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는치료사 Apr 17. 2024

과제가 종료되었습니다.

작년 6월 관찰 일기입니다.




이번 주 금요일도 떨리는 마음으로 아내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은 선생님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20분 뒤에 전화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자로 회신이 왔습니다.

자주 하는 전화지만 걸 때마다 가슴에는 부담과 긴장이 흐릅니다. 30분이 초조하게 흐르고

전화벨이 울립니다. 급하게 받았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한 주간 고생 많으셨죠? 이번 주는 철수 어땠나 해서요."


"철수 정말 얌전하게 잘 지냈어요. 가정에서도 그런가요?"


"예, 집에서도 감정 폭발이나 충동적인 행동들이 많이 줄었어요. 집에서 느끼고 있는 긍정적인 변화가 학교에서 이어지고 있나 궁금했어요"


"이제 철수 학교생활 잘해요. 지난주도 잘 지냈고, 이번 주도 원만하게 잘 지냈어요. 이제는 친구들이 다가가는 데도 그림 그리겠다고 같이 안 놀고 그러더라고요"


"친구하고 어울려 놀아 본 경험이 없어서, 아직 어찌할 줄 모르는 거 같아요. 차차 좋아지겠죠"


"제가 좀 더 나서 볼까요?"


"이제 철수가 스스로 부딪혀 봐야 할 단계인 거 같아요. 이제는 지켜보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버님, 걱정 마세요. 철수 이제 잘해요"

얼마나 기다렸던 말인지, 눈물이 울컥 나오려 합니다.


"선생님, 이제 금요일마다 전화드리는 거 안 할게요. 매번 죄송했는데 이제 안 해도 될 것 같네요. 궁금하면 가끔 문자 드리든지 하고 전화는 이제 안 하겠습니다."


"아버님,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철수 많이 변했어요"


"선생님이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주말 잘 쉬세요. 감사합니다.



과제가 종료되었습니다.


"이제는 전화를 드리지 않겠다"라는 나와, "걱정 안 해도 된다"라는 선생님의 대화가 끝나자, 내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이런 알림이 왔습니다.


"과제가 종료되었습니다."


학기 초 철수 담임 선생님과 첫 통화 때문인 거 같습니다. 철수가 ADHD 임을 알리는 대화 중에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철수 약물치료는 안 하나요?" 여러 이유로 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면서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만약 올해도 변화가 없고, 계속 수업 방해를 한다면 4학년부터는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을 하려고 합니다."

배수의 진을 친 결연한 의지를 확인한 선생님은 약물 처방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철수는 학교 수업보다는 수업태도 개선에 초점을 두고 교육하겠습니다."


"예, 아무것도 못 배우고 친구들과 선생님을 배려하는 것만 배워도 정말 괜찮습니다."


"쉽지는 않을 거 같네요. 교실에서는 저와 가깝게 자리를 배치하고 지켜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날, 그 무거웠던 대화에서 우리의 과제는 아이가 '배려'를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루할지언정 다른 친구들까지 큰소리나, 울음으로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는 것 만이 목표였습니다. 국영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이제 아들이 수업 방해를 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철수는 약물 도움 없이 스스로 결단했고, 지켜가고 있습니다. 아직 2주간의 일이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분명 아이는 성장했습니다. 아들과 같은 ADHD 성향의 부족한 아빠의 가장 절실했던 목표가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대안학교도 약물 처방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실정에 남은 대안은 홈스쿨링 밖에는 없었습니다.

불과 두 달 전까지 아내와 마지막 수단인 홈스쿨링에 관해 얘기했었는데,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졌습니다.


대안학교를 세 군데를 갔었습니다. 모두 적극적 혹은 간접적으로 약물치료를 요구하는 형편에 상심한 게 엊그제 같은데 무슨 동화 신데렐라의 요정 할머니가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뜬금없이 아이는 후욱 성장해 있었습니다.


결국, 눈가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자주보던 집 앞 공원이 처음으로 빛나보였습니다.


블로그에 'ADHD를 만나다- 거부' 1편을 처음 쓴 게 22년 2월이었습니다.


그 사이 아이도 저도 부쩍 성장한 거 같습니다.

휴직을 하고 거의 1년 6개월 내내 ADHD를 생각하고 글을 썼습니다. 비약물 치료에 성공한 자세한 이야기는 김경림 작가님이 쓰신 "이 아이들이 정말 ADHD일까?"와 날 필 작가님의 브런치 북 "ADHD가 어때서"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 더 보태어 우리 아들 철수의 이야기도 부모님들께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과제를 마치며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비약물 치료는 가능합니다. 제 삶으로 경험해 보았습니다."


저는 향후 최소 2년 동안은 'ADHD비약물치료' 카페를 통해 비약물 치료 정보를 공유하고 약물의 위험성을 알리겠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약물 없이 회복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습니다.



이전 15화 선생님과 관계 만들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