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 생활 #6

2022.9.4

by 달샘

병동 생활 7일 차.

여기가 호스피스 병원이라는 생각은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다. 엄마에게 얼른 나아서 집에 돌아가자고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엄마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


내 코로나 검사에서 한 달도 더 전에 앓았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고 해서 우여곡절 끝에 1인실에 머물고 있다. 40여 일이 넘도록 잔존하는 바이러스가 있다고 하니 양성 반응이 나올 수는 있다. 그 수치가 진단이 될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입원이 반가울 리가 없다. 물론 나도 순순히 물러서서 퇴원할 리가 없다. 원칙적으로는 입원도, 다인실 사용도 가능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 내 엄마가 소중하듯 다른 환자들도 귀한 생명임을 아는 까닭이다. 생각 끝에 1인실을 계속 쓰기로 하면서 병원 관계자들을 안심시켰다.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곳에서 나와 병원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1인실을 쓰고 있으니 다른 병실에는 어떤 환자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남의 일을 알고 싶지도 않고 그럴 여력도 없다. 가끔 닫힌 문 너머로 어떤 할아버지의 숨넘어갈 듯한 기침 소리가 들려올 때면 다인실에서 비슷하게 죽음을 향해가는 이들의 모습을 목격하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잠든 엄마의 숨소리를 확인하고 로비에 있는 가족 식당 정수기에 물을 받기 위해 복도로 나가는 순간 마음이 서늘해진다.

'아차, 여기는 호스피스 병동이지!' 하는 자각이 순식간에 온몸을 굳게 만든다.

로비로 이어지는 복도에서 들려오는 수녀님의 기도 소리. 배경음악처럼 이어지는 낮고 긴 흐느낌.

누군가가 죽었다!

지나는 길이기에 발걸음을 멈추지도 못하고, 두려움과 호기심에 얼핏 돌아본 옆병실에서는 기도문을 외는 수녀님과 직원처럼 보이는 제복 입은 사람들, 그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가족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다.

남의 처절한 슬픔을 훔쳐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얼른 눈을 돌려 복도를 걸어간다. 머리는 타인에 대한 예의를 말하지만, 실은 그 슬픔이 내 것이 될까 봐 두려웠다. 흐느끼던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내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소리가 뒤통수에 따라온다. 여기가 호스피스, 머리로만 알고 있던 사실이 가슴에 아로새겨지는 걸 깨닫자 마음이 무너졌다.


병실을 나오기 전까지 문을 닫고 있어서 임종 순간의 통곡 소리를 못 들은 것인지, 이미 임종을 준비한 가족들이 슬픔을 눌러 통곡이 아닌 흐느낌으로 망자를 보내드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잠깐 엿본 옆 병실의 모습에 마음이 황망히 뛰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검색 도중 어딘가에서 본 호스피스 병동의 평균 입원 기간이 22일 정도라 했던가. 입원하고 1, 2주를 넘기지 못하는 사람이 숱하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평균치로 가늠을 하면 5, 6주를 넘기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적어도 3주 혹은 그보다 짧은 기간에 한 번 꼴로 오늘 내가 목격한 임종의 순간이 발생한다. 입원 상담을 할 때 들은 간혹 2달을 다 채우고 퇴원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은

아마 그들도 거의 보지 못하는 기적 같은 일임이 분명하다. 확률 따위 무시하고 우리 엄마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헛된 희망을 안고 그 말을 믿었는지도 모른다.


겁이 난다.

우리 엄마는 과연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두렵지만 어렵게 말을 돌려가며 의사에게 엄마의 여명을 물었다. 뇌전이의 경우는 예측이 어렵다며 말을 아낀다. 정말 예측하기 어려운 건지 보호자를 배려하는 건지 구분이 안 간다.

기적이 일어나 60일이 되어 퇴원할 컨디션이 된다면 좋겠지만, 사지에 힘이 하나도 없고 24시간 중 23시간 이상을 잠으로 보내는 엄마를 보면 기적을 바라기 어렵다. 차라리 지금처럼 큰 고통 없이 남은 날들을 보내고 가기를 바라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엄마는 이제 손가락을 찌르는 혈당 체크나 배에 인슐린 주사를 놓을 때의 작은 자극들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감각의 상실. 아프지 않다는 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이제까지 정답이라 여겼던 것에 의문표가 붙는다.

눈을 뜨고 있는 짧은 시간에도 눈동자에 힘이 없다. 목표점 없는 멍한 시선은 딸도 못 알아본다. 눈물이 고였나 싶은 생각이 들도록 흰자위는 부풀어 올랐다. 뇌압이 높은 탓이다. 그렇게 고통스럽다는 말기 암성 통증은 아직 한 번도 표현하지 않았다. 기저귀를 갈고 체위를 바꿔주는 병동 간병인들이 하나 같이 작고 예쁘다고 입을 대는 엄마 발이 여전히 따뜻하고 뽀얀 걸 보면 아직 임종을 걱정할 때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뇌가 언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매 순간 긴장하며 엄마의 숨을 지켜본다. 그 숨이 편안할 때 비로소 내 끼니를 챙기고, 나의 몸을 돌본다.

낯 모르는 이의 마지막이 이토록 크게 와닿은 적이 없었다. 마음을 진정시키자.

언젠가 맞이할 엄마의 임종 순간에 통곡과 절규가 아닌, 절제된 흐느낌으로 엄마를 편안하게 보내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엄마가 가는 길, 끝까지 열려 있다는 귀에 내 통곡이 엄마의 한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슬픔이야 감출 수 없겠지만 마지막까지 엄마의 마음을 돌보아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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