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 생활 #9

2022.9.7

by 달샘

또다시 잠을 설쳤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혼자 동동거릴 때가 많다. 날씨가 조금만 변해도 아이는 콧물이 나고 기침을 한다. 밤에 열이 많이 나면 해열제에 물수건을 갈아대느라 엄마는 잠을 설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할 때가 많아 코 골며 잠든 아빠는 절대 알지 못하는 엄마만의 애환이 쌓인다.

환자도 그런 걸까. 한밤중 혼자 엄마 곁을 지킬 때 숨소리가 거칠어지거나 짧은 무호흡 상태가 한동안 계속되다가, 날이 밝아오고 담당 간호사나 의사가 올 시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편안한 호흡으로 자는 엄마가 꼭 아픈 아이 같다.

증상을 직접 봐야 간호사든 의사든 상태를 짐작할 텐데, 보호자의 설명만 듣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을까? 하긴 잠깐 회진 돌 때의 증상보다 지속적으로 관찰한 보호자의 진술이 더 믿을만할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지속적으로 나쁜 컨디션을 보이는 게 아니니 이런 투정이라도 할 수 있는 거다.


선잠으로 긴 밤을 보내도 열이 내린 아이를 보면 마음이 편해지듯, 내리 잠만 자는 엄마의 숨소리가 안정을 되찾으면 피곤해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세상 가장 힘센 것이 눈꺼풀이라더니 아무리 애가 타도 잠을 이기기는 힘들다. 죽으러 병원에 간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얘기 같지만, 엄마는 더 존엄하게 죽기 위해 병원에 왔다.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는 엄마를 옆에 두고도 잠이 쏟아지다니, 나쁜 딸이 된 기분이다.

사회복지사, 간병인, 간호사들 중 간혹 내 안부를 챙기는 친절한 이들이 있다. 엄마도 중요하지만 나가서 바람도 좀 쐬고 오라는 조언을 한다. 보호자가 잘 먹고, 잘 자야 힘을 내서 간병을 잘한다는 그들의 말은 사실이기도 하고 사실적이지 않기도 하다. 내가 아프면 당장 간병을 하기 힘들기에 맞는 말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제때 먹고 제때 자는 속 편한 이가 있을 리 없다.


호스피스 병동 생활 10일 차.

오늘의 빅 이벤트는 환자 목욕이다. 입원 상담 때 환자 목욕 시간이 있으니 대야나 샴푸도 챙겨 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살뜰하게 준비물 목록을 다 챙겨 왔건만, 지난주 내내 엄마를 보면서 이런 상태로 목욕이 가당키나 하겠나 싶어, 지난 주말 병원 입구에서 엄마 얼굴이나 보여주려고 아이들을 데려온 남편에게 불필요한 물건과 함께 대야를 들려 보냈다.

놀랍게도 잠든 상태로도 목욕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차 싶었다.

나는 어쩌면 희망보다 절망을 안고 엄마를 돌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프니까, 잠에서 깨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누워만 있어도, 잠자고만 있어도 엄연히 존중받아야 마땅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엄마를 두고, 나는 왜 목욕을 못할 거라 생각했을까. 엄마가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 이런 내 절망을 눈치채서인 것만 같아 엄마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공용으로 쓰는 대야를 빌려 빨아 쓰지 않고 남겨둔 새 수건 두 장과 비누, 샴푸, 바디로션을 챙겨주고 목욕실로 따라갔다. 일주일이 넘도록 병원에 있었건만 병실과 정수기가 있는 로비만 오가느라 같은 층에 목욕시설이 있다는 게 낯설다.

