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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 무조건 타고나야만 하는 공부 DNA?!

한국 사람들은 배우는 것을 참 좋아한다. 인생의 전반에 걸쳐 펼쳐질 이 대장정의 지독한 레이스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태아의 뇌가 비록 새머리보다 조그맣고 아메바보다도 더 단순한 시기라 할지라도 엄마들이 갖고 있는 태교 신화는 ‘인풋이 있으면 (설사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미미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아웃풋이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자녀들을 핏덩이 아기 시절부터 배움이라는 그라운드에 입장시킨다. 


물론 태교는 엄마가 평안하고 여유로운 환경에서 태아의 발육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함이 주된 목적이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던가... 산모의 정신 안정이라는 기본적인 목표 위에  문자 그대로 ‘태교(胎敎): 뱃속에서 교육한다’라는 의미를 살려 태아의 인지발달(지능발달까지 가면 더 좋겠지…)이라는 프리미엄을 얹혀 한정된 10개월이라는 시간 안에 잘 버무려 빚어내기(?) 위한 보너스 목표가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임신을 했을 때, 예외는 아니었다. 도서관에서 육아와 관련된 책을 탐독하며 책 읽기 좋아하는 아이를 상상하거나, 신생아 옷을 뜨개질하며 손재주 있는 아이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으쓱했던 기억이 있다. 영어 태교 동화책을 읽으며 나와는 다르게 영어에 거부감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기도 하고 만삭으로 중국어 시험(HSK)을 준비하면서 이렇게 집중하는 하는 시간들이(당시에는 아이도 같이 공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엄마 이제 공부할 시간이야 우리 이제 같이 공부하자.”라며 자기 암시를 했었던 시절…) 아이의 공부머리 형성에 어느 정도 도움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아이는 자기 성향대로 생겨먹은 대로 나오는 것 같지만 말이다…


그리곤 유치원생이 되어서는 모국어 발음이 완숙해지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며 꼬꼬마 유치원생들이 영어 학원, 하루 종일 영어만 쓰는 영어 유치원을 다닌다. 심지어 영어로도 성이 안차 중국어까지 배우는 이중 어학 유치원에 다니기도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비교와 경쟁 시스템을 경험하게 되고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주입식 교육에 잠식당하게 된다. 개인의 특성이나 역량을 무시한 채 단 하나의 효율적이라고 믿어지는 교육 시스템에 잠식되다 막바지에 이를 때 즈음, 뜬금없이 자신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하지만 형식적인 절차일 뿐 어차피 결론은 선택의 여지없이 점수에 맞춰 대학을 선택해야만 한다. 꿈과 적성을 무시한 교육 과정의 설계답게 그 종지부도 어김없이 한결같은 시스템이다.  


여기까지 이렇게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을 복기해보니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시키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는 듯이 대학에 가면 지난 초중고 시절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라도 얻으려는 듯 미련 없이 학업에 손을 떼거나 반대로 그간의 노력을 우상화하여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거리낌 없이 나타내려는 이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적성과 자질, 자아 정체성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 없이 학창 시절을 내달려왔기에 대학에 들어가서야 이를 찾기 위한 뒤늦은 사춘기를 겪기도 한다. 비로소 그때서야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 경험,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 현실을 접하게 되면서 내가 주인이었어야 할 나의 인생이 비워져 있음을 깨닫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인생을 마라톤이라고 본다면, 그 출발선은 자신을 잘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마라톤에 참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마라톤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인식하고 뛰는 자와 단지 기록을 내기 위한 완주만을 목표로 뛰는 사람은 그 기나긴 여정에서 많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생을 바라보는 이런 태도와 마인드에 대해 생각할 만한 여유와 시간, 기회는 주어지지 않은 채 떠밀리 듯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선택조차도 성적표라는 서열 아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장을 손에 쥔다 해도 막상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예전에는 취업의 기회가 비교적 많았기에 번듯한 직장에 다니면서 퇴사를 꿈꾸거나 재교육을 얻을 자본금이라도 축척할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요즘은 대기업 공채도 점차 줄어들고 자동화, 디지털화 등으로 산업의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있어 취업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이러한 위기감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쉴 틈도 없이 신입생 때부터 스펙 만들기와 자격증 공부를 위해 학창 시절의 연장선처럼 취업공부에 매진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마땅히 거쳐야 할 자아에 인식을 유보시키는 것일 뿐 오히려 취업을 하고 나서 뒤늦게 방황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문제를 낳고 있다. (퇴사율 자료/ 퇴사 이유.. 주변 사람들보다는 자신에 대한 불안과 방황에 의한 퇴사율이 높음) 때문에 요즘엔 퇴사도 마치 하나의 트렌드처럼 이를 주제로 한 강연과 베스트셀러들이 출간되고 많은 젊은이들이 이에 동의하며 퇴사를 열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전처럼 인간관계로 인한 퇴사의 이유보다는 적성과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퇴사를 결정하는 사례가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관련 내용 첨부).

