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굳게 믿어보려고 마음을 먹으니, 확실하게 알아야 했다.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한 것을 믿을 수는 없었다. 오래 교회를 다니면서 해결되지 않은 의구심들을 해결해야 했다. 많은 양의 설교를 듣고, 밤낮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의구심들이 해결되어 갔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인가?
교회는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고 가르친다. 이렇게나 복잡하고 광활하며, 아름답고, 논리적으로 지어진 우주에 설계자가 없을 리가 없다. 신이 있다는 것은 의심이 되지 않았으나,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은 물음표였다.
일단, 예수님을 믿으려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어야 하고, 그 기적이 진짜여야 한다. 하지만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인 예수님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이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태복음 26:39)
내가 하나님이면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굳이 왜 기도를 해야 하나? 내가 나한테 기도하나? 이상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를 왜 하는가?
어떤 목사님이 말했다. 사람들이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을 잘 이해를 못 해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나님을 이해시켜 주려고, 인간의 옷을 입고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의미한다고 했다. 그리고 기도는 겸손의 모범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겸손히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함으로 순종의 본을 보여 주시는 것이었다. 기도는 무능의 상징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도는 '소원'을 이루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대화'의 수단이다. 기도를 '소원'을 이루는 수단으로써 보는 협소한 시각이 믿음의 성장을 막고 있었던 것 같다.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은 진짜일까?
물 위를 걷고, 물을 포도주로 만들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은 진짜일까? 이런 기적은 나에게도 일어날까?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대부분은 복음을 전하다 생명을 잃었다. 예수님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생명을 아낌없이 바쳤다.
제자들의 죽음에 관한, 소위 과학적 증거들은 충분히 많이 있다.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께 순종하려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초대교회 12제자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또 다른 제자들을 계속 양성시켰고, 그들 중 일부는 한국에 왔고, 한국에 교회를 세우고,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그리고 한국에서 죽었다. 그들의 희생과 죽음이 사실이기에, 예수님도 그 기적들도 모두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믿고 몇년이 흘러 놀라운 기적들이 내 삶에도 일어났다. 그 기적들 또한 예수님의 살아계신 증거라고 나는 믿는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왜 교회 안에 나쁜 목사들이 성도들을 끝없이 실망시키는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라" 요한복음 10:12-13
요한복음이 쓰인 건 2천 년도 전에 일이다. 이때 초기 교회에도 돈을 더 사랑하는 사기꾼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삯꾼 목자가 존재한다. 인간이 죄인인 증거일 것이다. 너무 많은 영혼들이 잘못된 목자들을 만나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난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은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같이 둔다고 한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30)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었다가,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른다고 한다. 심판의 때까지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시는 것 아닐까? 심판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었다. 안타깝지만 성도는 심판의 권한이 없다. 심판의 주권은 처음부터 피조물인 내게는 없었다. 내가 심판자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은 교만이었다. 그것을 인정하니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내 사랑하는 자 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 로마서 12:19 )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돌아가신 조상님들, 전쟁이나 기아로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지옥가나?
우리 가문의 조상들은 유교나 불교를 열심히 믿다고 죽은 사람들이 많다. 당시에 누가 성경을 준 것도 아니고, 들어본 적이 없어, 믿어볼 고민도 못해보고 죽었다. 먹을 것이 없어 죽는 아프리카 빈민촌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예수님을 안 믿은 것이 아니고 못 믿은 건데, 지옥 가면 너무 억울한 것 아닌가?
하나님은 그렇게 안타까우니 네가 직접 가보라고 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밥을 주고, 위로해주라고 하셨다. 가난한 사람들이 곧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명망 높은 사람, 명성있는 학교, 대기업 직장에 하나님이 있는 게 아니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가난한 사람한테 가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 돌아보니 하나님은 내가 배가 불러도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지 않으니, 나를 직접 가난하게 만드시고, 간절하게 만드셔서, 하나님과 가깝게 살아 볼 기회를 주신 것 같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마태복음 25:35-36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태복음 28:19
이런 믿음의 길을 갈 건지, 계속 의심하는 길을 갈 건지는 각자의 선택일 것이다.
- 아빠는 치료사 -
P.S 저는 서울 장로회 대형교회 신자입니다. 고작 마흔 몇 해를 살아낸 작은 경험과 깨달음입니다. 넓은 아량으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주 글이 업데이트가 늦어져 죄송합니다. 복된 주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