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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리향 Oct 08. 2024

영혼에 몰아치는 파도

  내 이름이 불린 것은 9시 30분이 조금 넘어서였다. 사거리에 주차한 택배 차량은 아직도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나는 의사 옆에 놓인 작은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그는 앞선 환자의 뒤처리를 하느라 여전히 시간을 쓰고 있었다. 나는 까칠한 마음이 들었지만 잠시 방 안을 둘러보며 딴전을 피웠다. 내가 알 수 없는 의료 관련 원서들, 문 쪽 벽에 놓인 간이침대,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자그마한 창이 하나 있다. 그는 나에게 미안했는지 약간의 변명을 했다. 학생이라 먼저 진료를 보았다는 것이었다. 이건 내게 굳지 알려줘도 되지 않을 내용이었다. 그것을 알려준 것에 나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면서 그는 학생이 못 미더웠는지 몇 번이나 밖에 대고 당부의 말을 했다. 그것도 이해가 갔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어른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꼰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사정하듯 학생에게 몇 마디를 더 던지고는 나에게로 집중을 했다. 그는 어디가 아픈지를 물었고 나는 부은 턱을 가리키며 증세에 대해서 말을 늘어놓았다. 지금 내 모습이 이렇다. 저번 주에 집 앞 이비인후과 병원에서는 별거 아니라 했는데, 주말이 지나면서 상태가 이렇게 악화되었다. 임파선에 염증이 생겨서 발생한 문제인 것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 그는 유심히 환부를 들여다보더니 아무래도 당장 큰 병원으로 가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말을 했다. 그러면서 소견서를 써줄 테니 G 대학 병원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그는 심각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G 대학 병원보다 나은 C 대학 병원 이야기도 꺼냈다. 하지만 C 대학 병원하고 연결고리가 없는 듯해 보였다. 나는 G 대학 병원으로 갈 테니 소견서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자신의 소견서를 작성한 다음 간호사에게 G 대학 병원에서 진료가 가능한지 알아보라고 했다. 간호사는 몇 번의 전화 시도를 하고 나서 당일 진료 예약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는 빨리 G 대학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당일 예약이라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그에게 전하고 병원을 나와 바로 G 대학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하늘은 뭐가 그리 심기가 불편한지 잔뜩 찌뿌둥했다. 그리고 G 대학 병원 도착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겨울이 이래도 되는 거야? 너 미친 거니? 지금 비가 올 계절이니? 날씨에 시비를 걸 형편이 아닌데도 나는 괜한 시비를 걸었다. 심기가 불편한 것은 하늘이 아니라 나인 것이 분명했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했고 나는 병원 건물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차를 댈 수밖에 없었다. 건물 입구까지 족히 200m는 넘어 보였다. 그 거리를 걷는 동안 겨울비를 맞아야 했다.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나는 터덜터덜 걸음으로 비를 맞으며 걸었다. 몇 방울씩 떨어지는 비에 호들갑을 떨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평소의 걸음을 유지했다.

  15년 만의 방문이었다. 아버지가 이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었다. 모든 부분에서 건강을 타고나신 분이지만 유독 폐가 좋지 않았던 분이었다. 젊어서 담배를 피우셨지만 어느 순간부터 담배를 끊으셨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기침을 달고 사셨다. 돌아가시는 원인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아버지를 괴롭힌 것도 폐렴이었다. 폐렴이 악화되면서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중환자실에 들어가셔야 했다. 엄청 고통스러웠을 것이었다. 이 병원이 나하고 갖는 인연이었다. 그 인연이 나에게도 이어지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것을 따지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그때 G 대학 병원은 건물이 달랑 하나뿐이었다. 지금은 아주 웅장한 건물이 하나 더 지어져 있었다. 나의 발걸음이 향한 곳도 신축 건물이었다. 신축 건물의 웅장한 옆모습을 보면서 나는 건물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들어갔다. 싫지만 버틸 수도 없다. 괴물 안에 해결책이 있다면 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무슨 큰일이야 있겠어? 잠시 들렀다가 검사 좀 받고 다시 나올 수 있겠지? 나는 P 내과 의사의 소견서를 들고 이비인후과 접수대를 찾았다. 한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장난해 소리를 내 지르지는 않았다. 사람은 눈치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나는 적어도 30년을 넘게 어떤 문제의 해법을 찾아 독하게 기다릴 줄도 아는 놈이다. 2 시간 정도가 뭔 대수이겠는가?  