그렇다고 여기서 몇십 년 전의 국민학교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한국 교육 시스템의 민낯이나, 어마어마한 학습량과 주입식 교육 덕택에 한국 학생들이 각종 국제 대회를 석권하면서도 낮은 학업 만족도나 기준 미달의 문해력 등을 문제 삼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 성적 우수자들을 골라내기 위해 다수의 아이들을 들러리로 만드는 교육 시스템은 반드시 하지면 너무 성급하지 않게 바뀌어야 할 것이고 개인의 역량에 중점을 두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줄 수 있는 교육은 절실하다는 생각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옳다구나! 이제 문제점을 찾았으니 개선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나름 삶의 연륜이라는 것이 쌓이다 보니 사회적 문제 해결이라는 사안이 그렇게 간단치가 않더라. 스캔들이 터지기 전에는 문제가 있어도 건드리지 않는 조직적인 관행, 문제가 이슈화 되어도 금방 잊히고 다시 반복되는 사회 문제들. 사람은 바뀔지라도 그 시스템이나 조직은 그 관례를 그대로 이어받다 보니 전체적인 틀을 바꾸기가 어려운 것이 사회 시스템이고, 특히나 교육이라는 것은 더욱 그런 경향을 띄고 있다. 하지만 점진적으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정과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고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의 관심사는 과거 그런 교육을 그런 시스템에서 나고 교육을 받아 성인이 된 이들에게는 어떤 방향 설정과 마인드가 필요할까를 얘기해 보고 싶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하나의 방법을 찾기 위해 유럽에서 고군분투했던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러한 획일화된 교육체제 안에서 교육을 받아 성인이 된 이들에게는 그 이후 20년이 지난 이들에게는 어떤 방향 설정과 청사진이 필요한 것일까?) 



그렇다고 여기서 몇십 년 전의 국민학교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한국 교육 시스템의 민낯이나, 어마어마한 학습량과 주입식 교육 덕택에 한국 학생들이 각종 국제 대회를 석권하면서도 낮은 학업 만족도나 기준 미달의 문해력 등을 문제 삼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교육을 받은 30대 이상의 어른들의 그 훗날은 어떻게 되었을까? 



 해외에 나와서 살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이 교육에 대한 것이다. 이렇게 유럽에 살아 보니 시야와 관점이 넓어진 다는 것이 이런 의미인가 보다는 것을 느낀다. 뚜렷한 사계절은 대한민국만이 가진 특징이 아니며(예전에 어디서 듣기로 사계절이 있기에 사람들이 추위와 더위에 살아남는 법을 고안하고 궁리해내느라 한국사람이 똑똑하다는 말을 듣고 그런가 보다 하고 수긍을 했던 기억이 있다… 여름휴가로 열대 기후를 가진 동남아시아나 지역에 따라 온도와 지형이 넓은 중국밖에 가지 못했기에.. ), 천혜의 금수강산과 벼〮보리농사 2 모작이 가능한 비옥한 토지와 삼척에는 석회석, 홍천에는 철광석 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한 줄 알았더니 


굳이 뭘 위해서 그렇게 줄을 세우나 공채의 문도 더 놓아졌는데 제네럴 리스트가 아닌 스페셜리스트  방향을 알지만 사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복잡하다. 미국을 보면 감이 올 수도 

저런 교육을 받고 자라온 사람으로서 느끼는 교육의 배신감을 토로하기 위함도 아니다. 


이미 저런 교육을 받고 살아온 우리들로써 우리에게 남아있는 공부에 대한 개념과 이를 어떻게 앞으로 에서 더 잘 활용해 나갈 수 있을지 그것을 살펴보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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