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30
호스피스 병동 2일 차.
하루의 경계가 무너졌다. 어둠이 깊으면 잠들고 날이 밝으면 깨는 일상의 당연한 흐름이 깨지니 시간에 길들여진 몸이 맥을 추지 못한다.
엠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온 어제 하루에 너무나 많은 일을 겪고 많이 울어 피로가 몰려왔지만 밤이 되자 입원실의 고요함에 등줄기가 서늘해온다. 자정 무렵 겨우 눈을 붙였다가 두어 시간 후 간병인의 방문에 잠이 깼다.
욕창을 방지하려고 몸을 돌려 눕히러 오는 데는 밤과 낮이 없다. 야간 교대한 간병인의 힘찬 기운에 놀라 눈을 뜬 엄마를 본다. 약기운으로 의식을 회복한 엄마는 새벽 두 시부터 잠을 자지 않았다. 며칠째 눈도 뜨지 못하고 내처 잠만 자던 엄마가 또렷하게 두 눈을 뜨고 있으니 내 잠도 싹 달아난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니 집이 아니라는 걸 알고 불안해하는 것 같다. 내손을 꼭 붙잡고 있는 엄마의 따뜻한 손에서 그간 느끼지 못했던 힘이 느껴진다.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다 날밤을 새웠다.
신기하리만치 오랜 시간 눈을 뜨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낯설고 반갑다.
이렇게 자다가 영영 눈을 뜨지 못하는 게 아닐까 두려움이 엄습하던 지난 며칠이 못내 아쉽다. 항암을 하지 않으면 입원하는 의미가 없다는 대학병원은 입원을 거부하는 대신 호스피스를 권했다. 호스피스가 있는 병원을 여러 군데 다니며 보호자 진료로 상담을 받고 대기를 걸어놓느라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음에도 왜 진작 병원에 모시지 못했나 하는 죄책감이 밀려온다.
아무리 깨워도 의식이 들지 않아 119 구급차를 부르며 울고 불고 했던 어제의 상황이 무색하게, 뇌압을 낮춰준다는 약은 사람을 정반대로 바꾸어 놓았다. 몇 날 며칠 먹지도 못한 양반이 날밤을 꼬박 새우고 지칠 만도 한데 해가 중천에 떠올라도 잠들지 않는다. 눈을 떴다는 반가움도 잠시, 약이 너무 독한 게 아닐까 걱정스럽다.
오전 회진 때 의사가 말하기를, 그간 긴 수면으로 밤과 낮의 구분이 모호해졌을 테니 생체리듬을 바로잡기 위해 아기에게 수면교육을 하듯 제때 자도록 하는 것이 좋단다.
밤의 피로를 꾹꾹 눌러 담은 채 종일 재잘재잘, 말 배우는 아이에게 하루 종일 혼잣말을 했던 때처럼 이말 저말 떠오르는 대로 엄마를 자극해 본다. 어떤 마음으로 병원에 엄마를 데려왔는지, 병원 오기 전에 이모가 찾아온 걸 기억하는지, 예전에 어디 어디에 여행을 다녔는지 묻기도 하고, 손녀딸들이 보내온 응원 영상도 보여준다. 내 기운이 달릴 때면 유튜브를 열어 트로트부터 클래식까지 음악도 들려주고, 사치스럽게도 틈이 나면 읽으려고 챙겨 와 한 번도 펼치지 못한 책도 읽어준다. 그 사이사이, 엄마는 깨어있고 나는 꾸벅 졸고 있는 웃지 못할 순간도 있고, 두어 번 짧은 엄마의 말도 몇 마디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만 하면 정말 기적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하루종일 엄마 옆에 앉아 손을 맞잡고 있는데 호스피스 병동 소속의 사회복지사가 노크를 한다. 오늘 병동 로비에서 머리핀 만들기 강좌가 있단다. 엄마가 조금만 더 기력이 있었다면 같이 참여해 작은 추억거리를 만들었겠지만 이미 엄마의 팔다리는 힘을 잃었다. 누워있는 엄마를 두고 느긋하게 핀을 만들 마음의 여유는 없다.
엄마가 잠시 눈을 붙인 틈에 간병인들이 필요하다는 물건을 사러 다녀오는데, 프로그램이 끝나고 정리하던 사회복지사가 완성된 머리핀 하나를 나에게 건넨다. 돌아보니 강좌에 참여한 보호자 두어 명이 보인다.
'저 사람들은 돌보는 가족이 그나마 컨디션이 괜찮은 걸까? 얼마나 오래 병원에 있었길래 이런 걸 만드는 여유가 생긴 걸까?'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가족을 병실에 혼자 두고 속 편하게 머리핀이나 만드며 앉아있는 이들이 어째 못마땅했다. 밤을 지새운 피곤함 끝에 오는 효녀 코스프레다. 환자와 보호자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보호자의 휴식도 꼭 필요하기에 이런 프로그램이 운영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엄마가 잠을 깨서 아직 낯선 병실에서 겁을 먹고 있지는 않을까 혼자 마음이 조급해져 머리핀 하나 받아가라며 말을 붙이는 사회복지가의 친절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내 마음이 옹졸해질수록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눈도 좁아진다.
어쨌거나 하나 얻은 머리핀, 그걸 엄마에게 꽂아주고 사진을 한 장 찍어본다. 흰머리에 짙은 파랑 머리핀이 동동 뜬다. 평소라면 "엄마, 안 어울려."하고 말았을 일이, 사진을 남겨야만 할 것 같은 아쉬운 순간이 되었다.
너무 긴 시간 깨어 있어 오히려 걱정이 되려던 참인데, 어둠이 내려앉고 엄마의 눈꺼풀도 살며시 내려간다.
"잘 자, 사랑해~~."
딸들에게만 스스럼없이 나오는 이 말을 요즘은 엄마에게도 틈이 나는 대로 해준다.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이 어렵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깨달은 후로 나뿐 아니라 세상 무뚝뚝한 오빠까지도 쑥스러운 티를 팍팍 내며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엄마, 잘 자. 오랜만에 딸한테도 잘 자라고 좀 해 주지?" 했더니 열흘 넘게 말문을 닫았던 엄마 입에서 "잘 자라."는 기운 없는 말이 새어 나온다. 이게 뭐라고, 엄마의 한 마디에 감동인지 서글픔인지 모를 감정이 눈물과 함께 솟구친다. 하루 종일 내 손을 꼭 잡고 나만 바라보는 엄마가 애틋해서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도 자리를 뜨기가 아쉬웠던 하루가 저문다. 오늘 들은 엄마의 몇 마디 말과 희미한 미소는 머리핀을 꽂은 사진보다도 더 오래 내 마음속에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