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 생활 #5

2022.9.3

by 달샘

호스피스 병동 생활 6일 차.

병원에 입원한 가족의 보호자가 되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일상의 자잘한 모든 일들에서 해방되어 하루가 이렇게 길었나 싶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들 챙기는 일상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무료할 것 같지만 할 일이 많다. 무엇보다도 바쁜 것은 마음이다. 돌보는 가족이 심각한 질병이나 사고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 누구라도 쫓기는 마음을 붙잡아 두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마음은 분주한데 하루는 길다. 일상을 벗어난 시간이 제 갈 길을 몰라 서성거린다. 몸이 고되더라도 크고 작은 일들에 순간순간 몰입할 수 있는 일상을 사는 것이 훨씬 낫다.


나는 지금 여명을 예측하기도 힘들다는 폐암 말기 뇌전이의 와상 환자를 돌보고 있다.

엄마가 의식이라도 있으면 대화로 시간을 보낼 텐데, 혹시나 하고 기대를 걸고 용량을 높였던 약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몇 날 며칠 잠만 자는 엄마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당혹스럽다.

수시로 들락거리는 간병인과 간호사들 때문에 몸도 마음도 불편하다. 특히 간호사들은 몰아서 한 번에 하면 좋을 일들을 잘게 쪼개는 데 재주가 있나 보다. 혈압, 체온, 산소포화도, 혈당 측정 같은 기본적인 것들도 실습생이나 후배 간호사에게 역할 분담을 해주는 건지 하루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병실을 드나드는지 모른다. 거기다 삼교대가 이루어지는 입원 병동의 특성상, 24시간 타인에게 개방된 방에서 지내는 것은 내향적인 나에게 말할 수 없는 피로감을 안겨준다. 1인실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밥을 먹거나 씻거나 화장실에 가는 하는 개인적인 일들이 타인에게 방해받는다. 엄청난 스트레스다. 식사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시간을 골라 아주 간단한 것으로 때운다. 먹고, 자고, 씻고, 화장실에 가는 원초적인 모든 일들이 타인에게 수시로 침범당하는 공간에서 보호자의 사생활은 없다. 1인실이냐 다인실이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보호자로서 겪는 불편함은 환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환자를 보살피는 일, 이것이 보호자가 해야 할 일이다. 약이 다 들어가면 간호사가 오지 않아도 링거 줄을 잠그는 일부터 해야 한다. 내리 잠만 자고 있어도 얕은 수면 상태를 파악해서 구강 케어도 해 주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얼굴이나 손발도 닦아준다. 기침을 하거나 숨소리가 거칠어지면 어떻게 증상이 변하는지 살피면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바로잡아 주고, 혈액 순환이 잘 되도록 수시로 손과 발, 온몸을 마사지해 준다. 틈틈이 기저귀나 물티슈 같은 환자 케어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거나 먹거리를 사러 가기도 한다.

사실 이런 일을 하루 종일 되풀이해도 시간은 많다. 밤에 드나드는 간호사나 간병인들을 신경 쓰며 불편한 보호자 침상에서 1시간, 2시간 단위의 쪽잠을 자는 탓에 오롯이 24시간을 느끼니, 시간이 많다고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이렇게 긴 시간이 엄마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의 귀한 시간이다. 똑같이 주어졌지만 모두에게 똑같지 않다. 상대적인 시간의 흐름을 여기 와서야 몸으로 알게 된다.


병원에 있어도 의료진이 늘 환자 옆에 붙어있을 수는 없다. 수시로 변하는 환자의 상태가 어떤 의미인지 검색하는 것도 보호자의 몫이다. 의사는 하루 한 번의 짧은 회진으로 모든 오더를 내리고, 수액이나 주사를 관리하는 병동 간호사들은 뭐랄까, 훈련된 전문인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느낌이다. 오더대로 바이탈을 측정해서 보고하고, 시간 맞춰 주사약을 쭉 밀어 넣고 가 버린다. 궁금한 게 백만 가지가 넘어도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고 불러 세우기가 민망하다. 그러니 시시콜콜한 질문들은 전화기 메모장에 적어 두었다가 회진 전에 오는 간호사에게 급히 물어서 해결하거나 인터넷 검색으로 답답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다. 안다. 그들은 해야 할 일이 많은 직장인이고, 우리 말고도 돌봐야 할 환자가 많을 것이다. 그들이 원망스러운 것은 무섭고 힘들다고 아이처럼 칭얼대는 나의 미숙함이다.


코로나로 방문객 통제가 심해 병원에 오지 못하는 다른 가족들에게 엄마의 컨디션을 전하고, 중요한 사항들을 함께 정하기 위해 연락을 주고받는다. 나는 4남매 중 셋째라서 소통해야 할 채널이 많다. 엄마는 나만의 엄마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이 생길 때마다 모두에게 묻는다. 엄마 옆에 있는 건 나 하나지만, 우리 모두가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는 방법이다.


아이들 개학을 며칠 앞두고 입원을 했다. 개학 준비로 설레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아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오랜만의 등교라 챙겨줄 것도 많은데, 미리 단속을 해놓고 왔어도 마음이 무겁다. 아이들의 일상과 스마트폰 앱으로 전해오는 학교의 알림장 내용을 일일이 남편에게 전하는 것도 일상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수고로움이다. 떠나 있어야 일상의 소중함을 안다는 건 참말이다.

아이들을 돌보는데 서툰 남편이야 가르치면 된다지만, 한 번도 이렇게 오랫동안 엄마와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끝이 언젠지 알 수 없는 병원 생활이지만, 돌아가면 더 많이 사랑해 주리라 다짐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나뿐인 엄마는 지금이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르는데, 아이들과는 내일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수없이 말한다.

아이들에게 "사랑해!"

눈감고 누워있는 엄마에게 "사랑해!!"

보너스로 남편에게도 가끔씩 "사랑해"를 문자로 전한다.

이 간단한 말을 엄마에겐 왜 그리 자주 하지 못했을까. 마지막까지 청력은 열려있다고 하니 마지막까지 자주 들려주어야겠다.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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