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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리향 Oct 08. 2024

이상한 징후

  투자 유치를 위한 시연 시한을 몇 주 남겨 놓고 나는 P 내과를 찾았다. 아래턱이 보기 민망할 정도로 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병원은 9시에 오픈하지만 늘 하던 대로 나는 10분 전에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미 몇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늘은 6명이었다. 항상 4명은 넘었다. 나는 습관처럼 혈압계로 가서 팔을 집어넣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윙윙 소리와 함게 팽팽한 압박감이 올라오는가 싶다가 슬며시 빠지면서 숫자가 나타났다. 69-117로 정상이었다. 하지만 데이터의 재연성을 중요시하는 나는 늘 그렇듯이 한 번 더 측정을 했다. 이번에는 70-120이 나왔다. 이 정도면 데이터를 신뢰할 만했다. 혈압계 의자에서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고 시간을 보낼 채비를 했다. 다행히 내가 좋아하는 창가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파 끝자락에 앉았다. 내 앞의 대기자 숫자로 미루어보아 9시 30분에서 40분 사이에 진찰이 시작될 것이다. 그때 까지는 스마트 폰을 보거나 다른 소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내가 창가 자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스마트 폰에 의지하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창밖을 내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는 재미가 스마트폰 보는 재미보다 쏠쏠하다. 내가 이 병원을 맘에 들어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병원 창가에서 내다보는 사거리가 생각보다 좋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들. 그보다 더 드물게 지나치는 사람들. 너무 많은 차와 사람들이 지나다니면 오히려 정신이 사납겠지만 이 한산함은 마치 화이트 소음과 같다.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에 많은 도움이 된다. 방금 병원 앞을 지나친 사람은 어디로 가는 걸까? 아침부터 도로 한쪽을 막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도로공사 사람들을 보면서도 이 생각 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도로의 어떤 부분이 거슬렸던 것일까?

  사거리를 좌표계 사분면으로 나누면 병원은 3 사분면에 있다. 1 사분면에는 오피스텔처럼 보이는 건물이 낮고 길게 누워있고, 2 사분면에는 이 도시의 고속버스 터미널과 주차장이 있다. 그리고 4 사분면에는 소박한 상가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풍경이 절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6층 병원에서 내려다보는 넉넉할 정도로 넓은 도로의 한산함이 나는 좋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답답함이다. 답답함은 질색이다. 이 한적한 도시로 이사를 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 도시는 오래전에 군사 신도시로 개발이 되었지만 계획대로 되진 않았다. 아직도 많은 공간이 공터로 남아있다. 그러나 신도시를 설계할 때 나무를 이미 심어 놓았기 때문에 어디에도 큰 나무가 잘 자라고 있었다. 아마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썰렁함에 시큰둥해질 테지만 나는 이런 환경이 좋다. 불편한 것도 크게 없다. 병원이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 내가 느낀 불편함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 도시는 대전권이라 10km만 가면 그 문제도 금방 해결되었다.

 택배 차량인듯한 상용차가 병원 바로 앞에 주차하고 있었다. 차 옆에 바로 소화전 파이프가 있는데도 막무가내로 주차를 하고 있었다. 인도 쪽 문을 열려다 소화전에 닿아 열리지 않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반대쪽 문으로 내리면 되지!’ 라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인생에서 그 정도 불편함이야 다 감수하면서 사는 것 아니겠어 라고 속으로 자신을 타이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차피 다시 차를 움직이는 것도 불편한데 두 불편함의 무게를 열심히 저울질해서 내린 합리적 결론일 수 있다. 문제는 주차한 자리가 사거리 코너를 완전히 잡아먹고 있다는 점이었다. 차를 3m만 뒤로 움직여 사거리 코너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행복할 일이 많을 텐데 별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러면 소화전에도 닿지 않고 차들이 통행할 때 겪는 불편함은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은 아예 없는 듯했다. 이 도시의 장점이다. 이 정도의 위법은 그냥 넘어간다. 그는 아예 주변의 눈치를 살피지도 않고 당당했다. 그런데 이 사거리는 여느 사거리가 아니다. 시청 앞에서 30m만 직진하면 나오는 사거리이다. 나름대로 번화가에 속한 사거리인 것이다. 이 도시가 얼마나 한적한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택배기사는 어디론가 사라져서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내가 호출을 받기 직전까지도 차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P 내과를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의사와 코드가 맞기 때문이다. 첫 번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유다. 의사와 코드가 맞는 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말할 수 있겠지만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다. 지금까지 수많은 개인병원을 방문했지만, 의사와 코드가 맞는다고 생각한 적이 단언코 한 번도 없었다. 코드가 맞는다는 것은 내가 의사를 신뢰한다는 이야기다. 신뢰하지 않고 어떻게 코드가 맞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우선 의사 말을 잘 듣는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생각이 다른데! 라는 불순함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물론 나도 궁금한 점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꼬치꼬치 물어볼 때가 있다. 그때마다 그는 꼬박꼬박 대답을 해주었다. 그런데 대답을 할 때 생글생글 웃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대답하는 의사는 귀찮은데 그 귀찮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생글생글 웃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사는 아마 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문을 닫고 나가면 간드러지게 하품을 해댈 것이다. 억지로 웃느라고 죽을 뻔했네 하면서 턱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운동으로 몸풀기를 할 것이다.

