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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는치료사 Apr 17. 2024

약물을 안 먹이면 천대를 받을까?

아래는 작년 6월 초에 썼던 육아일기입니다.




학교 갔다 온 철수의 표정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눈치 보여서 바로 물어보지 못했는데, 학교에서 있었던 일로 엄마와 동생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그래서 타임아웃을 시키고 시간이 다돼서  학교에서 무슨 일인지 물어봤습니다.


철수: "선생님이 투표해서, 내가 수업시간에 조용히 하면 젤리를 주기로 했는데 1분을 못 참았어"


나   : "뭐? 무슨 말이야?"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화가 나고, 분해서 울기 시작합니다.)

        "다시 한번 아빠한테 설명해 봐"


철수: "선생님이 내가 수업시간에 시끄러우니까, 수업시간에 안 떠들면 젤리를 줘도 되는지 학급 전체 친구들한테 투표를 했어. 내가 1분 남기고 깜빡해서 젤리를 못 먹었어"(이렇게 분명하진 않습니다. 여러 번 설명시키니 나아졌습니다.)


나:  "아! 철수가 수업시간에 떠들지 않으면, 선생님이 젤리를 줘도 되는지 학급 친구들한테 물어봤구나!

철수만 혜택을 주면 다른 친구들이 속상할 수 있으니까, 투표를 해서 학급 전체 친구들이 괜찮다고 했구나.

그래서 수업시간에 떠들지 않으면 젤리를 주기로 했는데, 철수가 1분 남기고 떠들어서 못 먹어서 속상한 거구나!"


철수: "내가 유치원생도 아니고 그것도 못 참다니! 멍청해서 그랬어!!"(자기 원망과 감정폭발이 이어집니다)


나: "철수는 젤리를 그리 좋아하는 것도 아니데, 너만 유치원생 취급하니 자존심 상해서 화난 거 아니야?"


철수: (눈이 동그래져서) "그런 거 같아!"


나: "내일 선생님한테, 젤리 안 주셔도 제가 스스로 해볼게요라고 말해봐. 철수는 할 수 있어"

     (안아 기도해 주고 상황을 마무리했습니다.)


아이가 원한 것은 '존중'이지 '젤리'가 아니었습니다.


철수 담임선생님은 철수 걱정과 배려를 많이 해주시는 분입니다. 아이가 산만하고 수업시간에 소리를 지르니 궁여지책으로 젤리를 생각하신 것 같은데, 좋은 판단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는 "학급에 피해만 주는 사람"이라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라고 말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아빠의 마음은 너무 아픕니다.


그런데 이런 부정적인 말의 의미는 "나 지금 너무 속상하다."입니다. 그 이상의 의미부여를 하지 말아야, 부모가 부정적인 말에 휩쓸리지 않아야 조금 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젤리를 못 먹은 게 아쉬워서 젤리를 사줘서 아이를 달래면 된다고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나는 무려 3학년인데, 유치원생 취급 당한 것이 너무 속상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언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많이 어렵구나!"


철수는 종합심리검사에서 언어 점수가 가장 높은 아이였습니다.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뛰어난 편이지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니 언어능력이 발휘가 안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철수에게 선생님께 말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말했다고 합니다. 선생님께 "젤리 안 주셔도 제가 수업시간에 조용히 있어볼게요."라고 했답니다.

선생님은 "알았다"라고 했답니다. 제 생각이 맞은 거 같습니다.


아이가 단단히 마음이 상했던 모양입니다. 저는 대화할 때 감정만 읽어 줬지 다른 추가적인 조치(강조, 경고)를 취하지 않았었습니다. 자신의 입으로 조용히 있어 보겠다고 결정하고 선생님께 찾아가서 말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해 줬습니다.

 

철수에게만 젤리 주는 것에 대해 투표한 것에 대해 선생님께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체 학급이 자신을 어린애 취급을 한 것을 아이는 못 견뎌했고 저 역시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하지만 철수를 적극 도와주시는 담임 선생님을 적군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니 전화하기 전에 최대한 불편한 심경을 내색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나: "선생님, 철수 아빱니다. 이번 주도 마음고생 많으셨죠?"


선생님: " 철수가 너무 떠들어서 5분만 가만히 있으면 젤리를 주기로 했는데, 형평성에 어긋날까 봐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좀 아닌 거 같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수가 교실에 드러누워서 울고불고 난리 났거든요."


