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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리향 Oct 08. 2024

희망, 막다른 길목에서 줍다

  두 번째 숙제에 대한 정리 작업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2022년 5월 어느 날. 하영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준비되었지?”      


갑작스러운 전화였다. 뭘 준비되었다는 말이지? 나는 뭘?이라고 반문했다. 선배는 회사를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같이 일 해야지!”     


 나는 회사를 그만둔 거냐고 물었다. 선배는 그만둔 것이 아니라 휴직을 했다고 말했다. 연구원에는 휴직 창업 제도가 있어서 그것을 활용하면 연구원 안에 사무실 공간도 마련해 준다고 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내가 로딩 문제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선배와 한 방에서 같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나는 그즈음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로딩 문제 1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 하지만 로딩 문제 2는 문제 해결이 요원했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다리가 묶인 코끼리처럼 드디어 다리에 힘을 푼 것이다. 그런데 동업이라니? 그러나 나는 거절할 수도 없었다. 내가 선배를 부추긴 측면이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하고 선배는 벌곡으로 자주 놀러 가곤 했다. 벌곡에서 물고기를 잡아 찌개를 끓여 먹고 인근 카페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오는 코스를 즐겼다. 어느 날 그날도 벌곡을 향해 가고 있었다. 물고기 잡는 것은 생략하고 단순히 카페에만 들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가는 도중에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우리는 길가에 바로 인접한 백반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배는 무엇인가 자신만의 일을 하고 싶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나는 선배를 향해 심하게 부채질을 해댔다. 경제 기반이 안정적이니 그 정도 모험을 감행해도 될 거라는 둥, 애들도 다 컸으니 무슨 걱정이야라는 둥, 한번 태어났으면 해보고 싶은 것 해보고 죽어야 하지 않아!라고 부채질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넥슨의 김정주 이야기를 꺼냈다.     

 

“그 막대한 돈을 수중에 들고 있던 그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어? 더 이상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야. 사람은 희망이 없어지는 순간 살아갈 힘을 잃어버리고 말아. 형. 그 희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거야.”     


 그 말이 선배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선배는 휴직하고 창업 절차를 밟고 있었다. 이미 회사 이름도 정해졌고 법인 등록도 할 것이라 했다. 법인 등록에는 내 인적정보가 필요하니 몇 가지 서류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나는 선배를 부채질한 전력이 있어서 거절할 수도 없었다. “나 자신 없어? ”하기 싫어! “ 그런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실은 내가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어 “라고 고백할 수도 없었다. 제길 그때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나는 땅을 치며 후회했다. 그러나 한번 내가 내뱉은 말은 내가 감당해야 하는 법이다. 나는 우선 필요하다는 서류를 건네주었다. 선배는 내가 넘겨준 서류를 가지고 법인 등록을 마쳤다. 그런데 연구소 안에 사무실이 마련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연구소에서 나온다는 사무실은 깜깜무소식이었다. 다행한 일이었다. 30년을 넘게 해결하지 못했지만 그 짧은 순간에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아예 사무실이 안 나왔으면 싶기도 했다. 항공우주연구원아 힘을 내라! 공간이 없다고 말해라! 너를 강력히 응원한다. 내가 과연 이 난관을 돌파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로딩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는 찾아냈었다. 그것으로 로딩 문제 1은 거의 해결되었다. 그러나 그 방법만으로 로딩 문제 2에 대처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물을 끓이기 위한 1도를 찾지 못해 거의 포기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홍릉에서처럼 감당하지 못한 채 힘든 시간만 보낼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고 포기한 채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좁은 사무실 공간에서 선배와 내가 로딩 문제 2에 자주 노출되면 선배도 나도 난처해질 것이라는 압박감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나는 해결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고 싶은 마음에 정신과를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프로작을 처방받고 싶어서였다.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긴장을 해소법을 몰랐기 때문에 프로작만으로는 돌파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긴장 해소법과 결합이 되면 돌파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관저동에 위치한 정신과를 방문했다. 그 병원 의사는 생글생글 잘도 웃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별로 신뢰를 주지 못하는 행동이었지만 나는 그에게서 커다란 도움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별 거부감이 없었다. 나는 처방을 원할 뿐이었다. 그는 긴급한 상황에 도움이 되는 약을 같이 처방해 주었다. 그 약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일종의 우황청심환 같은 약이었다. 나는 프로작을 매일 먹어야 하고 한 달이 지나야 그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 동일한 처방을 유성의 다른 병원에서 6개월 동안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에도 두 가지 약을 처방받았다. 그래서 약의 효과와 효능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긴장 해소법과 프로작이 로딩 문제 2의 완벽한 해결책이 될지는 미지수였다. 한번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제발 부탁이다. 나 좀 살려줘 “     


