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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에 소속 될 수 있는가, 엄마라는 혼란스러움

우리네 삶은 구분 짓고 분절하기를 좋아한다. 뭉뚱그려져 있거나 중립적인 성질의 것들을 어떻게든 정의하고 파악하고자 한다. 그렇게 해야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대략적인 윤곽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를 만나면 옷차림, 지위, 말투 등을 통해서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인가 아닌가, 성공한 인생인가 아닌가 등을 기준으로 분류하곤 한다. 좌측인지 우측인지, 위쪽인지 아래쪽에 속하는지 그 경계가 구분되고 내 편의 사람인 것이 확인이 되어야 그 무리와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다는 신화가 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 성적을 기준으로 모범생과 문제아로 나누고, 대학에서는 학교의 등급에 따라 소속에 따라 유대감을 느끼거나 배척할 명분으로 삼기도 한다. 그러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 짓고 30대가 되면 기혼인지 미혼인지에 따라, 또 결혼하면 2세의 유무에 따라 다른 잣대가 디밀어진다. 40대, 50대 이후의 중〮장년이 되어서도 저마다 제각기 중시하는 가치를 기준으로 삶의 경계 긋기와 분류하기는 끊임없이 계속된다. 


앞에서와 같이 사회나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물론이고 나 자신을 대할 때도 이러한 툴이 적용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나와 타인을 비교하며 안심하거나 불안해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속해 있고 나와 같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 혹시 나만 불필요하게 튀거나 뒤처지는 건 아닌지 조급해한다. 그들과 비슷한 색채를 띠기 위해 은밀히 나의 농도를 조절하기도 하면서.


나도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다 무난하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육아에 전념하게 되는 수순을 밟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나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깨닫는 순간 그 당혹감과 억울함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 이후에는 그런 감정이 느껴질 때마다 눈물샘이 멈추기 않았던 것 같다.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내가 낳은 생명체를 대면하는 신비감과 모성애라고 불릴 법한 온화한(?) 감정으로 아이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내 품에서 꼬물거리며 쌔근쌔근 잠만 자는 아이가 100일이 넘어서자 잠투정과 인지가 어느 정도 생기게 되면서 본격적인 육아 헬게이트가 시작되었다. 게다가 낮과 밤이 바뀌어 울어대던 예민했던 아이는 그즈음에 고열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은 장기 출장으로 육아를 도와줄 수 없는 상황, 게다가 주변에 도움을 구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5일 간을 병원에 입원하며 아이가 잠투정으로 밤마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바람에 새벽마다 아이를 업고 병원 로비를 걸어 다니며 잠을 재워야만 했었다. 나는 나대로 육아 스트레스로 남편은 남편대로 업무 스트레스로 서로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싸우기 일쑤였다.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 속에서는 모든 고난을 뚫고 왕자와 공주가 결혼만 하기만 하면 아무런 의견 없이 만장일치로 행복하게 산다고 했는데, 역시 현실과 동화는 너무나 괴리감이 크다.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며 평화롭고 행복한 결혼생활이 펼쳐지리라 예상했던 나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 어느샌가 놓여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직 버티고 견디는 것만이 그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을 거쳐 직장인이 되기까지 20여 년에 걸친 세월을 지나오며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학생으로서 혹은 사회인으로서 마땅히 자리 잡고 있어야 할 ‘내 자리’의 상실과 나의 역량을 인정해 주고 정의해 주던 여러 수식어들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예전의 나와 현재의 나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구분 지으려 한다. 도대체 나는 어디에 속하는 사람인가? 


내가 예상했던 나의 미래에 이런 건 없었는데,. 내가 여태까지 몸담고 있었던 사회나 와는 괴리된 ‘전업주부’ 혹은 ‘경단녀’라는 이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처럼 여기저기에도 속하지 않아 애라 매 모호한 혹은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해 이러한 묶음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이들을 별종 취급하며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분명히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했던 말 잘 듣는 착한 학생, 일꾼으로 살아왔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 간의 오랜 공〮사교육이 무색하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나니 여태까지 살아온 나의 삶은 다시 제로가 되고 나는 ‘애엄마’에 ‘경단녀’라는 타이틀로 사회와 유리되어 초라하게 찌그러진 느낌만이 남았다. 나는 그냥 흔하게 티브이만 보면 나오는 평범한, 흔한 부부가 된 것뿐인데 이로 인해 감당해야 할 것들이 한꺼번에 물밀듯이 밀려왔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아 그래… 애 낳는 게 아프다는 말은 들어봤지 그래 봤자 한 순간의 고통이니까 무통주사의 힘을 빌려 눈 한번 질끈 감고 낳으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결혼을 하면 미묘한 갑과 을의 관계 사회에서와 비슷하게 가정 내에서도 은근한 눈치와 권력관계가 형성된다는 걸, 그리고 경제권을 쥔 사람의 결정권이 더 크고 세다는 것 그리고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만 같은 무언의 압박에 나의 존재는 더 조그마해 지곤 했었다. 마치 무슨 죄를 지은 패배자처럼…


<미움받을 용기>나 <자존감 수업>과 같은 현대인의 상처 받은 마음을 다독여 주는 책에서 강조 하듯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정체성을 정의하기엔 많은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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