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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리향 Oct 08. 2024

절망, 코끼리가 다리에 힘을 풀다

  30년 넘게 죽도록 고생을 시켰으면 나를 가엾게 여겨야 마땅하다. 양심이 있으면 그래야 한다. 하지만 해답이라는 녀석은 정말 독한 놈이다. 아직도 나를 더 데리고 놀 셈인 듯하다. 나에게서 좀 더 단물을 빼먹으려 작정한 듯하다. 그렇다고 나도 그리 만만한 놈은 아니다. 나도 그 오랜 세월 동안 허짓거리만 한 것은 아니다. 내가 탑의 상부만 들춰보는 실수를 반복하긴 했지만 조금씩 하부로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답은 상부에 있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지각하기까지 장구한 세월이 흘러버렸다. 30년이 훌쩍 넘어 버렸다.

  로딩 문제가 발생하면 긴장이 극에 달했다. 초긴장 상태에서 몸이 돌처럼 단단히 굳어 버렸다. 그때 긴장을 풀어주는 행위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서 나는 몇 가지 방안을 찾아냈다. 나는 의도적으로 몸에 움직임을 주었다. 몸을 미세하게 흔드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로딩 문제 1의 경우 시선을 딴 데로 돌리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해결책은 원시적이었다. 나는 그동안 정신적으로 우아한 방법을 찾아 헤맸었다. 내가 그토록 긴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냈던 데에는 우아함에 집착한 탓이 컸다. 하지만 우아한 방법이란 없었다. 해결책이 참 알고 보면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우습다고 해결책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 밖에 나는 몇 가지를 해법으로 가지고 있었다. 

  녀석이 나를 좀 더 데리고 놀고 싶었더라면 실망을 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녀석이 아직 완전히 실망할 단계는 아니다. 아니 전혀 실망할 필요가 없다. 로딩 문제 1로 나를 데리고 놀 수는 없겠지만 여전히 그의 수중에는 나머지 문제가 남겨져 있다. 그것만으로도 나를 가지고 놀기에 충분하다. 정말 지겨운 놈이다. 대충 먹고 떨어질 놈이 아니다. 나는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나 나를 우려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너는 정말 독한 놈이야! 너는 어디 가서 대접받고 살지는 못할 놈이야! 안 그래?”

     “아니야! 넌 그리 나쁜 놈이 아니야! 사실 넌 괜찮은 놈인데 잠깐 역정이 난 것뿐이야."

     "그러니 나를 가엾게 여겨줘! 제발 부탁이야! 응?”     


  그러나 녀석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내가 사정한다고 아무리 불쌍하게 굴어도 마음을 고쳐먹을 놈이 아니다.      


    “남아있는 건 좀 어려운 문제일 거야. 잘해봐. 구경 좀 더하고 있을게.”     


이 지랄을 하고 있다. 정말 한번 물면 죽어도 놓지않으려는 악다구니 같은 놈이다. 어쩌다 이런 독한 놈한테 걸려서 고생고생하는지 참 나도 불쌍하기만 하다. 녀석의 말대로 로딩 문제 2는 쉽게 풀리지 않을 문제인 듯했다. 나는 여러 방면으로 시도를 해 보았지만 좀처럼 녀석의 실체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너는 도대체 어떤 놈이니? 그만 꽁꽁 싸매고 있지 말고 너의 모습을 보여 주면 안 되겠니?"

    "나 정말 힘들단 말이야."

    "참 너는 나의 그런 모습이 즐거운 거지. 너도 참. 어떻게 그런 악취미를 가진 거니.”     

  

로딩 문제 1을 풀었으니 녀석의 옆모습 정도는 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 앞모습은 흐릿하기만 할 뿐이다. 분명 녀석의 실체에 근접한 거리를 재보면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호아킴 데 포사다의 접근법에 의하면 적어도 물을 끓이기 위한 온도에서 1도가 부족한 99도는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 그러나 1도를 올리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그것이 문제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나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녀석이 원하는 1도는 무엇일까? 

   녀석의 실체를 흐릿하게 감싸고 있는 것이 하부의 문제인지 상부의 문제인지 확실치가 않다. 그래서 오리무중이다.      

    

    ”야! 대답해! 상부야! 하부야! 그 정도는 알려 줄 수 있는 것 아냐?”     


그동안 부대끼고 산 세월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제대로 정신이 박힌 놈이라면 그래야 하는 게 마땅하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는 데 그 정도는 해줘야... 고운 정은 개뿔이다. 고운 정은 털끝만큼도 없다. 미운 정도 없다. 단지 미울 뿐이다. 정말 지겹도록 녀석이 미울 뿐이다. 

  녀석이 좀 더 데리고 놀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내가 놀아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나도 지쳤다. 나도 무한정 너하고 놀아 줄 수는 없다. 나는 인간이지만 하나의 하찮은 생명일 뿐이고 코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코끼리가 다리에 힘을 풀었듯이 나도 그럴 수 있다. 그러면 너는 더 이상 나를 가지고 놀지 못할 것이다.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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