나: "학급 친구들한테도, 선생님께도 죄송하네요. 철수는 사회성이 뛰어난 여동생이 있습니다. 철수한테는 얘가 아킬레스건과 같아요. 동생(유치원생)은 늘 주변 어른들 사랑을 다 차지하고, 친구도 많고 하기에 열등감 같은 게 있어요. 그래서 자신을 유치원생 하고 비교하거나 하면 경기나 게 싫어하는 거 같습니다."


선생님: "그렇군요. 참고할게요. 근데 철수가 친구들하고 공놀이를 하자고 하면 참여를 잘하지 않아요. 지난번에 공을 들고 도망가더라고요. 친구들하고 친해질 기회를 계속 주려고 하는 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나: "그건 아마 저처럼 운동신경이 안 좋아서 부끄러워서 그럴 거예요. 저도 운동신경이 안 좋아서 친구들이 농구, 축구하자고 하면 꺼려하고 그랬거든요. 태권도 같은 거 해보라고 해도 싫어해서 안 보내거든요."


선생님:" 아. 그럼 보드게임 같은, 정적인 걸 해야겠네요. 그럼 집에 있는 보드게임을 먼저 철수하고 연습하시고, 책가방에 넣어 보내주시면 학교에서 애들하고 해볼게요."


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집에 있는 할리갈리, 젠가 같은 거 연습해서 보내보겠습니다"


나: "애들이 기꺼이 철수하고 하려 할까요? 수업 시간에 소리 지르고, 감정 폭발해서 비호감 아닌가요?"


(수업 도중에 소리 지르고 방해하는 아이를 당연히 아이들이 싫어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저도 처음에는 비슷하게 생각했는데요. 제가 지켜보니까 그건 어른 들 생각이에요."

"어떤 여자아이는 철수가 소리 지르고 감정 폭발하면, 남동생처럼 여기고 괜찮냐고 위로해 주기도 하고요. 지금 짝꿍인 민철이는 철수하고 짝꿍 하고 싶다고 먼저 손들어서 시켜준 거예요"


"아버님, 아이들은 철수의 시끄러운 행동을 싫어하지. 그 아이를 싫어하지 않아요. 제가 지켜보니 진짜 그래요. 그건 믿으셔도 돼요. 철수하고 친해지고 싶어 하는 애들 여럿 돼요."


나: "(어안이 벙벙하여) 신경 써주셔 너무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우리 가족에게 은인 같은 분이세요"



우리 아들이 비호감이 아니었다고?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수업 시간에 혼잣말하고, 소리도 지르고, 가끔 감정 폭발하여 교실에 드러눕기도 하는 아이와 친구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 있다고?


어른인 제 시각으로 학급 아이들을 본 것이 큰 착각이었습니다. 가끔 철수가 싫다고 해도 계속 자기주장을 할 때 '네가 이러니 네 친구들도 너랑 안 놀지!'라고 핀잔을 줬던 게 생각났습니다. 정작 이런 말로 아이를 천대하는 건 부모인 제 자신이지 아이들은 아닐 수 있었던 겁니다.


약물 처방하는 부모님 중에는 아이들이 천대받을까 봐 먹인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정작 천대는 어른인 부모나 선생님이 하는 거지. 아이들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순수해서 친구들의 잘못을 금방 용서해 주고 하지 않습니까?


선생님께 칭찬을 듣고 온 아이는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민철이하고 사이가 좋아 보이진 않았습니다. "민철이가 너 좋아서 짝꿍 해달라고 선생님한테 먼저 말했대."라고 알려주니 아이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천대는 어른이나 하는 거다.


육아 글을 올리면서 가장 아프고 힘들었던 말, "약물을 안 먹이면 아이가 받을 천대는 괜찮으세요?"라는 질문에 대답을 얻었습니다.


대답은 "천대는 세상살이에 찌든 어른들이나 하는 거지, 순수한 아이들은 그런 거 잘 안 한다. 어른인 선생님만 잘 설득하고 양해를 구하면, 약물을 안 먹여도 천대받지 않을 수 있다."입니다.


우리 어른들이 잊고 있던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업신여기고 푸대접하는 천대는 어른이나 하는 거지, 진작 학급 아이들은 잘하지 않는답니다.(당연히 일부 아이들도 정색하며 싫어할 수 있겠지요.)


우리 어른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평가하고 그에 맞게 대접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러니 아이들도 그럴 거라고 잘못된 가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정작 아이들은 순수해서 용서를 잘하고, 그 사람의 싫은 행동과 그 사람 엮어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어른들만 잘하면 되는 거 같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순수하고, 훨씬 수용적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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