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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는치료사 Apr 17. 2024

나는 너의 자존감이다.

 

작년 어린이날 즈음에 있었던 일입니다.


철수가 몇 달 동안 자주 하던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린이날 부산에 사시는 친할머니 만나기였습니다.


"이번 어린이날은 부산 할머니 댁에 가면 좋겠다."

"부산 할머니가 어린이날 오면 좋겠다."


생일날 받은 전화기로 부산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어린이날 만나자는 통화를

여러 번 하는 걸 봤고, "상황 봐서 갈 수 있으면 가자!"라고 말해 두었습니다.


5월 4일이 되자 아이는 부산에 어서 가자고 합니다.


아빠는 간다고 한 적 없는데?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부산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하여 가도 되냐고 물어보니

허리도 아프고 힘드시다고 하십니다.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아프니 안되겠다. 다음에 가자"


이 말을 듣자 아이는 울고불고, 기대했는데 망했다고, 난리가 납니다. 어린아이가 할머니 보고 싶어서 부산 가는 게 나쁜 것도 아닌데, 다시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아이가 너무 실망해서 엉엉 운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럼 비가 오니 어린이날 다음날 오라고 하십니다.


"어린이 날 다음날 가도 된대"


라고 전달하자 이번에도 왜 어린이 당일은 왜 못 가냐며, 비 와도 가고 싶다고 또 난동을 부립니다.


"내 이 자식을..." 살짝 분노가 차오릅니다. 결국,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설득하여 '회장님'께서 어린이 날을 부산에서 보내 실 수 있도록 5월 4일에 내려가게 됩니다.


아내도 저도 마치 패잔병 같은 얼굴로 마지못해 짐을 쌌습니다.


"참 너도 대단하다. 기어이 가는구나. 비가 와서 할 것도 없을 텐데도..."

이런 생각을 하며 빗길을 조심조심 운전해서 갔고, 아이는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엄마 아빠에게 조금은 미안한 내색이었습니다. 예정대로 어린이날은 부산에 많은 비가 왔고, 아이는 하루 종일 할머니 집에서 친척과 놀고, 티브이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여동생이랑 투닥거리던 첫째 입에서 욕을 들었습니다.


저는 억지를 부려 온 가족을 부산까지, 빗길이라서 운전이 위험한대도 오게 만들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 짜증과 감정 폭발로 사람을 조정하는 듯한 아이에게 질려버린 거 같습니다.


욕설을 절대 하면 안 된다고 훈육을 하는 과정 중에 저의 불편한 마음, 아이에게 실망하고 화난 마음이 아이에게 전달이 되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나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나는 혼나야 돼" 같은 소리를 하였습니다.


아이에게 욕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듣고 일단 상황은 마무리했습니다.


30분 정도 흘렀을까 철수는 뺨이 벌게져서 나타났습니다.


혼자 몰래 작은방에서 자기는 혼나야 한다며 자신이 자신의 뺨을 때린 겁니다.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니?" 너무 너무 속이 상하고,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노력해도 이렇게까지 안될 수 있지?"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속상한 마음에 부산에 계신 어머니 앞에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아이에게 자해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부산까지 억지로 온 아빠의 원망을 아는지 아이는 "나 같은 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가족에게 피해만 주는 사람이야"라며 자신을 계속 원망했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돌리기 위해서, "철수는 아빠한테 영웅이야"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아빠는 잘 따지고, 짜증을 내서 엄마한테 같이 있기 힘든 사람이었어. 그래서 재작년만 해도 많이 싸웠어."

"하지만 철수 키우면서 아빠가 더 좋은 아빠가 되려고 소리를 지르거나 짜증을 안내는 연습을 했고, 덕분에

작년부터는 잘 싸우지도 않고, 엄마하고도 사이가 좋아졌잖아! 철수, 네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엄마 아빠는 자주 타투고 그러고 있었을 지도 몰라. 그러니 철수가 아빠를 구한 거야."

"그럼 엄마 아빠가 나 없으면 이혼할 뻔한 거야?"

"그래 맞아. 아들이 아빠를 이혼 위기에서 구한 거지. 그래서 철수는 영웅이야. 아빠를 구해줬으니까"


영웅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이의 표정이 밝아집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계속 어둡기만 했습니다.


사실, 비슷한 일이 몇달 전에도 있었습니다.


아들은 매일 출석하는 영어학원에 연말부터 작년 2월까지 약 3달을 다녔었습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약물복용하라는 얘기도 들었고, 수업 방해로 쫓겨나면서 아이를 원망하는 마음이 컸었습니다. 영어학원만 대여섯군데를 상담해 보고 그중에서 가장 괜찮다고 생각한 곳에 보냈는데, 첫 한 달은 칭찬받고 잘 다니던 애가 두 번째 달부터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별 수없이 학원을 포기했습니다. "돈을 내고 다니는 학원에서도 쫓겨나는 너는 한심해!"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학원 일로 심경이 복잡하고 힘들었고, 아이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극에 달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아이도 그 마음을 느낀 거 같습니다. 타임아웃을 시켰었는데, 자신의 팔을 심하게 깨무는 행동을 보였고, 아내와 저는 겁에 질려 그 이후로는 타임아웃을 중지하게 되었었습니다.


아내는 아이와 얘기를 해보더니 눈물을 흘리며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철수는 친구도 한 명도 없고, 자기 마음 알고 주고 게임하고 놀아주고, 사랑해 주는 건 아빠 뿐인데, 아빠한테 거절감을 느끼니 온 세상이 무너진 거 같아."


나는 너의 자존감이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모두가 잠든 밤, 깊은 한숨과 고민에 잠이오지않았습니다. 부산을 떠나서도 그렇게 며칠을 꼬박 고민하고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었던 것은 학원에서 쫓겨났을 때와 이번에 어린이날 억지로 부산에 온 때 말고는 달리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울며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사랑해 주는 건 아빠 뿐인데, 아빠한테 거절감을 느끼니 온 세상이 무너진 거 같아."


"아이에게 아빠워 거절은 온 세상으로부터의 거절이구나."

"내가 무너지면 너도 무너지는구나. 나는 너의 자존감이구나..."


'엄마는 아이의 자존감이다'라는 책을 어느 병원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제목이 좋아서 읽고 싶었는데 단종이 되어 구하지 못했습니다. 현실의 나는 엄마 역할을 하고 있고, 나는 아이의 자존감을 만들어 주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자존감 그 자체였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나를 미워하면 아이도 자신을 미워합니다. 그러니 내가 그 아이를 미워하면 그 아이도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이도 동일한 인격체이기에 부모의 마음을 다 느끼고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일한 정서적 안식처로부터 거부를 당한 순간 아이는 자신의 자존감을 버리려고 합니다.


 "자존감 상실의 끝에 자해라는 극단적 자기 처벌이 있었구나."


아이가 외롭고 많이 힘들었을 것이 느껴져 가슴이 아려옵니다.


반면, 부모가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을 잠시라도 품지 말고, 계속 사랑하면 이제는 이런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사랑에 실패하지 않는 한 이제 이런 일은 또 없을 거야."


원인도 처방도 강한 확신이 들며 마음이 편안해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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