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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entos 1 11화

과학이 필요한 순간

카이스트 차유진 박사

by 아름다움이란

정부의 의대 증원 의지는 막강했다. 올 해는 약 1,500명 증원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고 향후 5년간 지속적으로 증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의대 증원이 정말 우리 의료계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낙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의사과학자의 수가 매우 적다는 것도 우리 의료계가 가진 문제이지만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아직이다.


의사과학자는 의사이면서 과학자로 두 방면의 경험을 충분히 가진 연구자를 말한다. 기초과학과 임상이라는 두 영역을 넘나들며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춘 전문가인데 일부 선진국들과 비교한다면 우리나라는 그 수가 매우 적다. 수많은 실패가 보장되어야 연구다운 연구를 할 수 있다. 연구는 많은 시간을 두고 임상을 해야 하는데 연구자들의 보장되지 않은 미래가 그 길로 선뜻 들어설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예측 가능한 연구가 아닌 수없이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결과를 기다려주고, 과정이 합당했다면 실패도 용인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차유진 박사는 2004년 카이스트 학부에 입학한 뒤 19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사이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해 의사로서의 길을 걸었지만 더욱 과학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대학 진학 후 어려워진 기초 과목을 따라가기 벅차 끝까지 해 볼 용기가 나지 않았고 방황하며 학부생활을 마무리하고 안정적인 삶을 찾아 현실과 타협했다. 그러나 이미 정립된 의학 지식을 활용하여 진료를 하면서 여러 한계에 부딪혔고 그런 한계를 극복하려는 마음으로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기로 정하고 학교로 돌아왔다.


골육종을 앓던 어린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며 한 결정이었다. 왜 의학은 한계가 있으며, 한계를 극복하는 길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그 길은 결국 ‘연구’에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과학과 의학의 융합만이 생명을 살린다고 말하는 차유진 박사는 의사가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겠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과 기계가 상호 작용하면서 진화하는 공진화의 단계까지 기술을 발전시켜 의료 혁신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의 졸업식 연설을 듣게 된다면 누구라도 심장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현실과 타협하려고도 했지만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얼마나 어려운 과정일지 알면서도 결국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깨닫고 제자리로 돌아온 그의 용기와 새로운 도전에의 존경심이다.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단순히 의사 인원을 늘리는 것보다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고, 의사들이 필수 의료 분야에서의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우리 의학의 미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사의 길이 과잉 선호되는 시대. 수학이나 경영, 예술 등 의료와 다른 분야의 재능을 가진 학생들까지 의대에 진학하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고, 과학자와 공학자가 배고프게 살아야 하는 사회라면 미래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진로를 정하는 일은 인생에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중대한 일이기에 서두르면 안된다. 하지만 10대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은 채 재촉하는듯한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하면서 좀 더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을 입도록 도움을 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누군가 곁에서 도움을 준다고 해도 결국 진로는 자신이 찾아나서야 하는 것이기에 언제든 곁을 지키며 조언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차유진 박사처럼 돌고 돌아야 정말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찾아낼 수 있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지켜낼 수 있는 일을 찾는 과정이니 조금 멀더라도 에움길을 선택하길 바란다. 그 길에서 사람 손 덜 탄 자기만의 생각을 정리하며 뚜벅뚜벅 걷다 보면 어쩌면 지름길을 택한 이보다 더 빨리 종착지에 서게 될지 모른다. 자기 마음을 돌아볼 겨를 없이 빨리 가는 데만 급급하거나 타인이 가꾸어 놓을 길을 편히 가려다가 결국 마지막 문턱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온 터라 서두르지 말라고 꼭 당부하고 싶다.




에움길: 빙 둘러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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