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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는치료사 Apr 17. 2024

(에필로그) 비약물치료는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ADHD비약물치료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주부가 되어 직접 밥, 빨래, 아이들 식사와 간식, 준비물 챙기며 일 년 이상 살아보니 않으면 주부가 어떤 마음인지 조금도 알 수가 없습니다. 반복되는 가사노동이 주는 비루함과 비참함을 6개월 이상 해보지 않고 알 수 없습니다.


아직은 미숙한 자녀들의 질투, 열등감, 분노, 억울함 등의 부정적 감정을 계속 받아내보지 않으면 어떤 감정노동이 주부를 힘들게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옆에 있는 남편이 알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남자주부가 되기 전 옆에서 도와주고 있다는 이유로 주부가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그땐 그랬습니다.


저는 경험하지 않은 것을 앞으로도 모를 것입니다.


따라서 경험하지 않은 것을 의사라고, 전문가가 알 거라고 가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유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의 정보가 나에게는 더 유용할 수 있습니다. 경험 없는 지식은 실효성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약물치료로 어려움을 겪은 의사가 쓴 책 "ADHD는 병이 아니다"와 "No More ADHD"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ADHD는 병이 아니다' 책은 비약물치료의 교과서라고 생각합니다. 3 회독 이상 읽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굳이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다 들춰낸 목적은 명확합니다. 경험을 나누어 여러분의 상태를 돌아보고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린아이 한 명이라도 약물치료로부터 해방시키고 싶었습니다. 억울한 아이들을 더 억울하게 만드는 약물치료는 위험하다는 경각심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돈 벌려고 위험약물을 함부로 먹이는 어른들에게 화가 나서 'ADHD비약물치료'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가입한 분들께 모든 것은 바닥까지 긁어서 전달하겠다고 말했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쉬움은 남지만 바닥까지 탈탈 털어서 썼습니다. 도움이 되셨길 간절히 바랍니다.


끝으로 내가 생각하는 ADHD비약물치료는 어떤 것인지 말씀드려 보고 싶습니다.


1. ADHD는 '증상'일 뿐, 병이 아니다


ADHD는 과학적 원인이 없습니다. 따라서 과학적 결과도 없습니다. 모든 전문가가 말하는 원인은 한낱 추정에 불과합니다. 사랑으로 바라보면 주의 집중력이 부족하고, 과잉행동을 하는 것은 아직은 어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미숙한 '증상'일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님의 시선이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부부가 아들의 치료를 위해 아들에게만 집중할 때였습니다. 수개월을 계속해서 아들 칭찬하니라, 딸은 자연스레 소홀했었습니다. 오빠만 편애한다고 생각한 둘째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딸에게도 짜증과 화가 심각하게 많아지는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딸은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들로부터 칭찬 말고는 들은 적이 없던 사람입니다.


다행히 아들을 통해 배움이 있었던 터라, 우는 딸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다독여 줄 수 있었습니다. 만약 눈치채지 못했다면 차별로 우울해진 딸이 학교에서 집중하지 못하고 선생님으로 전화가 오게 되는 상황이 올 수 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양육자와 불안정한 관계, 차별과 편애, 격렬한 부부싸움 등 소중한 아이들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이 없는 지 부터 점검해 보시길 권면합니다.


2. 자본주의로부터 휴식이 필요한 일이다


맞벌이할 때 아내와 저는 힘들게 일하고 집에 와서도 쉬지 못했습니다. 회사일, 집안일, 육아로 몸이 힘드니 다툼도 잦았습니다. 돈 많이 벌면 가족들이 좀 이해해줘야 한다는 교만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돈이 잘 벌리면 교만했고, 안 벌리면 짜증이 났습니다. 그 짜증이 아내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아내가 사용 가능한 휴직이 있었다면 썼을 텐데, 도무지 없기에 아빠 육아휴직을 냈습니다. 엄마든 아빠든 둘 중 한 명은 자본의 논리(돈을 많이 벌면 옳다)와는 거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이가 평균 보다 지금 떨어진다고 그 모습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급작스럽게 성장하기도 합니다. 그때를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려면 둘 다 돈에 연연해서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숫자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노력과 평가로 인해 정량적으로 점수가 오르고 내려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회사에서 숫자로 판단하던 습관을 버리고, 아이에게 "넌 지금 그대로 소중한 아이야"라는 인식을 심어 주려면 1, 2년 쉬어 갈 용기가 필요합니다.


3. 교육 철학의 확립이 최우선이다.


교육철학이 확고하지 않으면 남들 말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지나영 교수님의 '본질육아'라는 책을 읽고 나서 아이를 태어난 DNA로 키우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이가 원숭이라면 나무로, 물고기라면 물가로 데려다 주는 것이 본질육아라고 합니다. 이 사상이 머릿속에 있으면 초등학교 교육 몇 년 뒤처지는 것이 두렵지가 않습니다. 꼭 자녀를 의사를 만들겠다고 작정하셨다면, 학업진도를 맞추기 위해 약을 먹이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웹툰작가든, 농부든, 전문직이든, 회사원이든 원하는 일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공감했습니다. 확고한 교육 철학부터 부부간의 토의를 통해 도출하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4. 치료의 기본은 쓰는 것이다.


