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메타인지'를 주제로 한 강연이나 저서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메타인지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하여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 발견, 통제하는 정신 작용' [네이버 국어사전]
'자신의 인지과정에 대해 생각하여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자각하는 것과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하며 자신의 학습과정을 조절할 줄 아는 지능과 관련된 인식' [네이버 오픈사전]
즉, 내가 어떤 것을 공부했을 때
지금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정확히 알고
스스로 채워나갈 줄 알면 메타인지가 높은 사람이다.
되뇌어 보면,
학창 시절 내신 공부를 했을 때 메타인지가 높았던 것 같다.
중고등학생 때 내신 성적이 좋았다.
전체 15과목 중 1개만 틀린 적도 있다.
내신 시험을 잘 보았던 이유는,
시험에 나올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넓게 잡고 그것을 모조리 외웠기 때문이다.
가정이나 기술, 체육, 미술 등 국영수사과 이외의 과목들도
한 과목 당 참고서를 3권 이상 구비하여 공부했다.
덕분에 시험 범위를 공부하면서
이것을 완벽하게 외웠는지, 헷갈리는 중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참고서들을 풀면서 조금이라도 주저되는 부분이 나오면
다시 교과서로 돌아가 그 부분을 달달 외웠다.
시험을 볼 때 어떤 과목은 그 페이지의 형광펜 색상이 사진처럼 그려졌다.
종이 울리자마자 모든 정보가 분해된 점은 아쉽지만
어쨌든 단기 기억이 큰 역할을 하는 내신에서는 메타인지가 잘 발휘되었던 것 같다.
반면, 열심히 노력해도 메타인지가 낮은 분야가 있었으니 그것은 '영어'였다.
정말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영어 공부는 쉽지 않았다.
덕분에 야심 차게 준비했던 외고 시험에서 보기 좋게 낙방하였다.
인생 처음으로 겪었던 실패라 충격이 컸는데
돌이켜보니 외고 대비 공부를 할 때만은 메타인지 기능을 OFF 해놓았던 것 같다.
학원에서 아무리 공부해도 영어가 잘 안 들렸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그것을 어떻게든 들리려는 방향으로 실력 향상을 위해 공부해야지.
결심한 것이 아니라
방법도 모르겠고 자꾸 들어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하니
'머리가 안되면 몸뚱이로!'
무대뽀 정신으로 공부시간 총량을 무작정 늘리기로 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을 들이대며 하늘에 땡깡을 부려보기로 한 것이다.
'아 몰라 몰라.
디따 열심히 할 거야. 걍!'
그래서 영어는 잘 안 들리고 어려웠지만
방학 때에도 매일 밤 12시가 넘도록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다.
어떻게 영어 실력을 늘려야 하는지는 모르겠고
그저 학원에서 내주는 숙제를 열심히 하고 단어 암기만 했다.
이렇게 열심히 하면 하늘이 감복하여 내 꿈을 이루어주시겠지. 생각했다.
외고에 무척 들어가고 싶었고,
인생 처음으로 품은 간절한 꿈이었기 때문이다.
시험 당일이 되었고,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영어 듣기 평가가 시작되는데,
거짓말 안 하고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하.나.도.
뒤에 문제들도 너무나 어려워서 영심이처럼 달님~ 하며 거의 찍다시피 하고 나왔던 것 같다.
시험을 마치고 나와보니
엄마가 밝은 미소로 기다려주고 있었다.
나중에 낙방 결과가 떴을 때 그제야 엄마는 말씀하셨다.
예상했다고. 시험 보고 나올 때 네 표정이 말해주었다고.
그때 나는 인생의 중요한 원리를 깨달았다.
간절히 원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력을 갖추고' 간절히 원해야 이루어진다.
차라리 '실력을 갖추면!' 간절히 원하지 않아도 이루어진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전교 1등을 여러 번 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인정받던 나는
피아노 위에 쌓여있던 수많은 합격엿과 꽃다발만큼 부끄러운 마음만이 컸다.
합격생 친구들이 소식을 여기저기 전할 때
학교 양호실에 가서 누워 있었다.
꾀병이 아니라 진짜 아픈 날이었다.
말을 잘하고 싶어 내가 어떠한 방송이나 연설, PT를 준비했다고 가정해보자.
"얼마만큼 준비되었을 때
무대에 나가서 힘을 뺄 수 있나요?"
하고 누군가 질문한다면
"당신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을 말할 정도가 되면 됩니다."
하고 답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몸이 안 좋고 술에 취해도
애국가를 불러보라고 하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해물과 백두산이~" 하고 술술 나올 것이다.
어릴 때부터 반복하여 암기의 수준을 넘어 체화된 문장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무대에서 말하라고 하면
적어도 대사를 잊어버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정도의 준비가 되면
이제 다음으로
현장 분위기와 관객을 고려할 여유가 생긴다.
즉, 힘을 빼고 오롯이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시선이라든지 표정, 목소리 등도 수많은 연습을 통해 내면화시켜야 한다.
정작 무대에 올라가면 이런저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아나운서 준비생들에게 선생님들이
'평소 아나운서처럼 행동하고 말해야 한다'라고 하는 이유도
극도의 긴장감이 함께하는 면접을 볼 때는
내가 준비한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일상의 모습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 아나운서 다움을 습관화하라고 하는 것이다.
힘을 빼기 위해서는 완벽에 가까운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사를 달달 외울 때는
당장 암기하자마자 대본을 덮고 말할 수 있을 정도에서 멈춰 선 안된다.
거기까지는 10%이다.
갑자기 양치를 할 때도 툭 나올 수 있어야 하고
잠들기 전에도, 막 일어났을 때에도, 친구랑 대화하는 중에도, 문득 무언가에 깊이 빠져 있다가도
"진행해보세요."
하면 대사가 툭! 나올 정도가 되어야
50% 정도 완성된 것이다.
이 정도 대사가 체화된 뒤에
진행 톤, 표정, 자세 등을 점검하고
내 모습을 여러 번 찍어보고 모니터 한 뒤
"아, 이 정도면 되었다."
"이보다 더 준비할 수는 없다!"
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100% 채워졌을 때,
현장에서 대본만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프로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인사도 하고
대기실에 있는 다른 출연자에게 말도 걸며
여유 있는 모습으로 모든 과정에 임할 수 있는 것이다.
혹시 어떠한 발표나 무대를 앞두고 있다면
'누군가 나에게 지금 진행해보라고 했을 때
애국가를 부르듯 편안하게 답할 수 있는가?'
체크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