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설핏 잠이 깨핸드폰을 보니 아들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식탁으로 가보니 회색 편지 봉투 안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 두 장이 들어 있다.오늘은 아들의 생일인데 아들은 나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편지를 쓸 때의 아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엄마, 아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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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생일은 축하받을 날이기보단 엄마, 아빠한테 감사해야 하는 날 같거든요.
아직 한참 어린 나이지만 많은 일을 겪으면서 난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걸 많이 느껴요. 엄마가 항상 말하던 당연한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이 이제야 와닿네요.
여러 사람을 만나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속에 상처를 하나씩은 갖고 살고 있고, 그게 대부분 가족 일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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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마음의 상처 하나 없이 엄마, 아빠같이 좋은 부모님 밑에서 큰 내가 머쓱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알게 됐어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항상 엄마, 아빠한테 고마웠고 언젠가는 말해주고 싶었는데 오늘이 그날이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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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좋은 부모님 밑에서 클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행운이자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가슴속에 새기고 감사하면서 살아갈게요.
항상 말하고 싶고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잘 못하는 거 같아요.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엄마, 아빠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엄마, 아빠의 자식이라서 행복합니다.
사랑해요.
낳아주셔서고마워요.
아들 올림
편지를 다읽어갈 때쯤 남편이 출근 준비를 위해 일어났다.
"새벽에 안 자고 왜 나와 있어?"
"아들이감동적인 편지를 써놨네."
남편은 편지를 읽더니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우리가 아들을 잘 키웠네."
"우리가 잘 키운 게 아니라 우리 아들이 알아서 잘 큰 거 같아."
편지를 읽고 나니 며칠 전 브런치에 쓴 '마음에 구멍이 난 사람'이 떠올랐다. 부모님의 마음의 구멍으로 인해 내 마음에도 구멍이 생겼지만 가족의 사랑으로 구멍을 메우고도 부모님께 나눠줄 사랑이 생겼다.
아들에게 혹시 그 글을 읽었는지 물어보니 보지 못했단다. 가끔 아들이 나오는 글을 링크해 보내주기도 하지만 그 글은 선뜻 보낼 수가 없었다.
아들은 자신의 마음에 상처도 없어 감사하고 우리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가장 큰 행운이고 축복이라고 했다.
인생을 살면서 들을 수 있는 가장 명예롭고 고귀한 축사였다.
열심히 살아온 내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신이 주는 일종의 인증서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아들에게 준 상처가 정말 하나도 없었을지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없었을까. 다만 몇 년이 지난일이어도 '그때 미안했다'라고 사과하며차가워진영혼에담요가되어주려 애썼다. 아들은 나의 미안하다는 말에 마음의 상처를 씻어버렸나 보다. 그리고 내면의 아이를 잘 성장시켰다.
아들이 자신의 생일날 나에게 감사 인사를 한 게 오늘이 처음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생일이되면 "엄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나에게메시지를 보냈다.
남편이생일날,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어머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말하는 걸 보고 자라며 스며들었을까. 아들은감사 표현을 전화에서 편지로 정성스럽게 승격시켰다.
그저 내 인생을 열심히 살려고
가족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려고
아들에게 웃으며 얘기하려고 노력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하루하루가 모여 감사한 일상이 되었다.
아무 일 없는 하루가 얼마나 큰 감사인가.
당연한 것에 감사하라
언제 이런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내가 한 말을 마음에품었다가 기쁘게꺼내 쓴 아들이 참 고맙다.
나는 아직도 내 생일에 부모님께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쑥스러워서 시도조차 못했다. 나보다 더 멋진 어른으로 자라고 있는 아들을 보며 이제는 내가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