  담당 교수의 면담실에 불려 간 것은 1시간 30분 뒤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면담실 문 앞에서 잠시 대기를 했다. 면담실 안에 들어섰을 때, 나는 방 분위기가 예상과 다르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보통 외래를 보는 교수가 자리에 앉아 있고 그 옆에 환자의 의자가 놓이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일반 진료 면담실의 전형적이 풍경이었다. 그런데 교수는 자신의 자리에서 정면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옆에 누군가 한 명이 더 서 있었다. 아마도 내 등 뒤 문 쪽에 서 있는 사람이 간호사일 것이다. 왜 한 사람이 더 있지? 저 사람은 누구지? 나는 의아했다.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사이에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로 다가왔다. 이것 역시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전형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그녀는 키가 작았고 절대 호리호리한 체형이 아니었다. 그녀는 둥근형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단발에다 귀밑에 귀여운 방울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감이 넘쳤는데 왠지 믿음이 갔다.

  그녀는 P 내과 소견서를 보여 달라고 했다. 나는 옷 안에서 봉투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소견서를 한번 훑어보고 환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심하게 부은 턱을 여기저기 눌러가며 여기 아픈가요? 여기는요? 나는 누르면 아프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병원에 입원하셔야 할 듯합니다 “     


나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이건 아닌데. 하지만 P 내과 의사도 이 믿음이 가는 의사도 턱밑 부종이 단순한 증상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 몸은 내가 더 잘 아는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반문할 수 없었다. 꼭 그래야 하는지 묻자 그녀는 그래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나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졸지에 입원하게 되었다.

  나는 면담실을 나와 입원 병동으로 향했다. 외래 진료동은 구형 건물이었고, 병동은 신형 건물에 있었다. 처음에 나는 병원 구조를 알지 못해 많이 헤맸다. 나는 9층의 병실에 입원했다. 우선 입원을 위해서 원무과에 들러 접수를 하고 입원비를 지불했다. 그리고 9층으로 올라갔을 때 이것저것 처리하는 데 그럭저럭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병실 침대에 누웠을 때 4시가 거의 다 되었다. P 내과에 들러 잠시 처방전을 받고 집으로 귀환하는 생각을 품고 아침에 집을 나섰는데 지금 나는 G 대학 병원 병상에 누워있었다. 이상한 하루였다. 하루의 일과치 고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신비한 체험이었고, 어안이 벙벙해지는 하루였다.

   4시에 입원을 했기 때문에 저녁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수두룩 했다. CT, X레이, 심전도, 혈액 검사 등등 산더미처럼 나를 부려먹었다. 그래도 밥은 먹여가며 할 거 아냐? 양심이 있으면 그래야 되지 않아? 나는 점심도 먹지 못했다고요.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인간적으로 밥은 먹여가면서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지하로 내려갔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는지 대부분 가게가 닫혀 있었다. 다행히 가게 하나는 열려 있어 반가운 마음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도 오늘 장사는 끝났다고 매정하게 말했다. 아무거나 주는 대로 먹을 테니 밥을 달라고 사정사정했다. 그러나 음식점 직원은 단호했다. 그 단호함에 반하고 말 정도였다. 손님이 이렇게 사정해 가면서 밥을 달라고 하는 데도 매몰차게 외면하는 것이 정의라 말인가?

 나는 하는 수 없이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 가면 되는 것을 내가 너무 구차하게 군 측면이 있었다. 나는 판매대를 둘러보다가 치약과 칫솔을 집어 들었다. 밥을 찾아보았지만 먹을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우거지탕을 발견하니 아주 반가웠다. 토마토와 포도가 들어있는 팩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계산대에서 계산을 했다. 우거지탕 종이컵 안에는 내용물을 담은 빨간 비닐봉지가 하나 덜렁 놓여 있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버리면 안 된다는 심정으로 통통한 비닐봉지가 완전히 납작해질 때까지 눌러서 내용물을 종이컵에 부었다. 7분을 돌리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지시대로 전자레인지를 작동시키고 나서 자리로 돌아왔다. 무척 배가 고팠기 때문에 과일 팩을 뜯어 토마토와 샤인머스캣 포도를 몇 알 입안에 털어 넣었다. 쉽지는 않았다. 아래턱이 우습도록 부어 있어서 토마토 하나 입안에 집어넣는 것조차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니 저 우거지탕을 무엇하고 같이 먹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세상에 밥을 빼놓고 우거지탕만 열심히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있었다.

