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나들이 Apr 10. 2024

아들 생일에 받은 편지

살다 보면 이런 날도

- 엄마, 아침에 일어나면 식탁에 편지 좀 봐줘요


새벽에 설핏 잠이 깨 핸드폰을 보니 아들에게 카톡이 와있었. 궁금한 마음에 식탁으로 가보니 회색 편지 봉투 안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 두 장이 들어 있다. 오늘아들의 생일인데 아들은 나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편지를 쓸 때의 아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엄마, 아빠께


........


사실 생일은 축하받을 날이기보단 엄마, 아빠한테 감사해야 하는 날 같거든요.


아직 한참 어린 나이지만 많은 일을 겪으면서 난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걸 많이 느껴요. 엄마가 항상 말하던 당연한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이 이제야 와닿네요. 


여러 사람을 만나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속에 상처를 하나씩은 갖고 살고 있고, 그게 대부분 가족 일이더라고요.


 .......


지금까지 마음의 상처 하나 없이 엄마, 아빠같이 좋은 부모님 밑에서 큰 내가 머쓱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알게 됐어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항상 엄마, 아빠한테 고마웠고 언젠가는 말해주고 싶었는데 오늘이 그날이 됐네요.

........


내가 이렇게 좋은 부모님 밑에서 있었던 정말 행운이자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가슴속에 새기고 감사하면서 살아갈게요.


항상 말하고 싶고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는 같아요.

세상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엄마, 아빠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엄마, 아빠의 자식이라서 행복합니다.

사랑해요.

낳아주셔서 고마워요.

                                                 아들 올림


편지를 다 읽어갈 때쯤 남편이 출근 준비를 위해 일어났다.

"새벽에 안 자고 왜 나와 있어?"

"아들이 감동적인 편지를 써놨네."

남편은 편지를 읽더니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우리가 아들을 잘 키웠네."


"우리가 잘 키운 게 아니라 우리 아들이 알아서 잘 큰 거 같아."


편지를 읽고 나니 며칠 전 브런치에 쓴 '마음에 구멍이 난 사람'이 떠올랐다. 부모님의 마음의 구멍으로 인해 내 마음에도 구멍이 생겼지만 가족의 사랑으로 구멍을 메우고도 부모님께 나눠줄 사랑이 생겼다.


https://brunch.co.kr/@a4cb887aea174df/128


아들에게 혹시 그 글을 읽었는지  물어보니 보지 못했단다. 가끔 아들이 나오는 글을 링크해 보내주기도 하지만 그 글은 선뜻 보낼 수가 없었다.


아들은 자신의 마음에 상처도 없어 감사하고 우리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가장 큰 행운이고 축복이라고 했다.

인생을 살면서 들을 수 있는 가장 명예롭고 고귀한 축사였다.

열심히 살아온 내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신이 주는 일종의 인증서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아들에게 준 상처가 정말 하나도 없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없었을까. 다만 몇 년이 지난 일이어도 '그때 미안했다'라고 사과하며 차가워진 영혼에 담요가 되어주려 애썼다. 아들은 나의 미안하다는 말에 마음의 상처를 씻어버렸나 보다. 그리고 내면의 아이를 잘 성장시켰다.


아들이 자신의 생일날 나에게 감사 인사를 한 게 오늘이 처음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생일이 되면  "엄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남편이 생일날,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어머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말하는 걸 보고 자라며 스며들었을까. 아들은 감사 표현을 전화에서 편지로 정성스럽게 승격시켰다.


그저 내 인생을 열심히 살려고

가족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려고

아들에게 웃으며 얘기하려고 노력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하루하루가 모여 감사한 일상이 되었다.

아무 일 없는 하루가 얼마나 큰 감사인가.


당연한 것에 감사하라


언제 이런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내가 한 말을 마음에 품었다가 기쁘게 꺼내 쓴 아들이 참 고맙다.


나는 아직도 내 생일에 부모님께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쑥스러워서 시도조차 못했다. 나보다 더 멋진 어른으로 자라고 있는 아들을 보며 이제는 내가 배운다.



옳은 길을 걷다 보니 행복이 깃들었고

사랑으로 살다 보니 사랑이 찾아왔다.



한 줄 요약 : 살다 보면 내가 가진 품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아 행복한 날도 있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이전 18화 스윗한 아들을 만드는 비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