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천사를 만난 후에야

by 이윤지

"아프리카 촬영 같이 갈래?"



이게 꿈이냐 생시냐.

전화를 받고 심장이 요동쳤다.

아프리카 봉사는 평생에 꼭 한번은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촬영팀으로 가니 방송도 하고 봉사도 하고 일석이조였다.


가장 먼저 디지털 매장으로 가 최신형 카메라를 장만했다.

아이들의 미소와 함께 내 모습을 멋지게 담을 기회였다.

나이팅게일 같은 느낌으로 싸이월드를 채워봐야지!


우리나라 대기업의 후원으로 콩고민주공화국의 의료 복지를 돕는 뜻깊은 사업이었다.

기부 차량으로 마련된 수십대의 엠뷸런스가 현지에 먼저 도착하였고

의료진과 촬영팀, 관계자들은 후발대로 날아갔다.


'와! 아프리카다!'

촬영의 본분보다는 아프리카에 간다는 생각에 들떴다.


비행기가 착륙할 즈음

코끼리와 기린이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연신 비행기 창문만 내려다보았다.


도착해보니 현지 상황은 매우 열악했다.

국제공항은 작은 기차역 같았고

내전 중이라 경비가 삼엄했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버스가 대중교통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의자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문도 없이 훤히 보이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은 손잡이에 의지한 채 위험하게 달리고 있었다.


길거리 가판대의 바게트 빵에는 파리가 앉아 있었다.

냇가에는 쓰레기가 가득했고 그 위에 커다란 봉지를 던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일회용 봉지에 물을 넣어 식수로 팔고 있었는데

저 냇가의 물을 그대로 담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뿌옇고 상태가 좋지 않았다.


숙소에 짐을 정리하고 일주일 동안

우리는 매일 의료검진 차량으로 달려가 콩고 사람들을 만났다.


대한민국 의료진들은 먼저 콩고 의사들에게 의료 장비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산부인과 초음파 기계의 경우

콩고 선생님들 모두가 신기해하며

배 위에 장비를 대고 요리조리 실습해보기도 했다.

교육을 마친 뒤에는 내과, 치과, 산부인과 차량으로 나뉘어

본격적인 의료 활동을 시작하였다.


하루, 이틀, 삼일 째가 되자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나는 촬영팀으로 왔지만 사실상 피디님이 주로 현장을 담으셨고 리포팅은 이틀 정도 잡혀 있었다.

생각보다 할 일이 많지 않았던 나는

삼각대도 들고 다녔다가 줄 세우는 것도 도왔다가

여기저기 심부름을 다녔다.


그러다 드디어 할 일을 찾았다!

약을 나누어주는 일을 맡은 것이다.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에 자신 있는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최적의 일이었다.


콩고의 공용어인 프랑스어로 아침, 점심, 저녁이

무엇인지만 통역사 분에게 빠르게 배웠다.

'마틴, 미디, 수아'

이 단어를 이용해 환자들에게 복용법을 알려주었다.


일회용 봉지 안의 알약을 3등분으로 나누어 각각을 돌돌 만 뒤에

아침, 점심, 저녁 식후에 물과 함께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드렸다.


"마틴~~ 미디~~ 수아~~?

냠냠~~ 그다음에 약 먹고~~ 물 마셔요!!"

고개를 들어 물 마시는 흉내를 냈다.


그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깔깔대며 박장대소했다.

약 먹는 흉내를 내는 것이 웃기다했고

특히 프랑스어로 아침, 점심, 저녁 발음하는 걸 재미있어했다.

한 분은 이게 본토 발음이라며 장난치듯 나에게 계속 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분명 우리는 대화하고 있었다.

국경 없는 사랑이란 게 뭔진 잘 모르겠지만

인류애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겠다 싶었다.

아이들과 넓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 때도,

같이 사탕을 먹으며 뛰어다닐 때도 행복했다.


다음날에는 검진 차량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에는 각 차량을 돌아다니며

혹시 더 할 일이 있을까 살폈다.

가만히 머물다보면 소소하게 할 일들이 생겼다.


내과, 치과에 이어 산부인과 검진 차량에 도착했다.

유난히 줄이 길었다.