   물론 생글생글 웃지 않는 의사가 모두 신뢰를 주느냐? 그것은 별개다. 나는 잠을 그리 잘 자는 편이 아니다. 수면제를 처방받기 위해서 다른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 의사는 생글생글 웃지도 않았지만 나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귀찮음이 철철 넘쳐 흘렀다. 내가 자주 찾아오는 고객이라면 성의를 보였겠지만 나는 6개월 만에 그 병원을 찾았다. 성의를 다할 필요가 없는 환자가 분명했다. 매출 기여도가 아주 미미한 하찮은 환자였다. 이런 환자에게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에 짜증이 난 듯 해 보였다. 당신 6개월 만에 다시 왔어! 한 달로 치면 당신이 나에게 기여하는 돈이 몇 천 원도 안될걸? 심하다 생각하지 않아? 양심이 있으면 생각해봐! 그런 당신에게 내가 얼마나 에너지를 쏟아야 하겠어? 그 병원이 항상 한산한 이유가 다 있었다. 이런 의사는 생글생글 웃는 의사보다 결코 낫다고 말 할 수 없다. 생글생글 웃는 의사는 적어도 자신의 직분을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사람에게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지나치게 친절함을 보이느라 에너지를 소비하다 보면 진짜 중요한 시점에서 에너지 고갈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 어느 분야에서건 지나친 친절함은 늘 경계해야 한다. 개인병원 의사의 경우 지나친 친절함은 에너지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정치가의 경우에 지나친 친절함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동력에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사회는 지나치게 선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정치가를 조심해야 한다. 그런 정치가는 정점에 오르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 결국 무능해진다. 남이 좋아하는 것만 취하려고 하는 사람은 결코 훌륭한 정치가가 될 수 없다. 훌륭한 정치가는 남이 싫어하는 일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을 무턱대고 강행만 하면 세상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좋은 것만 보여주려는 사람보다 더 최악이다. 세상일에 극단은 절대 추천할 것이 못된다. 지나치게 선하면 무능하게 되고 지나치게 악 하면 사회 시스템을 망칠 수가 있다. 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무엇인가를 실행할 때만 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정치가가 최상이다. 페리클레스나 루스벨트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정치가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 사회에서 친절함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지나치면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를 낳는다.  P 내과 의사는 지나치게 친절하지 않기에 환자를 돕는데 쓸 에너지를 더 많이 남겨 놓을 수 있다. 아주 현명한 의사다. P 내과 의사와 코드가 맞다고 생각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내가 처음 P 내과를 방문한 것은 코로나가 의심되는 상황에서였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나는 자주 가는 내과에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P 내과에 가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P 내과 주변은 주차가 편했다. 택배기사의 막무가내 주차가 가능하듯이 한적한 도로를 끼고 있어 주차는 언제든지 환영을 받았다. 검색을 해보았을 때, 내가 자주 가던 내과보다 평이 조금 나쁘긴 했지만, 충분히 수용 가능한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P 내과에서 코로나 진찰을 받았다.

