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해서남 주냐,내 살길이 생기기 마련이다
내 안에 새겨질 인생의 흔적은 무엇일까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도 같을 내일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딱히 정해진 시기를 정의할 수는 없지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시점이 되면 우리는 우리네 인생에서 명확한 결과와 그동안 걸어온 뚜렷한 족적의 흔적을 확인하기를 원한다. 우리 사회는 꾸준히 견뎌내며 그 분야에서 이름을 떨치거나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은 사람들을 인정하고 우대해 주기 때문이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열매는 달다’라는 말처럼 노력해서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뤄낸다면 자신은 물론 남들에게도 의미 있는 삶이라는 인정과 신뢰를 얻을 수 있기에, ‘노력 = 성공’이라는 공식을 한치의 의심 없이 는 진리로 여기기도 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와는 상관없이 의연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과와 퍼포먼스(아웃풋)를 중시하는 사회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금 이 순간도 바쁘고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노력을 한다고 해서 누구나 만족할 만한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 이미 잘 알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방법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혹은 힘 조절의 실패로 이미 초반에 지쳐버리거나 아직 임계점 이하의 노력만을 쏟아부었기에 그저 노력을 흉내 내는 수준에서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성공적이다 아니다’의 판단 시점이 너무 일러서 노력한 인풋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성급하게 정의되기도 하고, 실제로는 나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는 타인의 간섭으로 평가절하되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각자의 입장과 위치, 관점에 따른 주관적인 의견이나 조언들이 어느새 객관적인 팩트로 인식되어 우리의 추진 동력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평가는 나를 좀먹는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게 해 주는 각성제인가…
목표를 향하는 과정에서 받은 섣부른 판단과 평가는 대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큰 걸림돌이 되기 쉽다. 목표를 정한 것도 나 자신이고 혼자만의 싸움으로 끌고 나가는 주체도 나 자신인데 정작 최종적인 판단과 평가는 나에게 별 관심이 없고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권을 이양하는 경향이 있다. 객관적인 평가가 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으로 말이다. 열정을 쏟은 것도 나이고 간절히 원했던 것도 나인데 왜 정성 들여 애착을 쏟아부은 대상에 대한 평가를 타인이 하도록 내버려 두고 상처 받기를 감내하는 것일까. 왜 나의 판단과 믿음을 신뢰하지 못하고 타인의 인정과 평가를 받아야 비로소 우리는 안심할 수 있는 것일까.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으나 사실은 자신에 대한 믿음의 부재를 행여 들킬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정주부라는 사회에서 배제된 현실의 벽을 깨닫다
나는 10년 차 가정주부다. 결혼을 하고 본격적인 육아를 시작한 이후로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성과’, ‘성취’와 같은 사회적이고 진취적인 단어들과 어울리지 않는 부류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산모가 애를 낳으면 ‘뿅’하고 장착되리라 여겨지는 -엄마라면 탑재해야 마땅한 바다같이 넓고 깊은 모성애처럼 당연한 수순이랄까. 혹은 마치 인생의 진화론 -기혼 여성 버전-을 따르는 것처럼, 아니 인생의 도태론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려나… 한 인간으로서의 개인의 성장과 발전은 육아를 하고 집안일에 밀려 이미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가 버리고, 존중을 기반으로 한 인생의 동반자로서의 역할은 어느 사이엔가 경제력을 가진 이의 발언권에 프리미엄이 붙으며 묘한 갑을 관계를(갑은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을은 분명히 느끼는) 형성해 버린다. 이렇게 기혼 여성으로서의 겪어야 할 파란만장한 결혼 생활은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 온 연륜이 지닌 절제미, 완숙미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랄 맞은 도태(?)의 과정을 통한 투쟁의 역사로 새겨진 닳고 닳은 생채기가 아물며 생긴 훈장일 따름이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자연스럽게 도태되어가는(?) 자연의 섭리에 편승하지 않고 온몸으로 발버둥 치며 트러블 메이커를 굳이 자처하는, 외로운 고행의 길에 들어서려는 용자들이 있다. 생각해보니 사실 나도 그 부류 중의 한 사람이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12년 정규 교육을 아주 뛰어나지도 혹은 뒤떨어지지도 않은 실력으로 무난하게 마쳤다. 사실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조바심을 가지거나 잠을 줄여가며 학업에 몰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때까지는 1등을 놓쳐본 적은 없었다. 이는 상당 기간 동안 나의 자신감의 근거인 동시에 현재의 나를 초라하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바라보는 악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10대 때는 학생으로서의 의무에 나의 성취욕을 촉진제 삼아 성실히 학교 생활을 하고 나름의 인정도 받으며 만족할 만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20대 때는 학창 시절 내내 이를 위해 달려온 대학의 문턱을 마침내 넘으며 적당한 자유와 때론 희로애락의 연애사도 겪으며 번듯한 사회인으로 탈바꿈했다. 누구나 그렇듯 적당한 타이밍과 나이에 맞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며 ‘그렇게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식의 해피엔딩을 기대했다. 순진하게도. 굳이 나의 그런 아둔한 생각에 변명하자면 내가 살면서 배운 것은 딱 거기까지가 다였고 그다음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맨땅에 헤딩을 해가면서 배워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물론 한국의 남자들도 안쓰럽다. 나라를 지키는 영예로운 일이긴 하지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군대도 가야 하고 평생 가족을 부양해야 할 운명을 띄고 태어난다. 물론 요즘을 이런 인식이 바뀌어 가고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아직까지는 대부분 이런 패턴을 따른다. 사회생활을 하며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치사하고 고단한, 이 꼴 저 꼴 볼꼴 안 볼꼴을 견딜 힘과 무한한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일상생활의 연장선이라는 점에서는 비교적 예측 가능하다. 육아를 시작하며 갑자기 위치와 생활 패턴이 극적으로 바뀌는 엄마란 역할에 비하면 그나마 직장 생활에선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만큼 정신적인 대미지를 경험할 일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 편이다.