몸이 위독해 바닥에 쓰러지듯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업혀서 온 여성도 있었는데 남편이 진료 소식을 듣고 한 시간 동안 걸어서 업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환자들이 검진을 받고 나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유를 여쭤보니

몇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고,

힘없는 목소리로 전해주었다.


그때 너무나도 귀여운 여자 아이가 엄마와 함께 들어왔다.

눈망울이 어찌나 큰지 당장이라도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나는 아이가 너무 예뻐서 꺅 소리를 지르며 인사했다.


"아가야 안녕~~?

Hi~~! What's your name?"


조용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시 보니 몸이 많이 여위어 있었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멍 했다.


마침 가지고 있던 달콤한 주스를 건넸다.

아이가 한 입 마셨다.

그래도 표정이 없었다.

너무나도 기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동 진료 마지막 날 줄은 더 길어졌고

결국 의료진을 만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뒤로한 채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진료를 마치고 갈 때마다 우리는 국빈 이상의 대접을 받았다.

건장한 학생들은 우리가 탄 차량의 창문을 두드리며 한참을 따라왔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우리를 진심으로 환대해주었고

헤어질 때면 누구보다 아쉬워해주었다.


의료진 봉사에 뿌듯해하며 즐겁게 돌아오던 나였지만

마지막 날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 많은 엠뷸런스들이 고장 없이 오래갈 수 있을까?

돈이 없어 병원도 못 가는 사람들이 고급 장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의사 선생님 얼굴도 못 보고 간 저 사람들은 어쩌지?

진정한 도움을 주고 간 것이 맞는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같은 해 초에 나는

앞서 베트남, 캄보디아 사회공헌활동 촬영을 다녀왔었다.

당시에도 출발하기 전부터 그야말로 봉사뽕에 취해 있었다.

해맑게 웃는 아이들과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자애로운 나이팅게일이 된 것 마냥 흐뭇해했다.

천사 같은 봉사자가 되어 아이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앞서 달려가면

아이들은 아기 오리처럼 그 뒤를 따랐다.

내가 하트를 그리면 아이들도 하트를 그렸고

내가 손가락으로 쉿! 하면

아이들도 낄낄거리며 다 같이 쉿! 했다.

참 즐거웠고 순수하고 맑은 눈망울을 보며 행복했었다.


하지만 그만큼의 아픔도 있었다.

헤어질 때마다 서로 눈시울을 붉혔던 것이다.

한참을 재미있게 놀다가 이제 가봐야 한다고 하니

몇몇 아이들이 눈물을 보였다.

떠나는 차 안으로 달려와 과일을 건네준 아이도 있었다.

야자수 열매를 꼬옥 들고

달리는 차 안에서 나도 눈물을 훔쳤었다.

프로페셔널 정신으로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철없는 대학생 리포터는 또 마음만 복잡해졌다.


내가 이 아이들을 잘 만나고 온 게 맞나?

이렇게 단 하루 신나게 놀고 잘해주고 오는 게

정말 아이들을 위한 게 맞을까?

헤어질 때 상처가 된다면

차라리 안 만났던 게 나았던 건 아닐까?



이때 만난 아이들의 미소를 떠올리면 참 좋다가도

헤어질 때의 눈물과 힘 없던 그 눈빛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릿해진다.


그동안 내가 하고 온 것이 봉사가 맞긴 한 걸까.


섬마을에 가서 쓰레기를 한번 치우고 왔다고

시각 장애인에게 책을 낭독해드렸다고

주걱을 들고 급식을 배분해드렸다고

그것을 봉사를 하고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전에 내가 버린 수많은 쓰레기를 누군가는 묵묵히 치워주었고

말을 조금 잘한다는 이유로 낭독 봉사란 것을 할 수 있었고

급식은 물론 살아오면서 밥도 참 많이 얻어먹었다.


지금도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면

내가 '봉사'라는 이름으로 행했던 일들은

흙 한 톨에도 들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나의 봉사뽕이 해가 되진 않았을까 우려가 된다.


달콤한 주스 한 모금에도 생기가 돌지 못했던

굶주린 천사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지금까지도 나 자신이

날개 없는 천사라고 착각하며 살았을 것이다.



내가 그 무얼 해도 받은 것엔 한참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 무어라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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