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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샘 Oct 22. 2023

호스피스 병동 생활 #11

2022.9.9

엄마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면서부터는 자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편하게 노트북을 꺼내들 수가 없었다. 볼펜만 놓으면 금방 엄마를 살필 수 있도록 엄마 머리맡에서 수첩에 온갖 심란한 마음들을 쏟아냈다. 수첩에 순간순간 적어둔 기록들을 뒤늦게 일부 옮겨 본다.


2022.9.9. 금


하루가 길다. 

아직 오전 8시 30분밖에 안 됐는데 벌써 한나절은 보낸 것 같은 기분이다. 지난밤, 자정 무렵부터 엄마 호흡이 불안정해져서 비몽사몽 간에 밤을 보냈다. 간이침대에 잠깐 누워서 새우잠이 들었다가 간병인 기척에 잠이 깨고, 다시 누울라치면 엄마의 숨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토막잠이더라도 누워서 편히 자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몸이 한없이 늘어진다.  

일상의 소소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그것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먹는 것보다도 자는 것이 더 힘든 병원 생활을 두고 넋두리를 하거나 생색을 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어젯밤 옆으로 웅크린 자세로 새우잠을 자다가 배가 뒤틀리듯 아프고 보니 보상심리가 생기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병원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의 조언이 옳다. 내 몸이 망가지지 않도록 보살피면서 간병을 해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불안한 마음에 파묻혀 나를 돌보는 일에 소홀했던 지난주와는 달리, 틈틈이 스트레칭도 하고 일부러 병실 안을 걸어 다니기도 한다. 하루 2 천보가 될까 말까 한 움직임이 건강에 좋을 리가 없다. 일부러 수건 빨래를 해서 창가 블라인드 줄로 고리를 만들어 널어두기도 하고, 엄마 손발톱 정리, 발마사지 같은 것도 더 자주 하려고 애쓰고 있다.


엄마 연배로 보이는 수녀님 한 분이 그제부터 날마다 와서 기도를 해주고 가신다. 처음 병실을 찾은 날, 종교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도 좋은 마음으로 기도를 해주겠거니 하고 방문을 허용했다. 이제 곧 다른 세상에 간다느니 주님의 뜻이라느니 하는 기도를 듣고 있자니 속이 상한다. 죽을 사람 눕혀놓고 잘 죽으라고 기도하는 것 같아 그간 쌓인 마음의 응어리가 수녀님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원망하는 마음조차 이제는 힘에 겨워 오늘은 마음을 내려놓고 수녀님 행동을 지켜보았다. 저 연세에 신학 공부를 하고, 수련을 거쳐 수녀님이 되었다면 참 복 받은 사람이겠다 싶은 부러움이 든다. 평생 기도해 왔을 점잖고 나긋한 목소리, 조용한 움직임 모두 영적으로 단련된 자의 정서적 편안함과 고요함일까. 세상 근심 걱정 하나 없어 보이는 노수녀님도 죽음 앞에서 지금처럼 온화할 수 있을까. 종교가 없어도 나이가 들면 나도 저렇게 고요히, 점잖게 늙어갈 수 있을까. 두서없는 생각들이 오간다. 우리 엄마는 아파서 누워있는데 비슷한 나이에 저렇게 정정하게 기도를 하고 다니는 수녀님에게 엄마를 대신해 질투심마저 생긴다.


어제는 아침에 기도하고 간 수녀님이 오후에 다시 노크를 해서 놀랐다. 병동에 저녁 미사를 보러 왔다가 들렀다며 에코백에서 요플레 하나를 꺼내 나 먹으라고 주고 가셨다. 그제 오전, 기도하러 왔다가 조용한 틈을 타 컵밥을 먹고 있는 나를 보았기 때문일까, 다른 방 누군가에게도 전해주면서 나도 함께 챙긴 걸까. 소박한 먹거리 하나지만 나를 응원하는 타인의 마음이 느껴져서 고마웠다.

체구가 작고 마른 수녀님이 더 잘 먹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왠지 그런 걸 거리낌 없이 받기에는 좀 어색하고 겸연쩍어서 수녀님 드시라고 사양했지만, 또 있다며 가방을 열어 보이는 수녀님의 마음을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온화하면서도 거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은 수녀님 능력일까, 아니면 천주교 재단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연스레 생겨나는 입장 차이에서 온 것일까.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자가 긴장과 불안에 지쳐 누군가로부터 연민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에게 베푸는 시혜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해졌다. 모든 것이 부정과 절망으로 해석될 만큼 바닥으로 떨어진 못난 내가 병실 창에 비친다.


이곳 병동에는 규모에 비해 좀 많다 싶은 간호학과 실습생들이 있다. 옷차림이 다른 걸로 봐서 학교마다 유니폼이 정해진 것 같다. 관심 두지 않아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세 곳 이상의 학교에서 실습을 나온 듯하다. 명찰에서 얼핏 보았던 학교 이름과 앳된 얼굴들. 주사 놓는 간호사를 따라다니며 참관을 하기도 하고 혈압, 산소포화도, 체온, 혈당 체크 같이 기본적인 바이탈을 측정하는 일을 지시받기도 하는 모양이다. 실습생 중에는 남자 간호사도 두 명이나 있다. 이들이 눈에 띈 걸 보니 나도 직업에 성별의 편견이 있나 보다.