  11월이 되자. 사무실이 준비되었다. 사무실이 준비되지 않기를 그토록 기원했건만 기도는 먹히지 않았다. 나는 감옥에 들어가기 싫은 죄수의 심정으로 사무실에 나갔다. 나는 5일은 버틸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무실에 나와도 당장 할 일이 없고, 집에서 사무실까지 거리도 있고 하니 일주일에 3번만 나오겠다고 했다. 선배가 그러라고 했다. 그러나 그 3일도 나에게는 벅찬 시간이었다. 역시 긴장 해소법과 프로작이 도움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약간 부족했다.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빨리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선배와의 관계는 엉망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지금이 위기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직감했다. 여기서 무너지면 나는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선배가 동업을 제안하기 전, 나는 거의 포기한 상태에서 시골살이 은둔 생활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지고 있던 참이었다. 실패한다면 20대 초반에 시작한 무모한 도전은 시골에서 은둔 생활로 막을 내려야 할 것이다. 대학 때 리셋 버튼을 누르면서 은둔에서 벗어나기로 작정했었는데 다시 은둔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유쾌한 결말은 아니었다.

  나는 두뇌를 바쁘게 움직이면서 산책의 힘에 은근한 기대를 했다. 산책은 앤드류 스마트의 「뇌의 배신」에서 말하는 디폴트 네트워크를 작동시킨다. 그리고 중요한 아이디어는 대부분 디폴트 네트워크 상태에서 얻어진다. 그러한 사실을 알기 전부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나는 늘 산책을 했다. 두 번째 숙제를 풀기 위해서 나는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의 난관에 부닥치곤 했다. 그때마다 산책은 좋은 해결책이 되어 주었다. 집 근처 천마산을 산책하면서 나는 구원을 바랐다. 천마산은 높이도 높지 않아 산에 다니면서 이것으로 운동이 될까? 의문이 들 만큼 경사도 없고 밋밋한 산이었다. 마지막 치고 올라가는 부분이 있지만 그 밑은 그냥 평지나 다를 바가 없었다. 평지를 걸으면 산책이 되고 마지막 치고 올라가는 부분을 오르면 등산이 되는 그런 산이었다.

  나는 어느 때보다 깊은 간절함도 함께 챙겼다. 나는 해결책을 찾아 하염없이 헤맨 세월을 아주 빠르게 되짚어 보았다. 나는 문제 해결에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첫째, 경직된 몸의 완화를 위해서 의도된 움직임이 필요하다.

    둘째, 점령군 행세를 하는 무의식을 의도된 생각으로 내몰아야 한다.

    셋째, 의도된 생각이 성공하려면 의식을 집중하는 적절한 부위가 필요하다.


두 번째가 로딩 문제 2를 푸는 핵심이다. 두 번째 항목이 성공하면 로딩 문제 2는 해결된다. 그러려면 나머지 두 가지가 단단하게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세 번째 항목이 문제였다. 그동안 나는 해답이 담긴 의식 부위를 찾아 하복부, 가슴, 얼굴, 머리 등을 정처 없이 배회만 했었다.

  나는 실패로 얼룩진 세월을 되짚으며 가능성이 없는 부위를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가능성이 큰 부위가 몇 개로 압축되었다. 그중에 상단전의 가능성이 가장 컸다. 나는 상단전이 다른 어떤 부위보다 강건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패를 거듭하자 상단전의 적극적인 시도를 외면했었다. 이는 호흡법에서 절대 추천하지 않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단체도 상단전 사용을 금기시한다. 보통 사람이 상단전에 의식을 집중하면 미쳐버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미쳐있는 인간이다. “

  ”미쳐있는 인간이 미쳐버린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

  ”여기서 더 얼마나 더 미칠 수가 있겠는가? “     


  나는 그동안 내가 미쳐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에 대해서 인식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의 저항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이 오작동하는 것도 정상은 아니며 정신이 이상한 것이다. 나는 미친 것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자 나는 과감해질 수 있었다.

  이 유쾌하지 못한 사실을 인정하고 나자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굳이 상단전 사용을 외면할 이유도 사라져 버렸다. 나는 상단전에 의식을 집중하면서 무의식이 보낸 망나니가 아니라 의도된 생각을 로딩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짐이 보였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 느껴졌다. 미세한 보완을 거치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긴장 해소법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실패로 점철된 지난 세월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긴장 해소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세월 동안 실패를 반복한 가장 큰 이유는 하부를 보강하지 않은 채 상부만 들여다보았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진전이라 할 수 있었다. 보완이 필요하더라도 긴장 해소법 정도의 중대한 보완은 아닐 것이다. 프로작은 보완재이며 필수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프로작의 도움은 점차 줄여나갈 것이다. 전에 말했던 유명 여배우의 자세를 추가하면 대응이 조금 가벼워진다. 나는 로딩 문제가 발생하면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는데, 그래 잡아먹을 테면 잡아먹어봐라 하는 태도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런저런 보완이 추가될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큰 틀은 완성되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투자 유치에 나선 것도 로딩 문제 2에서 커다란 진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로딩 문제 2에서 평생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견딜만한 정도면 충분하다. 누구든 미약하게나마 로딩 문제 2를 안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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