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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리향 Oct 08. 2024

살아 있음을 느낄 때

  C 대학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서 우선 응급실 앞에서 대기해야 했다. 약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기 중이었다. 나는 1시간을 조금 넘게 기다린 다음에야 응급실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응급실로 들어가자 환자용 손목 띠를 두르고 옷도 다시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 시작했다. 맨 처음 불려간 곳은 이비인후과였다. 정말 많이도 걸어야 했다. 병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비인후과 당직실에는 두 명의 전공의가 있었다. 그들은 선후배 관계인 듯했다. 그런데 둘의 모습이 가관이었다. 선배는 의자에 앉아 흰색 크록스 신발을 긁어대며 거들먹거렸고 그 옆에서 후배는 그의 비위를 열심히 맞추고 있었다. 후배 전공의가 나에게 좀 힘들 거예요 하면서 코에 무언가를 쑤셔 넣었다. 정말 눈물이 쏙 돌고 말았다. 그래도 나는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잘 참으셨어요! 그가 칭찬이랍시고 말을 했는데 나는 전혀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미 둘에게 빈정이 상해 있었다. 둘은 교수 놀이에 빠져 있는 듯해 보였다.

  나는 당직실을 나와 남자 가이드를 따라 다시 응급실로 돌아왔다. 응급실에 돌아왔을 때 또 다른 해야할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CT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응급실 내 CT 촬영실이겠거니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가이드가 그곳이 아니라며 자신을 따라오라 했다. 나는 얼른 가이드를 향해 뒤돌아 갔다. 가이드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내 생각대로 하면 안 되는 법이다. 가이드는 나를 포함해서 2명을 본 병동 CT 촬영실로 데려갔지만 그곳은 이미 파장 분위기였다. 가이드는 입장이 난처해졌다. 열심히 두 사람을 데리고 왔더니 더 이상 손님 안 받아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응급실 촬영실로 급히 서둘러 돌아갔다. 운동 좀 한 것이다. 촬영은 금방 끝이 났다.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왔다 갔다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아니 환자를 이렇게 막 부려 먹어도 되는 거야? 피도 마구마구 빼갔다. 내 피가 무슨 화수분이야! 저수지 물도 아니고 그렇게 퍼가도 되는 거야?

  그래도 열심히 움직인 보람이 있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입원을 하시지요.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 그토록 부산을 떨었던 것이다. 내가 병실을 잡자 누나는 논산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본관 6층 병실로 자리를 옮겼다. 6인 병실의 중앙에 위치한 자리였다.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많은 것을 경험하게 만드는 자리였다. 그 경험은 입원하고 바로 시작되었다. 내 옆자리에서 이상한 외국말이 들려왔다. 환자가 하나 있고 보호자가 옆에 있는 듯해 보였다. 알아듣지 못하는 대화의 웅얼거림 속에서 나는 그냥 잠이 들었다. 피곤한 하루였다. 나도 쉬어야 했다. 월요일에 집을 나서, 그날 G 대학 병원에 입원하고, 다음날 다시 이 병원으로 옮겼다. 이 정도면 나도 할 만큼 한 것이다. 그러면 충분히 잘 자격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옆 자리에서 또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끔 한국 사람인듯한 남자의 말소리가 들리고 외국인 남자의 말소리도 들리고 외국인 여자의 소리도 들렸다. 그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바로 옆에 있었다. 1시간 정도 들었지만 상황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었다. 다만 남자인 듯한 누군가가 환자에게 그만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고 설득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잠시 후, 나와 그 외국인 환자에게 X레이 촬영을 하고 오라는 오더가 내려왔다. 우리는 가이드를 따라 촬영실로 내려갔다. 우리는 같이 대기를 탔다. 그때 그의 얼굴을 보았다. 앳되 보이는 나이에, 나하고 비슷한 키에, 나보다 튼튼해 보이는 체격에, 얼굴은 그만하면 잘생긴 편이었다. 나는 그에게 몇 살이냐고 물어보았고, 분명 31살이라고 한국말로 대답을 했다. 어느 정도 한국말을 아는 녀석이었다. 가이드는 외국인 환자와 다른 곳에 들러야 하는데 나 혼자 올라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정도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X레이를 찍고 나는 혼자 방으로 돌아왔다. 옆자리의 외국인 환자도 곧 돌아왔다. 나는 침대에 누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옆자리가 다시 소란스러워 졌다. 설득남의 목소리가 커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여자 울음소리까지 흘러 나왔다. 남자가 외국인 환자를 설득하기 위해서 열심히 뭐라 뭐라 하고 있는데 말을 잘 안 듣는 듯해 보였다. 환자는 나름대로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할지 알아보고 있는 듯했다. 사정이 궁금해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남자를 대면했다. 남자는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는 환자가 다니는 회사의 관계자였다. 무엇이 문제냐고 남자에게 물었더니 환자가 백혈병이라고 했다. 문제는 환자가 불법체류자라 의료보험이 적용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병원비가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었다. 의료보험의 위력을 실감해야만 했다.

