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수련회를 가는 날이면 아침부터 결연했다.
버스에서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 말겠단 생각뿐이었다.
출발하는 날이 되면
학교 정문에는 엄마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었다.
버스가 한 대 씩 느릿느릿 나가면
엄마들은 손을 흔들며 창가의 아이와 인사를 나누었다.
여느 때처럼 엄마도 그곳에서 내가 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정해진 자리에 앉아
곧 출발한다는 기사 아저씨의 음성을 듣고 안전벨트를 매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엄마와 인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문에 이르기 직전
버스가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돌아 나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반대편 창가에서 나를 찾고 있었다.
'어! 나는 여기 있는데!'
순간 너무 놀라 안전벨트를 빼고 벌떡 일어나서
건너편 친구 좌석으로 뛰어 넘어갔다.
이미 버스는 한참 지나간 후였고
엄마는 멀리서 두리번두리번 나를 계속 찾고 있었다.
이산가족 현장도 아닌데
그 장면이 어찌나 슬펐던지
나는 그날 버스 안에서 내내 울었다.
수련회 촛불 시간이 다가오자 이때다 하고 목청이 떠나가라 통곡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수련회 버스가 출발할 때면 거의 엉덩이를 들고 서 있었다.
엄마가 이쪽에 있는지 저쪽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잽싸게 이동한 뒤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나서야,
비로소 친구들과 편히 놀 수 있었다.
이따금씩 버스를 타고 외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에도
결연한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헤어질 때 인사하는 순간이 너무 슬펐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음이 덜 아프려나
만나기도 전에 헤어질 순간을 걱정하였다.
"할머니, 또 올게!! 들어가요!!!"
우리 할머니는 내가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결코 들어가는 법이 없었다.
아파트 고층에서 나를 배웅해주는 외할머니와의 인사 과정은 늘 같았다.
1층으로 내려온 나는
저 위 11층을 바라보며 큰 목소리로 말한다.
"할머니!!! 나 갈게!! 이제 들어가!!!!"
빠이빠이를 한 뒤 씩씩하게 걸어간다.
몇 발자욱 가다 다시 뒤를 돌아본다.
복도 난간 너머로 나를 보고 있는 할머니가 보인다.
나는 손을 크게 흔들어보인 뒤
다시 몇 발자욱을 가다 뒤를 돌아본다.
"할머니 들어가!!!"
빠이빠이 흔들고.
몇 발자욱 가다 다시 뒤 돌아보고,
빠이빠이를 하고.
그즈음이 되면
어느새 눈가엔 눈물이 그득했다.
할머니가 거의 보이지 않는 저 끄트머리에 이르면
그제야 막 울면서 정류장까지 뛰어가곤 했다.
어릴 때 둘리를 좋아해서 모든 편을 다 보았는데,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둘리가 친구들과 깐따삐아 별로 날아가 드디어 그리던 엄마를 만난다!
"엄마 엄마" 하면서 둘리가 엄마 등에서 미끄럼틀도 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갑자기 지구별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온다.
둘리는 "싫어 안가. 너희만 가." 했다.
그런데 희동이 녀석이 둘리의 발을 끈으로 묶어서
결국 길동 아저씨 집으로 다 같이 돌아온 것이다!
만화에선 다음 편으로 전환되며 우스꽝스럽게 일상을 시작하지만
나는 너무나 큰 충격에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그럼 엄마는 어떡하지?'
"둘리야~ 둘리야~ 아가야 어디 갔니. 아가야 이리온~ 둘리야~ 둘리야 둘리야~"
엄마가 두리번거리며 둘리를 찾는 성우의 음성이 무척 구슬펐다.
아이를 낳고 시부모님 댁에서 한 해를 보냈다.
태어났을 때부터 쭉 함께 지내다 보니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참 많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우리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헤어질 때 서럽게 운다.
"시저 시저. 하무니. 하부지"
서글프게 우는 아이를 보내고 나면 어머님, 아버님도 마음이 아프셔서
잘 들어는 갔는지, 이제는 괜찮은지 꼭 물어보신다.
어느 날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정 많은 거는 누구 닮은 거야~?"
여쭤보실 만도 한 게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거리가 멀다.
어떤 상황이 와도 상처를 덜 받는 쪽으로 심장이 재세팅 된 것이다.
성격 검사를 하면 항상 감성형으로 나왔던 항목마저 이성형으로 바뀌었다.
남편에게 혹시 옛날에 수련회에서 촛불의식을 하면 울었냐고 물어보았다.
본인은 지금도 그 시간이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당연히 울지 않았고 엉엉 우는 친구들이 신기해서 구경했다고 했다.
그래그래. 놀랍지도 않오.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성격은 나를 닮지 않았으면 하는 게 생긴다.
좋은 것만 물려주진 못하더라도
이런 점만큼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싶은 것이다.
앞으로 아이가 솥뚜껑 열차를 타고
깐따삐아 별을 탐험할 일이 많을 텐데,
잠시 떨어져 있더라도 "엄마 엄마" 슬퍼하지 말고
아빠처럼 '쟤네 왜 울지?' 하며 쿨하게 지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