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6
역대급 강력 태풍이라는 힌남노가 훑고 간 지난 새벽은
울부짖는 비바람 소리에 잠을 설쳤다.
어제 새벽부터 시작된 엄마의 불규칙한 호흡으로 마음이 요동치는 와중에 태풍 소식을 듣는다.
여느 때라면 반지하에 세 들어 사는 가난한 이들의 일상이 안타까웠을 거다.
여기서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이없게도 이렇게 궂은 날씨에 상을 치러야 하는 누군가가 있으면 참 난감하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생겨먹었나 보다.
세상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해외 토픽에나 나올 법한 일은 이제 더 이상 내 관심을 끌지 않는다.
일상 도처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일들 중에 내 상황과 관련이 있어야만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강한 태풍이 지나간 흔적이 종일 뉴스에 보도되지만,
실상 우리 주변은 태풍이 몰아치는 순간에 그런 재해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또 누군가는 태풍의 정점에서 새로운 생명을 맞이한다.
또 다른 이들은 지금 내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다양한 일들을 겪으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뉴스에 보도되는 특별한 이슈에 묻힌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변수가 많다.
큰소리로 떠드는 소식만 듣다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자꾸 좁아져만 간다.
드러나지 않은 많은 삶들이 저마다 자신의 몫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나저나 세상살이의 시각을 논하기에는 지금 내 처지가 그리 한가롭지 않다.
산소 줄을 코에 꽂고 잠든 엄마의 얼굴을 지켜보는 일이 무한 반복된다.
엄마는 몸을 돌려 눕히는 간병인들의 거친 손길에 놀라 가끔 눈을 뜨긴 하지만
초점 잃은 눈동자는 얼굴을 가까이 마주대어도 힘없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누르께해진 흰자위 한편이 부풀어 올랐다.
노래진 흰자위와 거친 숨소리가, 간이 안 좋았던 아빠의 마지막과 닮아서 두려웠다.
초점 없는 눈동자를 잠시 마주 보다가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을 실감한다.
도대체 딸 얼굴을 5cm도 안 되는 거리에서도 못 알아보는 이 의식 상태는 뭐지?
들썩 몸을 돌리는 순간이 지나면 금세 눈을 감아버리니 왜 나를 못 알아보냐는 원망 섞인 눈물을 보일 새도 없다.
지난봄, 인지심리학을 공부하던 때 배운 뇌구조에 대한 지식들이 어설프게 얽힌다.
처음에는 말문을 닫고, 점차 음식을 거부하더니, 이제는 잠만 잔다.
전두엽의 기능 어쩌고 하는 지식은 이미 부질없어졌다.
뇌전이가 생긴 걸 알고 감마나이프도 했건만 소용이 없었다.
부어오른 뇌의 압력을 낮추려고 약도 이제 효과가 없다.
입원 초 깨어있던 긴 시간은 약물의 일시적인 효과라고 의사는 판단했다.
엄마의 뇌는 아마도 생존과 직결되는 부위만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심장 박동, 호흡, 위험에 대한 반사 행동.
오랜 시간 인류의 생존 본능이었던 기능은 아직 작동하고 있다.
살아 있다는 증거다.
최고 혈압이 100을 넘나 든다.
혈압은 여전히 불안정해 지켜보는 이를 긴장시키지만, 아직은 괜찮다.
말은 못 해도, 먹지 못해도, 거칠기는 해도, 숨을 쉰다.
가장 원초적인 생존의 시그널이 엄마와 나를 버티게 한다.
이렇게 의식 없이 누워만 있는 상태가 엄마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수액으로라도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 생명의 힘이다.
살고 싶은 엄마의 강한 의지 혹은 무의식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는 작은아이가 안쓰러워도 어쩔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엄마의 마지막을 보살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