  백혈병 동지가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동지애 때문이었을까? 나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출신이라는 외국인 친구에게 지금 상황에서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죽으라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외국인 친구는 젊기에 나보다 살 확률이 높다. 그런데 치료를 받지 말라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 졌다.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다니?"

      "그것은 죽으라는 소리와 무엇이 다르냐!"

 

나는 따져 물었다. 나는 내 꼬라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남의 일에 끼어들고 말았다. 옆에서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였을 것이다. 외국인 친구에게 절대 회사 관계자의 말을 들으면 안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회사 관계자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이 친구를 내팽개치면 당신네 회사가 곤란해 질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미친 것이 분명했다. 내 눈에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죽일 놈이고 젊은 친구는 곤경에 처한 불쌍한 배백혈병 동지였다. 내가 하도 협박을 해대니 회사 관계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협박하느라 휘졌고 있던 팔을 병원 관계자인 누군가 낚아채려 했다. 나는 단호하게 뿌리쳤다. 팔을 거세게 뿌리치며 쟤네들이 지금 저 친구한테 죽으라고 말하고 있다고 흥분하며 말했다.      


   “방금 저희보고 쟤네들이라고 했죠?”      


산만한 덩치의 회사 관계자가 그 구실로 눈을 부릅뜬 채 나를 쳐다봤다. 나도 질세라 쏘아붙였다.   

   

   “그래서 어쩔 건데요 “.

   ”지금 재네들 소리가 억울하게 들릴 때예요? “      


그러자 병원 사람들이 나섰다.


   ”환자분 지금 골수를 채취해야 하거든요?”

   “여기서 이러실 시간이 없어요.”     


 나는 일단 후퇴를 했다. 녀석 하고 한 바탕 더 싸울까 하다 그만두었다. 녀석의 처지도 있고, 산만한 놈이 눈빛을 한번 쏘아보자 기가 죽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회사도 이 산만한 덩치의 남자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골수를 채취하자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끌려가듯이 처치실에 들어갔다. 나는 골수 채취하면 무언가 거창한 방에서 환자를 묶어 놓고 죽든 말든 사정 안 봐주고 무자비하게 골수를 뽑아내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러나 골수 채취하러 가시죠? 하더니 바로 병실 앞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이렇게 허름하게 진행해도 되는 작업인가? 내가 상상한 장면이 전혀 아니었다. 나를 데리고 들어가 곳은 P 내과의 주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공의일 가능성이 큰 누군가가 간이침대에 엎드려 누우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얌전하게 엎드렸다. 이제 마취할 거예요. 좀 아프실 수 있어요? 그리고 내 엉치뼈를 이리저리 만져 보고 결심을 한 듯이 마취제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날카로운 무엇인가가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잠시 후 퍽하는 소리와 함께 주먹으로 한 대 맞은 듯한 뻐근함이 밀려왔다. 그는 아무 느낌 없었냐고 물었다. 이쯤 되면 보통 환자분들이 반응하는 데 전혀 반응이 없으셔서 좀 놀랐다고 했다. 나는 계속해서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러자 간호사가 이제 일어나셔야 하거든요라고 말했다. 나는 잠시만 더 누워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가 자리로 돌아왔을 때, 회사 관계자와 외국인 친구 사이에는 어느 정도 타협을 이룬듯해 보였다. 다른 좋은 곳에 가겠단다. 비용도 회사가 다 지불하기로 했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타협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젊은 친구에게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내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나 한국말 잘 몰라요”      


아침에 잘도 하던 한국말을 금세 까먹은 듯이 말을 했다. 한국에서 5년을 살았다는 친구가 내게 전한 말에는 나하고의 대화를 거부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마 회사 관계자의 입막음 조치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러냐고 말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골수 채취 후 지침에 따라 2시간을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그 사이에 옆자리는 조용해졌다. 그가 퇴원하면서 옆자리는 침묵에 빠져들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핏대를 올렸던 것일까? 죽음의 문턱에서 아직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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