환자 전문 세신사가 따로 있는 모양이다. 몇 차례 목욕을 시켜주고 땀범벅이 된 세신사들은 간병인처럼 2인 1조다. 간병인들이 병실에서 밀고 온 침대에서 목욕 침대로 환자를 옮겨 주고 나오면, 그분들이 탈의부터 새 환복 입히기까지 다 해준다. 20여 분 걸리는 목욕 시간, 그 사이에 간병인들은 침구를 새것으로 다 갈아 끼워 깨끗한 침대를 만들고, 목욕이 끝나면 목욕실에 병실 침대를 들여가 환자를 옮겨 다시 병실로 돌아온다. 서로 별말도 하지 않아도 손발이 척척 맞는 걸 보니 여기만의 역할 분담이 확실한가 보다.


물론 이 과정에는 여러 단계의 준비가 필요하다.

환자는 수액이 흘러 들어가는 줄도 여럿이 달려있고, 산소마스크도 하고 있다. 목욕을 하는 동안 세균 감염의 우려가 있으니 목욕 전의 준비과정도 예사롭지 않다.

우선 팔에 꽂은 수액 바늘 자리에 물이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위생 비닐 아랫부분을 뜯어 원통 모양을 만든 후 주삿바늘이 꽂힌 팔에 끼워 테이핑 한다. 이동식 산소통에 산소 줄을 옮겨 끼우고, 수액 병들도 침대에 꽂힌 거치대로 옮긴다. 전동침대와 욕창 방지를 위해 깔아 둔 에어 매트리스의 전선도 정리가 필요하다. 코에 연결된 산소 발생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면 목욕통을 챙겨 들고 목욕실로 이동한다. 거기에서 이 과정을 거꾸로 반복해야 비로소 목욕을 할 수 있게 된다.

목욕이 끝나면 이 모든 과정은 다시 반대의 순서로 되풀이된다. 두 발로 걸어 들어가 내 손으로 씻고 나오는 일상의 행동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처음 알았다.

환자를 보살피는 일에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목욕 중 혹은 산소 통을 옮기는 중에 콧줄로 물이 흘러들 수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병실로 돌아와 산소발생기를 벽에 옮겨 끼우다가 많이 흔들린 모양이다. 미처 살피지 못한 물기가 있었는지 엄마가 기침을 한다. 콧줄로 물이 들어가면 위험하다. 기도로 물이나 음식이 들어가면 흡인성 폐렴에 걸릴 수 있는데, 말기 암환자에게 폐렴은 치명적일 수 있으므로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콧줄을 새로 바꾸어 끼우고 엄마는 다시 깊고 긴 잠에 빠져들었다. 한여름을 나며 집에서도 언니와 둘이서 거동이 힘든 엄마를 매일 씻겼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이후로 목욕은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고작 물수건으로 몸을 닦다가 오랜만에 목욕을 했으니 꿈에서도 엄마는 개운함을 느꼈을 것 같다.

여기 와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귀는 마지막까지 열려있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깊이 자는 동안에도 형제들과 주고받는 말이 조심스럽다. 담당 의사도 심각한 경우에 대해 설명할 때는 목소리를 낮춘다.

간병인들이 몸을 흔들 때 잠깐 뜬 엄마 눈이 초점을 잃어간다.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도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 같다. 소리 죽여 이런 엄마 모습을 가족들에게 설명하는 일이 오늘따라 힘들다.

저 너머 어딘가를 향한 텅 빈 눈동자, 그 눈이 보는 것은 이 세상일까 저 세상일까?

엄마의 몸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가쁜 숨을 대신 쉬어줄 수도 없으니 그저 내가 하는 일이라곤, 옆에서 지켜보는 것뿐이다. 같이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은 외로움에 몸이 떨린다.


이렇게 버거운 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엄마의 생에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간성 혼수 속에서도 내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가 나를 만나고는 하루 만에 돌아가신 아빠처럼, 엄마도 당신이 갈 때를 스스로 가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죽어가면서까지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이 어떤지, 자식을 키우고 있어도 아직 모르겠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부디 최소한의 고통으로, 가장 편안한 상태로 엄마가 생을 정리하는 것이다. 평소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처럼 자는 잠에 가는 것, 그게 나의 소원이자 엄마의 마지막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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