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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샘 Oct 22. 2023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한 이유

죽고 나면 다 소용없다.



누군가의 죽음을 돕는다는 것은 책임과 명예를 동반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변화를 겪는다. 아무리 원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죽음을 통해 현실과 자신의 본질에 대한 교훈을 얻는다. (...)

사랑하는 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도울 때, 우리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떠나고자 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운 좋게도 그들이 맑은 정신으로 결정을 내려줄 때도 있다. 하지만 결정권이 우리 손에 넘어온다면, 그들의 마지막 소원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긁어모아야 한다.


의료 행위와 관련된 권한의 위임, 사망 전 의사결정, 장례식의 형태, 유언장 작성 등도 빠짐없이 챙겨야 할 절차지만, 임종 관리에 관한 가족의 합의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은 단 한 번의 대화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가능하면 여러 번에 걸쳐 대화를 나누는 편이 좋다. 마지막 순간 직전까지 이런 대화를 미루다가 상황이 갑자기 급박하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꼭 필요한 논의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다.


호스피스의 존재는 이럴 때 큰 도움이 된다.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그들은 죽어가는 이의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 고통을 다루는 데 능숙하다. 호스피스는 환자가 죽음과 죽음이 가져다줄 경험을 받아들이도록 격려한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은 대개 임종 순간에 찾아올 고통과 죽음의 과정, 그리고 무력하게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게다가 그들은 대개 호흡이나 식사, 소화, 거동에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호스피스는 인간이 존엄성을 지키며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메리 파이퍼 지음, 서유라 옮김, 티라미수, 2019, pp.109-111 중에서



책을 읽다가 엄마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랐다. 엄마와 단둘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오갔다. 이상적인 죽음이라는 게 있는 건지, 호스피스가 지향하는 존엄한 죽음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끊임없는 고민의 시간이었다.


논리와 이성으로는 저자의 이야기처럼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해 보인다. 현실적으로는 죽어가는 이에게 스스로의 마지막이 어떠하고 싶냐고 묻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그것이 내 가족일 경우에 더욱 입에 올리기 힘든 대화다. 건강할 때 미리 이야기해 두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죽음을 터부시 하는 문화가 우리에게 이런 주제의 대화를 꺼리게 만든다.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다.


죽음이 임박한 때 거칠어지는 호흡과 불분명한 의식 상태는 인간의 존엄을 논하기에 너무나 절박한 순간이다. 언제 멈출지 모를 숨을 지켜보며 마음을 졸이는 그 시간에는 쉽게 존재의 허무함에 빠져든다.


죽어가는 순간까지 기다릴 수 없다. 생과 사에 대해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지금이어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나는 존재한다. 지금, 여기에서의 순간들이 내 삶을 이룬다. 현재에 충실한 삶은 가벼운 쾌락주의가 아니라 생에 대한 치열한 노력이다. 나이듦과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길은 지금, 여기에 있는 내 삶을 사랑하는 일이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사랑, 그것의 다른 이름이 돌봄이 아닐까 싶다.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엄마를 보살폈다. 그 일을 이제 나에게도 베푸려 한다. 엄마의 죽음이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죽음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깨어 있게 만든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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