  나는 화가 났다. 내가 우거지탕만을 계산하려 했을 때, 밥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정도는 말해줘야 정상이 아닌가? 제대로 된 편의점 판매원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나? 니가 무엇을 사던 니 맘이지. 나는 관심 없어. 니가 우거지탕에 치약을 말아먹겠다고 해도 나는 문제없어. 나는 부아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나는 분노 게이지를 가라앉히고 평온한 태도로 여기 햇반 하나 계산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아주 건조한 말투였다. 젊은 친구가 얼마나 피곤하고 짜증이 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밀려들어 바글바글한데 혼자서 쉬지도 못하고 열심히 바코드를 찍어야 했을 것이다. 병원 편의점은 그냥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였다. 분명 엄청난 자릿세를 냈을 것이다. 젊은 친구는 쉴 틈도 없이 바코드를 찍고 하루에도 같은 질문에 지겹도록 대답해야 했을 것이다. 슬리퍼는 어디에 있죠? 치약은요? 내가 물었던 질문을 하루에도 수십 번 귀가 아프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런 친구에게 왜 밥 얘기를 안 해주었냐 따지는 것은 내가 쓰레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쓰레기는 아니고 싶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햇반을 다른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둘은 얼추 비슷한 시간에 작업이 끝났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자리로 옮겼다. 그리고 미친 듯이 먹기 시작했다. 맛은 제법 있었다. 다만 뼈가 너무 많아 골라내는 데 애를 먹어야 했다. 나는 하얀 바닥이 보일 때까지 다 먹어 치웠다. 이제 살만해진 듯했다. 과일도 모두 먹었다. 그 작은 토마토와 포도도 하나를 통째로 입안에 넣기 힘들어 반쪽으로 쪼개서 악착같이 다 먹었다. 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병실에 도착하니 거의 9시가 넘었다. 나는 양치를 한 후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간호사가 내 침대로 와서는 채혈을 한 번 더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요?, 왜 문제 있어요?”

    “적혈구 수치가 엄청 낮아요. 4밖에 안 돼요. 보통 13 이상이거든요.”     


  간호사는 내가 수혈을 받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녀는 12시가 거의 다 된 시간에 다급하게 나를 깨운 뒤 한 번 더 채혈하겠다고 했다. 무언가 급박하게 사정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나는 둔감했다. 밤 12시에 수혈도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수혈은 새벽 6시가 조금 넘어서야 끝이 났다. 나는 다음날까지도 바로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부분에서는 극도로 민감한 내가 나 자신의 몸에 지나칠 정도로 무신경했다. 내 안에 큰 병이 와 있다는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왜 입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직 투자 시연만이 내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 후에 담당 교수와 면담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오늘 교수의 첫 면담자가 되는 것인가? 왜 그리 일찍 만나는 것이지?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 법이다. 나는 폴대를 끌고 2층으로 내려가서 큰 복도로 나와 북쪽을 향했다. 이제 좀 건물의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접수대에 이야기를 하고 잠시 기다렸다. 이번에 내가 들어간 방은 면담실이 아니라 처치실이었다. 다부진 모습의 그녀는 손에 라텍스 장갑을 꽉꽉 눌러 다진 후 처치실 의자에 앉아 있는 내 앞에 섰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병이 아주 위중하다고 말했다. 백혈병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아마 그녀는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때 놀라 뒤로 자빠질지 모른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백혈병 하면 워낙 악명이 높은 병이었으니 사람들이 받아들일 충격이 가히 핵폭탄급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한테 든 생각은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투자 유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되는데. 야 이 미친놈아! 너 지금 죽을병에 걸렸다는 소리를 듣고 있어? 그런데 그 일을 걱정하고 있을 때니? 아마 다른 사람이 보면 미친놈이 분명하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백혈병 자체에 무덤덤했다. 사실 알고 보면 슬픈 이야기다. 나는 어느 정도 확실한지 물었고 그녀는 거의 확실해 보인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턱부위 증상의 완화를 위해서 주삿바늘을 넣어 고름을 빼 보겠다고 했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주사 바늘이 들어왔고 무언가 찔끔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던진 그 말이 얼마나 충격을 주고 있을까 생각해 보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 안 보태고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영혼에 집채만 한 파도가 몰아치는데도 나는 평온하기만 했다.