  처음 진찰을 받을 때부터 나는 의사가 맘에 들었다. 언제부터 증상의 의심되었는지? 지금 증상이 어떤지? 그는 물었다. 보통 의사라면 그 정도 선에서 코로나 검사를 해보자고 끝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를 의자에 앉혀 놓고 침대에 뉘어 놓고 두루두루 살펴보는데, 정성이 느껴졌다. 그리고 검사를 하자고 했다. 왜 이리 번거롭게 하지? 측정만 하면 될 것인데! 나조차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검사에서 코로나 확정되었고 코로나 치료제가 주입되었다. 치료제가 주입되고 나서 30분 동안 병원에 있다가 가라는 오더가 내려왔다. 나는 구석 창가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창밖을 내다보다가 한 15분쯤 지난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을 나가려 했다. 그런데 진찰실 안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더 앉아 있다 가세요!“     


   내 감정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뭐야! 굳이 더 있을 필요가 있어?“ 하지만 이내 곧 내가 예전에 다니던 내과에서는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자 나는 얌전한 고양이가 되어 다시 창가 자리로 돌아갔다. 저런 단호한 자세에는 반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안전 시간을 다 채우고 병원을 나왔다. 병원비가 고작 6,000원 밖에 안 나왔는데 그 많은 배려와 신경을 쓴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지나치게 친절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병원 문을 나서면서 앞으로 이 병원과 친해 져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계기는 그 후에 발생했다. 사람의 신뢰는 절대 단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는 가볍게 지나갔다. 감기보다 못한 증상을 남기고 가뿐히 넘어가 버렸다. 코로나가 별거 아니네! 코로나가 많이 약해졌네! 나는 비웃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커다란 착각이었다. 코로나는 다른 곳을 공략하고 있었던 듯했다. 그 부분은 내가 생각했을 때 내가 가진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코로나가 가지고 있는 독성은 줄어들었을지 모르지만 그 영리함은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었다. 생체의 최대 약점을 찾아내는 귀신같은 영리함을 지니고 있었다. 코로나가 다 낳았다고 생각이 들 때쯤 이상한 증상이 찾아 왔다. 누웠다가 일어나기만 하면 눈앞이 하해지면서 어지럽고 몸을 가눌 수 가 없었다. 원래 내가 빈혈이 있는 체질이기에 그냥 빈혈이겠거니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이틀을 그냥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래도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는 아주 가끔 연례행사처럼 찾아올까 말까 했고 증상도 이내 곧 사라졌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웠다 일어나기만 하면 몸을 가누기 힘든 일이 이틀을 넘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P 내과를 다시 찾았다. 의사는 기립성저혈압인 듯한 데 코로나의 후유증 같다고 했다. 약을 먹으면 좋아질 수도 있지만, 근처 대도시 G 대학 병원에서 혈액 테스트를 받는 게 좋을 듯하다고 했다. 다른 의사의 말이었으면 “뭐 좋아지겠죠!“라고 말하면서 ”그냥 약이나 지어 주세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코드가 맞아가고 있는 그의 진단에 나는 순순히 그러겠다고 했다. 자신이 소견서를 써주고 간호사한테 예약을 잡아 보라 말해 놓겠다고 했다. 알았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나는 진찰실을 나왔다.

  그런데 일이 잘 안 풀리려고 그랬는지 간호사가 몇 번을 전화해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한 15분 동안 전화를 했던 듯하다. 그러자 의사가 직접 나섰다. 그러나 두세 번 전화해도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거기서 좀 더 대기하며 간호사에게 연결될 때까지 기다릴게요 라고 말했어야 했다. 아마 그렇게 부탁을 했을 것이다. 심각한 병이 나를 찾아왔거나 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찌 그것을 알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간호사와 의사가 20분 동안 애쓴 것에 부담을 느끼며 내가 직접 전화해서 찾아가겠다고 했다. 의사는 꼭 그러라고 했고 나는 알았다고 명량하게 대답을 했다. 하지만 주체성이 강한 나는 G 대학 병원에 가지 않았다. 대학 병원이라 절차도 복잡하고, 많이 기다려야 하고, 이러 저런 핑계를 댔지만 사실 귀찮아서였다. 치명적인 실수는 해야 할 일을 망각할 때 찾아오는 법이다. G대학 병원에 가지 않았지만 P 내과에 대한 나의 믿음은 더욱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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