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1
병동 생활 4일 차.
기쁨은 한 번에 찾아왔다가 다시 싹 달아나 버렸다. 어제부터 이상하다 싶었던 엄마의 수면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이 시각까지 자그마치 36시간째다.
체온,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같은 기본 바이탈은 정상치인데 혈당이 300 이상으로 증가했다며 때아닌 급성 당뇨라는 진단이 나왔다. 인슐린이 추가로 처방되고 수액도 포도당을 줄인 것으로 바꿔준다. 오후에는 갑자기 턱 경련이 15분 이상 계속되어 하루 만에 내 명이 십 년은 짧아진 것 같다. 어제부터 예방용으로 항경련제가 들어가고 있는데도 이런 일이 생겼으니 항경련제 용량을 늘려야겠단다. 자꾸만 약이 늘어난다. 폐암에 뇌전이를 앓는 것으로도 모자라 엄마의 간이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
호스피스에 대한 어떤 환상이 있었을까?
완화의료.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몸을 망가뜨리지 않고 가족과 전문 의료인의 간병을 받으며 우아하게 죽는 것이 애당초 가능하기는 한 일일까?
욕창 방지를 위한 체위 변경과 대소변 케어를 해 주는 간병인들이 상주한다는 걸 제외하고는 그냥 일반 병원에 입원한 느낌이다. 호스피스에서의 편안한 죽음, 웰다잉 따위의 호스피스 안내 책자 문구들에 속은 느낌이다. 아름다운 죽음은커녕 보호자가 관찰한 증상을 듣기만 하고는 약을 추가로 처방하고, 호흡이 좀 달라진 것 같아 확인 좀 해 달라하면 그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는 냉정함만 돌아온다. 핸드폰 검색을 통해 엄마의 상태를 짐작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가늠하지 않았다면 속이 터져 내가 먼저 죽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새로운 증상들은 조금씩 죽음을 향해 가는 신호임을 막연히 짐작한다. 하루 한 번 오는 의사보다 손에 낀 스마트폰이 낫다.
간병인들도 야속하긴 마찬가지다. 잠들어 있는 환자를 돌아눕힐 때는 조금 살살해도 좋으련만, 둘이서 시트를 번쩍 들어 올리면 아무리 깊은 잠에 들었어도 깨지 않을 도리가 없다. 세심한 배려가 아쉽다.
호스피스는 병원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인 건가. 죽음에 익숙해진 사람들과, 실습생이나 초보 간호사처럼 호기심 혹은 잘 모른다고 발뺌하며 소극적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보호자만 속을 동동 태우게 되는 곳. 호스피스는 존엄한 죽음을 맞기 전에 인간의 존엄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하게 만든다.
정신이 온전하고, 그나마 기력이 있어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는 컨디션의 환자들은 기운을 잃어가면서도 가족과 함께 웃으며 추억을 만들고, 밀도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엄마처럼 의식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어 대소변 케어를 받아야 하는 와상환자는 그저 삶의 끝자락에서 최소한의 의료적 돌봄으로 통증을 줄이는 것 외엔 특별할 것이 없는 것 같다.
너무 늦게 온 것일까? 집에서 허물어져 가는 엄마를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고 가시게 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죄책감을 벗어나려고 가족 방문도 제한되는 병원에 기어이 제 발로 걸어온 걸까? 엄마의 생은 이렇게 허무하게 사그라드는 것일까? 엄마의 잠은 도대체 얼마나 길어질까?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날뛰고, 생각은 이랬다 저랬다 변덕스럽다. 간호사들이 수시로 물어오는 사소한 문제들도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죽어가는 엄마를 보살피는 절박함 속에서도 내 잠은 왜 모질게 버티질 못하는지 나에게 실망한다. 툭하면 고이는 눈물을 막을 길은 없지만, 엄마에 대한 처치를 요구하는 자세에 있어서는 냉정해지자는 다짐으로 오늘 밤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