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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샘 Oct 22. 2023

호스피스, 그 후

2022.10.4

엄마를 보내드린지 거의 3주가 지났다. 일상을 이어가면서 기억은 조금씩 흐려지는데도 그 기록을 자꾸만 미루는 것은, 엄마의 부재를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잔잔히 깔린 흰구름을 배경으로 뜬 보름달을 보면서 엄마 가시는 길을 환히 비추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운구차를 기다리는 잠깐 동안의 낭만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용하고 서늘한 밤공기는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히 고즈넉했지만, 새벽 한 시에 낯선 곳에서 밤의 정취를 느낀다는 것은 매우 낯설고 어색한 일이다. 더구나 그것이 엄마의 하얀 얼굴과 보랏빛 입술을 보고 난 직후이니 꿈인지 현실인지 엄마가 정말 돌아가신 게 맞는지 아무것도 실감 나지 않았다.


검은 밴이 병원 영안실로 향하는 것을 보니 갑자기 설움이 밀려왔다. 한참 뒤 운구차가 떠나는 모습을 확인한 후 우리도 짐을 꾸려 병원을 떠난다. 추리닝에 슬리퍼를 신은 병실에서의 차림 그대로 장례식장으로 갔다.

엄마는 잘 도착했을까? 이제부터는 엄마를 잃은 슬픔을 잠시 접어야 한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현실적인 문제들을 처리해야 하니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오빠, 동생, 남편과 함께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화장 일정이었다. 발인하는 날은 정해져 있으니 아침 일찍 화장장 예약을 해야 상주도, 장례식장도 일을 빨리 마무리할 수 있단다. 문상객도 없는 한낮, 지친 상주와 가족들이 화장 시간을 기다리며 맥없이 늘어져있는 것보다 서두르는 게 낫겠다 싶다. 세상 모든 상주는 장례에 초보자다. 행정적인 절차는 경험 많은 장례지도사의 안내에 따르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황망한 가운데 결정해야 할 문제가 많은 까닭이다. 우리는 아빠의 유골을 납골당에서 반출해 엄마와 합장을 하기로 했기에 명절 끝 민원센터에서 인감증명서를 발급받는 시간을 고려해 7시 30분에 화장장을 예약했다.


다음은 상례를 결정해야 한다. 사무실 한편에 따로 마련된 상담실은 큰 모니터와 테이블 외에도 여러 종류의 관, 상복과 영정사진을 담을 액자 같은, 선택이 필요한 물품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13년 전 아빠의 장례 때 지나치다 싶을만큼 결정할 게 많았던 것에 비하면 장례문화가 많이 세련됐다. 실속형부터 프리미엄까지 다양한 콘셉트로 패키지가 구성되어 있고, 그중 일부는 요금을 추가하면 상주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도 갖추고 있었다. 슬픔으로 무너진 마음이 고민할 거리를 줄여주는 상품들이 있어 다행이다. 


상조회에 따로 가입하지 않은 우리는 장례식장의 패키지에서 적절한 수준으로 선택한다. 아들 둘과 사위, 딸 중 엄마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건 딸일 거라는 이유로 가족들은 나에게 대부분의 선택을 하게 해 주었다. 내가 아는 엄마의 마음은 아빠를 보내드릴 때 본 엄마 모습이 전부다. 그때 엄마는 돈이 좀더 들더라도 형편닿는 만큼은 좋은 것을 갖추어 아빠를 보내고 싶어했다. 엄마가 어떤 모습으로 가고 싶을지는 나도 모른다. 죽음에 대해 우리는 그리 너그럽지 않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굳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엄마랑 제일 잘 통하던 게 나였으니, 내 생각이 엄마와 어긋나더라도 엄마는 이해해줄 것 같다.


내가 바라는 내 장례식을 생각하니 쉽다. 모든 결정의 기준은 '간소함'이다. 소박하고 절제된 삶의 마무리.

평소 내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런 기준을 세운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엄마가 이렇게 아프기 전 읽었던 <간소한 삶, 아름다운 나이듦>(소노 이야코)이라는 책의 영향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간소함의 기준에 따라 허식이라고 생각되는 옵션은 과감히 버렸다. 단 한 가지, 엄마가 생전에 좋아했던 꽃은 좀 더 비용을 들여서라도 허전하지 않을 만한 구성을 택했다. 길을 걷다 아파트 단지 울타리에 핀 장미꽃이 그렇게 예쁘다며 한 송이씩 꺾을 때 잔소리하지 말걸, 꽃시장에 한 번밖에 못 갔는데 좀 더 자주 갈 걸, 그런 아쉬운 마음에 엄마 가시는 길 꽃은 풍성하기를 바랐다.


자잘한 것들을 모두 결정하고 문상객을 대접할 호실을 정하러 건물을 둘러본다. 장례식장 크기와 가족들을 위한 방과 화장실이 있는지를 따져 고르고 나니 새벽 4시. 퇴실과 방역을 해야 하니 오후 1시에 입실이 가능하단다. 집에 돌아가서 잠깐 눈도 붙이고, 아이들도 챙기고 며칠 장례 치를 준비를 해서 오면 된다.


집에 도착한 것은 새벽 5시, 지난 2주 간 간호사와 간병인의 출입으로 잠이 깨어 아침을 시작하던 시각이니 씻고 누워도 잠이 올 리가 없다. 집 침대에 몸을 누이니 몸은 편한데 잠은 오지 않고, 같이 갔던 엄마는 모시고 오지도 못하고 혼자 집에 돌아왔다는 것이 죄스럽고 한스러워 눈물이 났다. 죽는 곳인 줄 알면서 그곳엘 왜 갔나 싶은 애먼 억울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병원게 가는 게 옳았는지 아닌지 부질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감고 돌아 끝내 잠들지 못했다. 


몸은 편한데 마음은 불편한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병원에서 입던 옷들을 빨아 놓고 장례식에 챙겨갈 물건들을 챙긴다. 추석이라고 아이들을 시가에 데리고 갔다가 남편 혼자 내려왔으니 아이들이 없는 집은 허전했다.

포근한 잠자리가 그리웠는데, 빨래나 식사 준비 같은 일상이 하찮지 않다는 걸 깨달았는데 오래 비웠던 집이 낯설다. 엄마가 없는 일상은 처음인 탓이다.


장례식을 치르러 다시 집을 나선다. 이제는 끝이 정해진 떠남이다.  이틀 뒤 발인을 하고 나면 다시 집에 돌아오겠지. 똑같이 집을 나서는데 기약 없이 떠난 막막함보다 이 짧고 분명한 일정이 더 서글프다.

나는 엄마를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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