처음 입원하고 분위기 파악 중일 때 실습생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지켜보는 게 신경 쓰여 어느 날에는 혼자 혈압체크를 하러 온 학생에게 실습생이냐고 물었다. 호스피스 병동의 묵직함이 젊은이들에게 즐거울 리는 없다. 그 분위기에 물들어 침묵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지 사소한 내 질문에 묻지도 않은 자기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남학생은 실습만 3년째란다. 3년째 실습 중이라니 이제 풍월을 읊었겠다 싶은데, 이쪽 바닥도 짬밥 서열이 있는지 군대까지 다녀와도 실습생 신분이니 자기보다 어린 정식 간호사들 앞에서 조심스러워하는 게

내 눈에도 보인다. 내 코가 석잔데 취업 전선에서 애쓰는 청년들이 안쓰럽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 주고는 괜한 오지랖을 부린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다음날 1시쯤, 누가 문을 두드리길래 간호사나 간병인인 줄 알았더니 그 학생이 고개를 들이민다. 이제 출근하는 길이라며, 어머니 괜찮으시냐고 안부를 물어왔다. 어제 내 응원에 대한 보답인가?

괜찮지 않으니 괜찮다 말할 수도 없고, 안 괜찮다 말하기엔  인사를 건넨 청년이 무안해질 듯하다. "그냥 계속 주무시기만 하네요."하고 어정쩡한 답을 한다. 거기까지만 해도 누군가 가족 아닌 사람이 엄마의 안부를 물어주는 게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청년이 바로 나가지 않고 "선생님은 괜찮으세요?"하고 내 안부까지 묻는 게 아닌가. 어린 나이에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까지 챙기는 그 마음이 고맙고 기특했다. 뉘 집 자식인지 참 잘 키웠다 싶은 엄마 마음이 끼어든다. 나도 우리 아이들이 커서 누군가에게 이런 배려를 할 수 있게 잘 키울 수 있을까. 나의 안부까지 묻는 저 간호 실습생의 직업적 돌봄이 지친 나를 위로한다.

그러고 한 이틀 지나 또 한 번 혼자 혈압을 재러 온 날은 "어머니, 안녕하세요! 혈압 좀 잴게요." 하며 잠든 엄마에게 큰 소리로 말을 건넨다. 그 순간 엄마가 눈을 번쩍 뜬다. 세상에, 그렇게 딸이 불러대도 꿈쩍도 안 하고 잠만 자더니 청년의 힘 있는 목소리가 엄마에게도 반가웠나 보다. 

"우와~ 울 엄마 젊은 총각이 부르니까 눈을 뜨네." 

오랜만에 웃을 일이 생겼다. 엄마는 금세 눈을 감았지만 청년은 병실을 나가면서도 "어머니, 푹 쉬세요!" 하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엄마가 들었겠지? 낯 모르는 이의 인사 하나가 삭막한 병원 생활에 작은 활기를 불어넣었다.


수녀님이나 청년 간호실습생에게 엄마와 나의 존재는 일터에서 잠시 스쳐가는 사람일 뿐이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는, 일시적이고 공적인 만남이다. 그런데 짧은 순간의 몇 마디 말에서 그들의 성품을 엿볼 수 있었다. 엄마의 사투를 지켜보는 지친 내 마음에 잠깐이나마 '사람'의 존재를 느끼게 해 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생(生)과 사(死)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 같지만, 그 사이 어디에 서있든 우리는 타인에게 작은 연민을 베풀 수 있다. 




오늘은 추석 연휴 첫날이다. 오전에 잠깐 남편이 아이들을 데려왔다. 20분 정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영상이 아니라 직접 안아줄 수 있으니 좋다. 지난번 사회복지사에게 받은 머리핀을 들고 병원 입구로 내려가 작은아이에게 주었다. 작은아이는 일주일이나 지난 내 생일카드를 만들어서 작은 주머니에 꼬깃 넣어온 걸 선물이라며 건네주었다. 엄마를 만나도 데면데면한 큰딸은 이제  품을 벗어난 10대다. 만나고 헤어질 때 안아주는 것 말고는 말없이 주변을 맴돈다. 내 돌봄이 없어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컸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날마다 우는 작은아이에게는 아직도 내가 필요하다. 전화기로 들려오던 아이의 울음소리에 나도 덩달아 울다가 잠깐이라도 아이들을 만나니 마음이 좀 놓인다. 시댁으로 보내야 며칠 만이라도 내가 마음이 덜 쓰일 것 같아서 이번엔 가지 않겠다는 남편의 등을 떠밀어 연휴 직전에야 비행기를 끊었다. 서울에 가기 전 엄마를 보러 온 아이들이 할머니 안부를 묻는다. 괜찮다는 말이 거짓인 줄 모르는 아이들은 엄마를 봤으니 또 며칠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만나러 병원 건물 밖으로 나가니 계절이 바뀌었다. 병실 창밖으로 보는 세상보다 훨씬 환하고 바람도 잘 느껴진다. 이런 게 살아있다는 느낌이구나 싶다. 휠체어라도 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엄마가 휠체어에 의지해 집 주위를 산책한 게 벌써 한 달쯤 전이다. 

엄마는 갇혀 지내는 것의 답답함을 알았던 걸까? 평소 버릇처럼 죽으면 아빠처럼 납골당에 가기는 싫다고, 확 트인 데서 훨훨 날아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주 들었던 말은 유언이 될 것 같다. 멀지 않은 곳에 아빠와 엄마를 함께 모시기로 준비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죽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불효하는 것 같지만 끝이 정해져 있는 거라면, 아프면서 고통스럽게 연명하기보다는 엄마가 정말 힘들기 전까지만 살다가 편안하게 죽었으면 좋겠다. 평소 엄마의 바람대로, 자는 잠에 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나의 유일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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