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 생활 #7

2022.9.5

by 달샘

병원 건물 10층 병동 입원실.

호스피스라 말하지 않으면 여느 병동과 다를 바가 없다. 병원 로비에도 호스피스라는 말 대신 완화의료 병동이라는 완곡한 안내판이 붙어 있다. 아픈 사람들이 드나드는 병원에 '호스피스'라는 말이 주는 위화감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당사자인 나조차도 죽음이 드리워진 단어로 느껴지니 말이다.


출산을 위해 두 번 입원한 것을 제외하고 나는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본 적이 없다. 아이가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 남편이 맹장 수술을 했을 때,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실 때 모두 가족을 돌보기 위해 병원에 머물렀다. 관계가 어찌 됐든 실존적으로는 어디까지나 '타인'의 아픔을 함께 겪은 것이다.


어제 누군가의 임종을 간접적으로 목격한 뒤로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게 두려워졌다. 호스피스에서의 죽음은 일상에서 누군가의 부고를 받을 때와 다르다. 피할 수 있으면 그러고 싶은 엄마의 죽음이 나에게도 곧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사무치게 알게 해 준 사건이 있었다.

병원 밖 세상에서는 빠른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는 태풍 힌남노 소식을 전한다.

태풍 대비 태세가 격상된 바깥세상처럼 익숙해진 병원 생활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엄마의 상태가 고만고만하게 유지되면서 수면시간이 길어졌던 때가 1단계 위기였다면, 지금은 2단계 경보다.


새벽에 눈을 뜬 엄마를 보며 구강 케어까지도 잘했건만, 잠시 후부터 엄마의 호흡이 달라졌다.

거친 숨소리 끝에 잦아드는 짧은 침묵, 엄마가 숨을 안 쉰다!

며칠 전 2,3초 정도의 숨 참음 같은 증상으로 간호사를 불렀다가 뭐 이런 걸로 호출을 하냐는 듯 냉정한 말을 들었던지라 유난스러운 보호자가 되지 않으려고 엄마를 계속 살피고 살폈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분명히 달랐다. 숨을 참는, 아니 멈추는 시간이 마음속 시계로 얼추 30초가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니 마음이 타들어간다.

간호사 눈치 따위나 보다니! 내가 이러려고 병원에 왔나 하는 자괴감이 들어 간호사실로 달려갔다.

공교롭게도 그때 그 간호사다!

입원 첫날부터 특유의 도도함이 거슬렸다. 상대에 대한 배려보다 내 할 말이 먼저라는 쌀쌀함이 묻어나는 말투와 표정이 이제 와서 마음에 안 드는 건 순전히 내 기분이다. 그렇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던 그 간호사. 어쩌자고 이런 순간에 교대 시간이 겹치는지, 불안함은 애꿎은 간호사에게 분풀이를 한다.


엄마를 살피며 시간을 재던 간호사가 무호흡 증상이라고 한다. 쿵, 마음이 내려앉는다. 바이탈 체크를 하는데 측정이 안 된다. 한 번, 두 번. 기계가 삐- 소리를 낸다.

갑자기 이럴 수는 없다. 설마 이게 끝일 리는 없다. 눈물이 솟아오른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간호사가 다른 간호사를 불러온다.

기계 오류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들 옆에 멍하니 서있는 내가 한없이 무능력하게 느껴진다. 수동으로 혈압을 몇 번 재던 간호사가 80/50이라고 말해준다. 어떻게 갑자기 이럴 수가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자주 혈압을 체크해 달라는 내 요청에 다시 그녀는 다시 싸늘해진다. 살펴야 할 다른 환자도 많고, 자주 재는 게 환자에게 힘들 수도 있다는 이유를 대고선 나가버린다. 그녀가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모든 원망이 오늘은 그녀를 향했다. 그렇게라도 응어리를 풀어야 내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의 혈압이 불안정하다. 잠만 자는 것 같은데 조금씩 천천히 나빠지고 있다.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담당 간호사와 의사가 말한다. 호흡의 패턴이 계속 바뀔 거라고, 그런데 호흡은 어찌해 줄 수 있는 처치나 약이 없다고, 여기서는 승압제를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니 그저 호흡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엄마 옆에서 혼자 울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말 이게 경보 단계라면, 3단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태풍처럼 정해진 매뉴얼도 없는데.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오지 않길 바라지만 결국 오고야 말 순간, 그것을 각오하고 치료가 아니라

여기, 호스피스를 선택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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