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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Apr 16. 2024

비가 오면 생각나는 엄마의 김치국밥

엄마의 김치국밥과 물김치

초등학교 시절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엔 엄마는 늘 김치국밥을 해주셨다. 멸치육수에 김치와 밥을 넣어 끓이셨고 가끔 국수나 떡국 떡도 넣어주셨다. 방금 만들어 상에 올려진 김치국밥은 뜨거운 김을 공기 위로 길게 올렸다. 국밥 한 숟가락을 떠서 호호 불어 입에 넣으면 뜨겁고 알싸한 김치 국물이 입안에 쫙 퍼졌다. 김치국밥은 비 오는 날 한기 들었던 몸을 뜨끈하게 녹여주었다.

엄마의 김치국밥은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았고 김치와 밥의 따끈한 조합은 없던 식욕도 돌아오게 했다. 나를 닮아서 그런지 우리 집 아이들도 김치로 한 요리를 정말 좋아한다. 아이들에게 김치국밥을 끓여준 적은 없지만 김치찜이나 김치찌개를 자주 해준다. 저녁도시락으로 사흘 연속 김치찌개만 싸달라는 딸에게

"그렇게 자주 먹으면 질리지 않아?"

하고 물었더니

"엄마 김치찌개는 매일 먹어도 안 질려요."

한다.

나는 얼굴에 꽃받침을 하고는 "엄마처럼?" 하며 환하게 웃었다. "응" 하며 딸도 따라 웃었다.


40년 전 엄마가 끓여 주던 김치국밥은 절대 질리지 않는 엄마의 음식이자 사랑이었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 부엌에서 뭔가를 만들 때 나는 소리가 좋았다.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 그릇을 싱크대에 놓는 소리, 물소리, 가스레인지 위에 국밥이 끓는 소리.


김치의 시큼한 향에 밥의 구수한 향이 섞인 김치국밥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면 나는 상을 펴고 숟가락을 놓았다. 김치국밥은 점심때 배고픈 허기를 채워주는 든든한 한 끼인 동시에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 소녀의 정서적 허기를 채워주는 영혼의 밥이었다.


엄마는 항상 뜨거운 국밥 옆에 시원한 물김치를 내어주셨다. 뜨겁고 짭조름한 김치국밥과 시원하고 달달한 배추물김치는 궁합이 딱 맞았다.

결혼하고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 내려가서 밥을 먹을 때도 항상 물김치를 꺼내주셨다.

"엄마, 물김치 진짜 맛있다. 어떻게 만드는데?"

"일하면서 이걸 언제 만들려고. 엄마가 만들어서 택배로 부쳐줄게."

한 그릇만 가져가면 된다고 해도 엄마는 며칠 뒤 열무물김치와 배추물김치를 한 통 씩 담아 택배로 보내주셨다.

"택배로 가면서 다 익었을 테니까 김치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어라."는 엄마의 말대로 김치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열무 국수도 해 먹고 비빔밥에도 넣어 먹으니 열무김치 하나면 다른 반찬이 없어도 든든했다.


어제 처음으로 혼자서 열무김치를 담갔다. 열무를 씻고 한 시간 넘게 소금에 절이고 야채를 갈아 넣으면서 엄마가 만들어주던 열무물김치 생각이 났다. 그때는 김치를 내 손으로 담가본 적이 없어 이렇게 귀한 건 줄 몰랐다. 직접 담가 보니 시간도 꽤 걸리고 손도 많이 갔다. 새삼 엄마가 고마웠다.

열무김치를 담으며 내가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쉽게 판단하며 재단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됐다.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엄마가 해주던 걱정과 음식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던걸 느꼈다. 내가 김치를 담가보니 김치 꼬다리 하나도 버릴 수 없이 소중한데 말이다.

 다른 사람이 한 일을 나의 일만큼 소중히 생각하지 않아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어제, 오늘 이틀 연속 비가 왔다. 비가 오면 늘 생각나는 김치국밥이지만 내가 직접 끓여 먹은 적은 없었다. 글을 쓰는 동안 남편이 갑자기 김치국밥이 먹고 싶다며 끓여 놓았다. 엄마가 해주던 국밥만큼 진하진 않지만 서로의 어린 시절을 반찬삼아 맛있게 먹었다. 김치국밥은 나의 정서적 허기까지 채워주던 추억의 음식으로 간직될 것이다.


엄마에게 내가 담은 서울식 열무김치를 보내줘야겠다. 김치를 담기 시작하면서 엄마를 더 이해하게 되었. 김치가 40대의 엄마와 40대의 나를 이어주는 행복의 끈이 되어주었다.


한 줄 요약 : 비와 함께 찾아온 김치국밥의 추억이 젊은 시절 엄마를 이해하는 끈이 되어주었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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