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 생활 #10

2022.9.8

by 달샘

병동 생활 열흘 째.

입원 후 처음 약 효과를 봤을 때,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만큼 긴 시간 깨어있던 엄마가 그립다. 그 뒤로는 오로지 엄마가 잠든 모습만 지켜보고 있다. 그러는 사이 마음속으로 가지 않은 길의 시나리오를 얼마나 써댔는지 모른다. 이럴 거면 집에서 다른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게 더 낫지 않았나 싶은 생각, 몸이 더 힘들어질까 봐 항암도 안 하고 지냈는데 갑작스럽게 많은 약을 투여하는 것이 괜찮을지에 대한 걱정, 엄마는 잠만 자는데 나 편하자고 호사스럽게 비싼 1인실을 쓰는 것 같은 괜한 돈걱정까지, 불안한 마음이 불러오는 온갖 생각들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외동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수시로 형제들과 전화나 단톡으로 상황을 공유하면서 의논할 수 있으니 혼자는 아니다. 각자 가정을 이루고 살지만 원가족이 주는 정서적 친밀함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우리 엄마의 최고 재산은 아마도 2남 2녀를 낳아 기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생의 큰 일 앞에서 형제들의 존재가 고맙다.

사촌 언니가 위로 전화를 해 왔을 때도 그런 말을 했다. 나 대신 우리 아이들을 돌봐 줄 언니가 있어서 내가 이렇게 엄마 곁에 머무르며 엄마를 보살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한다. 사촌 언니는 큰엄마가 기도 삽관을 하고 누워 계실 때 혼자서 얼마나 동동거렸는지 모른다며 오래전 자신의 모습에 빗대어 지금 나의 처지에 위로와 공감을 보낸다. 그래, 맞다.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도 나는 엄마가 남긴 것들의 혜택을 입고 있다.


아이가 태어날 때 배냇저고리부터 손수건, 기저귀, 딸랑이, 물티슈, 젖병, 아기 전용 목욕용품 등 준비할 것이 많다. 사람이 생을 마감할 때도 삶의 흔적들을 정리하는 데 품이 많이 든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환자를 돌보는 것 외에도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입원 첫날 사회복지사가 내미는 종이에 임종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적혀 있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필요한 각종 서류와 영정사진, 장례식장, 장례 방법 같은 걸 미리 준비하고 알아봐야 한단다. 이것을 혼자서 해야 했다면 그 큰 부담과 스트레스를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여기에서 엄마를 지키고 있고, 밖에서 오빠는 엄마를 편히 모실 수목장 공원을 여기저기 알아보고, 납골당에 모신 아빠의 유골을 반출하는 방법도 확인해 두었다. 언니는 각종 서류를 준비하고 영정 사진이나 엄마 옷가지들을 챙기면서 우리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동생은 아쉽게도 먼 곳에 살고 있는 데다, 한 달여 뒤에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게 된 처지라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으면서도 보호자의 건강이 우선이라며 먹거리 쿠폰을 보내며 나를 지지해 주고 있다.

우리 네 남매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의논하고 서로의 마음을 위로한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똘똘 뭉쳐본 적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든든하다. 다 엄마 덕이다.


잠든 엄마 귀에 대고 사랑한다고, 우리 형제 이만큼 잘 키워줘서 고맙다고, 평생 참 애쓰며 살았다고, 이제는 아무 걱정 없이 엄마의 숨과 엄마의 몸만 생각하라고 나직이 말해 본다. 작은 병실에서 혼자 눈물짓는 하루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끝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생과 사는 이에 있음에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 말도 못 하고 가는' 상황이 올지라도, 너무 크게 소리 내어 우는 대신 끝까지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도록 이곳 호스피스에서 나도 엄마도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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