  나는 병실로 다시 돌아왔다. 얼마 있지 않아 전공의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찾아왔다. 어떻게 하시겠냐고 물었다. 나는 무슨 말인지 되물었다. 그는 여기서 검진과 치료를 받을 것인지 알려달라 했다. 나는 이제 방금 그 이야기를 들어서 좀 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우리 병원은 내일 당장이라도 골수 검사가 가능하고 치료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자기들은 마침 검사 준비가 되어있다는 뉘앙스였다. 그러냐고 고려해 보겠다고 했다. 나는 누구와 상의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내가 알고 있는 의사는 치과 의사인 이성이 밖에 없었다. 나는 그래도 나보다는 낫겠지 하는 심정으로 이성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백혈병에 걸렸는데 여기서 치료를 받는 것이 나을지 당장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C 대학 병원이 낮지 않겠어?”

    “국립 병원인데다 지역 대표 병원이니..”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은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주거지에서 너무 멀리 가면 너도 힘들 수 있고 보호자도 힘들 수 있다는 말을 해 주었다. 그러면서 녀석은 책임 지는 말에 부담이 되었는지 자신의 의견일 뿐이니 결정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그 다음으로 하영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공식적으로 나와 선배는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선배는 국내 최고의 백혈병 전문 병원인 S 병원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에서 어떻게 찾았는지 백혈병 관련 경험이 공유된 게시판을 나에게 보내주었다. 다들 S 병원에 가야 한다고 난리였다. 나는 나름대로 검색을 시작했다. 컴퓨터가 없으니 스마트 폰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맨 처음 검색한 것은 이비인후과 담당 교수에 대한 인적 사항이었다. 흥미롭게도 과학고 출신이었다. 그녀는 과학자가 아닌 의사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여러 검색을 통해서 이 병원은 아니라는 사실만은 확실해졌다.

  오후 1시쯤 다시 담당 교수의 호출이 있었다. 혈액 종양 내과 교수를 만나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가이드 뒤를 따라 혈액 종양 내과 교수를 만나러 갔다. 나는 어떤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런데 그 방이 매우 실망적이었다. 아마 그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듯했다. 전공의는 나에게 저녁 5시 이전에 결정해 달라는 말을 하고 떠났는데 나는 아직 일언반구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방은 마치 창고와 같았다. 책상 하나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고 혈액 종양 내과 교수가 앉아 있었다. 자신들이 치료 가능하니 여기서 치료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방안을 빙 둘러보았다. 이런 곳에 사람을 데려다 놓고 백혈병을 치료해 보자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어디서 나는 것인지 나는 궁금했다. 어차피 너 여기서 치료할 생각 없지? 그래도 한 번 찔러는 보는 거야? 한번 믿고 맡겨 보지 않을래? 아무 탈없이 잘만 있던 밥맛이 싹 사라질 것 같았다. 나는 그와 같이 방에서 나왔다.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듣기만 했다. 나에겐 말을 안 할 자유가 있었고 그런 떴다방 같은 방안에서는 최선의 대응책이다.

   혈액 종양 내과 교수와 면담을 마치고 나서 나는 셋째 누나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내가 지금 병원에 있는데 의사가 심각한 병이란다. 누나는 놀라서 당장 오겠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민이로 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직감했다. 이성이가 알려주었을 것이다. 녀석은 무슨 일이냐며 장난 아니냐고 물었다. 분위기 파악이 서툰 녀석의 머릿속에서 나올 만한 소리였다. 미친놈아 이런 것 가지고 내가 장난을 치겠냐고 쏘아붙였다. 하긴. 녀석은 수긍도 빨랐다. 녀석이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묻기에 나는 아무래도 C 대학 병원으로 옮길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녀석은 그게 낫겠지라며 동의를 했다. 그럼 언제 옮길 거냐고 물어보길래 누나가 도착하면 퇴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녀석은 친분이 있는 대전의 H 내과 의사에게 몇 가지 물어보겠다고 했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누나가 도착하고 나서 퇴원 수속 절차를 밟았다. C 대학 병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서류를 챙겼다. 시간은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병원 문을 나선 것은 5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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