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세상
언제나 뒤에서 너를 응원할게
가슴이 철렁했다.
처분할까 고민했던 책을
아이가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친구끼리 장난감을 두고 싸우다가 화해하는 내용의 책이었다.
중고로 한 번에 여러 책을 구비했는데
막상 보니 몇 권은 싸우고 떼쓰는 내용이 많아 마음에 안 들던 참이었다.
'아직 우리 애는 싸움이 뭔지도 잘 모르는데 오히려 책으로 배우겠어.'
어떤 책은 이제 막 연필을 잡기 시작한 아이가 그린 듯 형체가 불분명한 그림이 가득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색감이 우중충한 책도 있었다.
파스텔의 꿈동산 같은 색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왠지 이 책들을 들여놓으면 인테리어를 해칠 것 같았다.
그래서 맘에 썩들지 않는 책들은 창고에 넣거나
짐도 많은데 처분할까 고민했던 것이다.
의외로 아이가 잘 보는 것 같아 우선은 그냥 두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우중충하고 요상한 그림들을
아이는 재미있게 보는 듯했다.
내가 옆으로 가면 꼭 읽어달라고 했다.
나란히 앉아 소리 내어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초롱초롱한 눈으로 재미있게 듣는 아이를 보니
머리를 크게 맞은 것 같았다.
아이는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데
엄마가 안 된 듯했다.
아이는 씩씩하게 탐험할 준비를 마쳤는데
엄마인 내가
"거기는 위험해! 이쪽으로 가자."
하며 아이를 방해한 것 같았다.
언젠가 아이가 내게 크게 화낸 적이 있다.
나는 벽에 기대어
진지한 표정으로 기찻길을 이어가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노라니 이대로 가다가는 다음 블록을 놓았을 때 매트가 두꺼워 높이 차이로 떨어질 상황이었다.
열정이 넘쳤던 나는 아이가 다음 기찻길을 놓으려는 찰나,
재빠르게 방향을 전환해 기찻길을 매트 안쪽으로 돌려주었다.
'나이스 캐치!'
그런데 그 순간 아이가 나를 원망하며 바라보았다.
이어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아이가 그렇게 서럽게 운 건 처음 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라 무척 당황했고 아이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마음먹었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진 보기만 하자.'
그날 아이가 원래대로 기찻길 블록을 두었다면
툭 하고 떨어지는 것을 보며
'아, 이럴 때 이렇게 놓으면 떨어지는구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작은 경험처럼 보이는 그 순간이
아이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감히 나는 알 수 없다.
깨끗하고 맑은 오아시스에서 살고 싶었다.
그렇지 않은 광경을 보았을 때는
나만의 무지개 프레임을 만들어 파스텔 물감으로 덧칠했다.
그러나 그런 삶은 자연스럽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나부터가 오아시스가 아니다.
아이가 비바람을 맞지 않게 해주는 것이 좋은 부모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일을 계기로 마음이 달라졌다.
어차피 살아가면서 맞아 볼 바람이라면,
태풍에 날아도 보고 비바람에 흠뻑 젖어보는 것도 좋겠다.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갔다면 말이다.
그럴 때 고맙게도 내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준비해둔 따뜻한 옷과 우산을 내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