육아 후 열리는 헬게이트,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그런데 여성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남자들과 똑같이 배우고 인정받고 역량을 발휘하기를 요구받고 이에 부흥하며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 대우가 180도로 달라진다. 내가 예전에 무엇을 했던 어떤 경력이 있었던 어디에 관심이 있고 흥미가 뭐든 상관없이 그냥 애기 엄마다. 그리고 새내기 엄마로서 갑자기 주어지는 의무와 책임에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들의 입장이나 상태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채, 사회적 측면에서의 가정이라는 시스템을 제대로 굴리기 위해 나의 편이라고 생각했던 남편, 가족, 사회가 모두 한 목소리로 당연한 희생을 요구한다. 이런 규격화된 엄마라는 이미지에 맞는 역할을 감내하고 견딜 수밖에 없도록 도덕적/ 사회적 프레임을 내세워서 겉으로는 다정하고 젠틀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인정 사정없는 무지막지한 시스템을 그녀들에게 들이댄다.
언제는 공부 열심히 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멋진 인재가 되라고 독려하더니..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 유통기한 다 된 퇴물 취급을 하며 기존의 역할에서 강제 직위 해제되는 허탈한 감정, 내 편인 줄 알았던 남편이 갑자기 가부장적으로 변하며 집안일과 육아에 있어서 효율성을 요구하며 옥죄는 악질로 변모하기도 한다. 낮 시간에 아이 재워놓고 그깟 집안일은 한두 시간 만에 효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냐며 타박하는 악마 같은 모습을 엿보기도 하고, 본인이 도와줄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기대어 버릇이 더 나빠질 수 있으니(결혼하고 나니 본격적으로 군림하려는 인간의 추한 실체가 드러나기도 한다) 바른 습관(?)을 만들어 주려고 일부러 집안일이나 육아를 대놓고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는 숨겨진 인성을 발견하게도 되더이다.
생명의 탄생에 감격해하고 그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조리원에서의 달콤한 황금기를 끝으로 내가 살았던 집은 이미 공기부터가 예전과 달라져 있다. 이런 물리적 정신적인 환경에 놓이게 되면 어느 누가 우울증을 겪지 않을 수 있을까. 사회와 단절된 채 집안에 갇혀(?) 듣는 빵빵하게 공간을 채우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남보다도 못한 남편이란 작자의 잔인한 타박을 들으며 스스로 내리는 형벌과도 같은 자기 비하가 범벅이 되던 그 시절. 무기력과 끝도 없이 느껴지는 허무함. 평생 처음 느껴보는 그런 낯선 감정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고 누구나 다 그런 과정을 겪는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주변 사람들 그나마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애기 엄마들만의 서로 위로와 공감을 주고받을 뿐 진정 내 사람들은 전혀 내 편이 되지 못했다.
나를 위로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공부’였다. 일정 시간 동안은 완전히 공부에 몰두함으로써 현실에서 벗어나 온전히 집중하는 나를 느낄 수 있고 예전의 내가 된 듯한 그런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공부’. 학창 시절 지겹게 해 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힘든 시간에 내가 기댈 곳은 공부밖에 없었다. 혹시 나를 이 곳에서 구제해 줄 수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와 함께. 당시는 그것만이 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출구였다. 아이가 6개월이 되던 차에 대학원을 진학했고, 아이를 재우고 나서 드디어 짬이 나면 새벽 2시까지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정말 그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울면서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육아에 집안일에 공부까지 병행하려니 물론 힘들어서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인간다운 생존을 위해 아직 일말의 자존감이라도 남아있는 나를 부여잡기 위해 숨 쉴 구멍을 내가 나서서 확보해 놔야만 했었다. 아이가 4살이 되어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서 완벽히 자유로운 나만의 시간이 생기게 되었고 이때부터는 국비로 운영되거나 지자체가 지원하는 자격증 과정, 심지어 문화센터의 가벼운 강의들도 수강하며 희미해진 나란 존재와 나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가 5살이 되던 해, 드디어 그간의 설움과 나 스스로에 대한 의문을 떨쳐내어 버릴 수 있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렇게 바라던 워킹맘의 대열에 들어가데 된 것이다. 사회와 영원히 유리되어 나만 동떨어진 세계에서 아이와 남편만을 평생 바라보고 살게 될 줄 알았는데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배움과 공부의 저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남편은 밖에서 일하는 여성에 대한 강한 편견이 있었던 탓인지 초반에는 온갖 멸시와 비난으로 나의 워킹맘의 길을 저지하려 했지만, 이를 갈며 독기로 그 시절을 버텨온 나였기에 온갖 명분과 근거로 그를 허락을 받아 낼 수 있었다. 단, 모든 집안일과 육아는 자신의 도움 없이 그대로 유지하는 조건으로. 돈을 벌어오겠다고 하는 것도 이렇게 허락받고 애원하고 양해를 구해야만 비로소 가능한 나의 처지가 한심했지만 그나마 여기에서 멈출 수 있었기를 천만다행으로 여기며…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 내 생각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