 다음은 무엇이겠는가?
우울 감정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무기력해진 사람은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한다.
“자극적인 유튜브 콘텐츠 소비”, “인터넷 쇼핑몰에서 살 것도 없는데 구경만 하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듯 우울 감정 속으로 들어가면 밖에서 나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개선되기가 어렵다. 이 감정 속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이 ‘쓰기’라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인지(사고)'를 점검하여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 ‘인지 행동치료(CBT)’다.
어른들이 초등학교 때 그렇게 일기를 쓰라고 한 게 이래서 중요한 거구나. 마흔 넘어서 깨닫는다.
쓰기의 위력은 막강하다. 하나님은 신체에는 자기 면역력을 주셔서 극복하게 하셨고, 정신은 '쓰기'라는 훈련을 통해 회복하도록 설계하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설득이 되었다면, 오늘부터 써보면 어떨까?
쓰기의 대상은,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내 감정 상황이다.
불안한지, 슬픈지, 우울한지 한번 쭉 써보자.
제발...
-아빠는 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