전업으로 아이를 돌보는 1년 반 동안 대략 100편이 넘게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나의 어떤 상처가 지금의 행동에 이르게 했는지, 자신에 대한 성찰을 위해서 쓸 필요가 있습니다. 쓰다 보면 상황과 내가 분리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상황에서 떨어져서 보면 나의 모순이 보입니다. 같은 방법으로 아이의 어떤 상처가 지금의 행동에 이르게 했는지 계속 써야 합니다. 쓰다 보면 보이는 것이 반드시 있습니다.


쓰는 것은 누구도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써야 자기의 것이 됩니다. 자녀 관찰일기, 크고 작은 어려움들, 문제점들, 고치고 싶은 습관들, 마음 속 깊은 상처들을 계속 매일 쓰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막연하다면 처음에는 일기를 매일 쓰십시오. 하루동안 벌어진 일과 생각들을 써보십시오.

'자존감'이 낮다면 자신에 대한 칭찬을 쓰십시오. 마음이 괴로우면 '괴롭다'라고 쓰십시오. 토하듯이 지면에 자신의 감정을 뱉어 내십시오. 그 고통은 글이 되고, 그 글을 읽는 나는 그 고통으로부터 나를 구해 줄 방법을 찾아낼 것입니다.


이건 제가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많은 심리학자나 교수, 의사 등 전문가들도 유사한 말을 합니다. 매일 무엇이라도 쓰는 습관이 가지십시오. 처음에는 쓰는 것이 귀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쌓이면 반드시 내적 자산이 됩니다. 반드시 보상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5. 아이가 결정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작년 5월 철수가 떠든다는 이유로 선생님은 5분만 조용하면 젤리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젤리를 얻지 못했고, 철수는 마음이 많이 상했습니다. 왜냐하면 젤리를 줘도 되는지 학급전체 학생들의 거수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무시를 받았다는 생각에 상심한 아이는 스스로 떠들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젤리 없이 조용히 있어 보겠다고 선생님에게 말한 다음 날, 학교를 마친 아이는 밝게 상기되어 말했습니다.


"아빠, 나 선생님한테 칭찬받았어"


스스로 결정하고, 해냈다는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선생님과 통화를 했는데, 아이가 너무 말 잘 듣고, 지시사항 수행을 잘해서 의도하지 않았는데 칭찬이 흘러나왔다고 했습니다. 담임 선생님 외에도 과학선생님이나 체육 선생님들도 태도가 좋아졌다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전업 주부가 되고 1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학교 선생님들한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소리를 안 지르는 육아를 하기까지 1년이 걸렸습니다. 그 후 반년 만에 긍정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읽고 따라 한다고 전부 1년 6개월 만에 성공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반년이 걸릴 수도, 어떤 분은 2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뜻대로 안 돼도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욱하는 성질을 버린 만큼, 아내가 우울을 버린 만큼 아이는 밝아지고 편안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모가 변하면 아이는 반드시 변합니다. 어린 자녀들은 엄마 아빠의 종속변수이지, 독립변수가 아닙니다.


6. 더 주지 못해 미안한 사랑을 배우는 것이다.


작년 6월이었습니다. 철수는 학교 마칠 때, "학교 마쳤어. 집에 갈게"라고 전화를 하곤 합니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길래 학교 마쳤다는 전화일 줄 알았습니다. 이날은 아이가 공놀이를 못해서 친구들하고 못 어울리자, 선생님 제안으로 처음으로 보드게임 할리갈리를 가져간 날이었습니다.


"엄마, 친구들하고 보드게임하고 더 놀다 가도 돼?"

"응, 그래 한 시간만 더 하고 와!"


이 통화를 옆에서 듣던 눈에는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습니다. 철수에게 친구가 생기면 너무 기쁘기만 할 줄 알았습니다. 아이가 친구들과 놀고 들어온다는 그 평범한 한마디에 눈물이 많이 난 이유는 그날을 간절히 기다려서, 기뻐서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울면서 남자친구도 못 사귀니, 결혼도 못 할 거라고 했고, 학교에 가면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얘기하곤 했었습니다. 그런 철수에게 친구가 생기면 너무 기쁘기만 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눈물의 이유는 기뻐서라기보다는 너무 미안해서였습니다. 육아휴직을 내고 지난 일 년 반 동안 아이가 나를 고친 건지, 내가 아이를 고친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아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나도 못하면서 아이에게 바라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나를 고쳐야 아이에게 고치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아이가 짜증과 화를 내서 친구들하고 멀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랐기 때문에 나를 고쳐갔습니다.


내가 조금 더 온전한 사람이었으면 철수도 먼저 배웠을 거고, 학교도 적응하기 편했을 텐데, 하자 많은 아빠라서 미안했습니다. 아마 처음으로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내에게도 더 좋은 남편이 되어 주지 못한다는 미안함을 가지면서 관계가 회복되어 갔습니다. 더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사랑을 배우는 것이 비약물치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옳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가다보면, 부모님과 아이들의 마음에도 저 마다의 예쁜 꽃이 필 것입니다. 꽃봉오리를 튀우는 데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더 없는 기쁨이 될 것 같습니다. 

 

"아빠는 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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