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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샘 Oct 22. 2023

일상의 힘

2022.10.18

엄마가 떠난 뒤 한 달도 더 되는 시간이 흘렀다. 기도는 안 하지만 그 형식을 흉내 내어 49재라는 것을 간단히 챙기고 있다. <신과 함께>라는 영화를 본 뒤로 종교가 없어도 망자를 위한 추도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으니 믿을 수 없지만, 볼 수 없어서 놓치는 게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는 불교 신도는 아니었으나 절에 가면 꼭 불전함에 돈을 넣고 절을 하면서 우리 가족의 안위를 빌었고, 초파일이나 칠중, 동지 때가 되면 아빠의 고향집 옆 작은 암자에 등을 달거나 시주를 하기도 했다. 그러니 엄마의 49재는 절에 모시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시골의 작은 암자에 매주 오가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절에 무작정 돈만 쥐어주고 엄마의 혼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기도 싫었다.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고 자식 된 도리를 다 하고자 우리끼리 허술하더라도 49재 흉내를 내기로 다.


옛 선비들은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3년 상을 지냈다고 하는데, 책에서나 읽던 그 일이 실상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겪어보니 알 것 같다. 한 시간 거리의 공원묘원에 일주일에 한 번 다녀오는 일이 녹록지 않다. 일곱 번 다녀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말이 3년이지, 그 긴 시간 동안 죽은 부모를 애달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대가 변하고 의식이 변해 케케묵은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효를 실천하는 것은 부모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어렵다.


장례 후에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상도 바쁘다. 한 달 남짓한 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걸 보니 수월한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매주 산소를 찾는다. 갈 때마다 푸른 하늘과 살랑이는 바람이 엄마를 기분 좋게 어루만지는 것 같아 마음이 푸근해진다. 조금 더 있으면 이 따뜻함이 매서운 바람으로 바뀔 텐데 엄마가 춥지는 않을까, 소용없는 걱정이 는다.


반송 아래 같이 묻혀 있어도 오래전에 떠난 아빠보다 엄마가 더 애달픈 것은 시간이 가진 힘이다.

조상들이 3년상을 지내면서 부모만을 그리워하진 않았을 거다. 그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슬픔도 어루만지고 다독거렸을 것이다. 3년상은 부모 잃은 서글픔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자기를 돌보아 건강해진 마음으로 일상을 찾아가는 지혜였을지도 모른다.


찬바람이 불어오니 올해 김장이 걱정된다. 엄마의 손맛이 남은 작년 김장김치가 이제 바닥을 보이는 것이 아쉽고, 엄마 김치 맛을 제대로 흉내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시간은 흘러 흘러 엄마 가신 날의 슬픔은 조금씩 무디어 가지만, 일상 곳곳에 남아있는 엄마의 흔적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흔적이 사라지는 만큼 엄마를 잊게 될까 봐 굳이 지우려 하지도 않는다. 이제껏 엄마 덕인지도 모르고 누렸던 많은 것들이 모두 엄마의 보살핌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부모의 그늘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된다. 그 아래서는 절대 모를 그 넓이와 깊이가 없어지고 나니 비로소 엄마의 돌봄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그런 존재가 되어주는 것으로 인생은 대물림된다. 엄마에게 갚을 수 없는 고마움을 아이들에게 되돌려주어야 빚진 것 없는 생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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