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비행기에 탑승하고 같은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수영장에서 또다시 만났던 테스 가족은 우리 가족의 잊지 못할 소중한 인연이다.
큰 아이가 다섯 살 때 '아이들과 놀기 좋다는' 괌 pic 호텔로 여행을 갔다.
새벽에 괌에 도착해 호텔 체크인을 하는데 비행기에서 만난 외국인 가족도 보였다. 부부는 웃는 인상이 참 좋았고 우리 아들 또래로 보이는 남매는 얼굴에 귀여운 주근깨와 장난기가 가득했다. 새벽잠을 이기지 못하고 소파에 대자로 뻗어 자는 우리 딸을 보고 그녀는 '너무 귀여워'라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코를 찡긋하며 웃었다.
다음 날 아침, 서둘러 아침을 먹고 나간 수영장에서 그녀와 아이들을 또 만났다. 아이들은 워터 슬라이드를 타고 내려와서는 꽤 오래 잠수를 했다. 당시 수영을 못했던 우리 아들에 비해 물에서 자유롭게 수영하고 잠수를 하는 다섯 살 꼬마가 참 대단해 보였다.
"Wow! You are a good swimmer. Excellent!"
직업정신을 감추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감탄을 보내고 있는데 건너편에 있던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Hello! Your English is good. Where did you learn that?"
아이들에게 딱 세 마디만 했을 뿐인데 영어를 잘한다니 그녀는 칭찬에 후한 사람이었다.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보니 그녀는 역시 리액션도 크고 아이들에게 칭찬할 때도 진심을 다했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소개했고 사각형의 수영장에서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테스였다. 테스는 미공군 검사로 일하는 남편 데이비드와 함께 다섯 살 쌍둥이 남매인 타이와 맥신을 키우며 오산 공군 부대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괌에서 재판이 있는 남편을 따라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왔다고 했다. 그녀는 밝고 포용력 있는 성격이라 아이들과 그녀 곁을 조용히 지키는 데이비드와 잘 어울렸다.
나는 30대, 테스는 50대였고 국적도 달랐지만 다섯 살 아이를 둔 엄마라는 공통점 하나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녀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고 기분 좋게 해주는 능력이 있어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해도 언어의 장벽이 느껴지지 않았다. 테스가 같이 식사를 하자고 먼저 제안한 덕분에 괌에서 체류하는 4일 내내 우리 가족과 테스가족은 여행을 함께 온 가족처럼 붙어지내며 식사를 하고 물놀이를 즐겼다.
육아에 서툴렀던 30대의 나와는 달리 그녀는 쌍둥이 남매인 타이와 맥신을 능숙하게 대하고 훈육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전 결혼에서 벌써 아이를 셋이나 키우고 혼인까지 시킨 육아 고수였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아이들이 떼를 쓰려고 할 때는 단호하다가도 놀아줄 때는 신난 다섯 살 아이처럼 변했다. 몸으로 놀아주는 건 늘 남편에게 미루던 내게는 그 모습이 참 신선했다. 오죽하면 우리 아들이
"엄마도 저렇게 좀 놀아주세요." 하며 귓속말을 할 정도였다.
그녀의 아들 타이는 호텔에서 이동할 때면 우리가 모두 지나갈 때까지 문을 잡아 주었다. 문을 잡아줄 때 타이의 표정은 일행을 책임지는 여행가이드보다 더 진지했다. 다섯 살 소년이 보여주던 매너는 달콤하고 대견했다. 수영장에서도 잠수를 두려워하는 아들에게 "Try, try. You can do it." 하며 용기를 주던 모습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이의 아빠 데이비드는 착하고 배려가 넘쳤고 엄마 테스는 늘 밝은 에너지를 뿜었다. 테스와 데이비드를 보면서 타이의 매너와 고운 심성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테스 부부와 우리는 쌍둥이들과 우리 아들을 키즈 스쿨에 맡기고 호텔 앞 해변으로 갔다. 딸아이가 어려서 아직 스노클링을 같이 하지 못해 우리 부부가 스노클링을 할 때 테스 부부가 딸을 봐주었다. 테스 부부 덕분에 우리는 단둘이서 스노클링을 하는 호사를 누렸다.
우리 가족은 3박 4일의 여행을 마치고 먼저 한국에 돌아와야 했고 재판이 남은 테스 가족은 일주일 정도 더 머물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타이가 우리 아들을 그리워하며 "I miss my friend."를 입고 달고 있었다고 했다. 두 아이의 진한 우정은 언어와 국적을 초월했다.
우리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인사동 전통 음식점에서 만났고 테스가 오산 공군 기지로 우리를 초대하기도 했다. 오산기지에 갈 때 테스가 좋아하는 김밥을 싸갔다. 테스는 내가 싸간 김밥을 간장에 찍어 먹었다. 미국인들이 짜게 먹는 건 알았지만 김밥을 초밥처럼 간장에 찍어 먹는 모습은 새로웠다. 내가 싸간 김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우리 음식 문화를 알린 요리 외교관이 된 것처럼 뿌듯했다.
괌에서 처음 만난 지 3년이 지나 아이들이 1학년이 되었을 때 테스가족은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연락을 해왔다. 우리 가족은 테스 가족과의 작별인사를 위해 오산 기지를 다시 방문했다.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고 특히 한국화를 좋아하던 테스를 위해 당시 한국화 스승님의 그림을 사서 테스에게 선물했다. 테스는 기뻐하며 액자 뒤에 짧은 편지와 내 이름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선물에 특별한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 하는 테스의 마음이 고마웠다.
테스는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적적하여 딸아이 한 명을 입양했다고 했다. 친구 딸이 미성년자인데 아이를 낳게 되었고 테스가 친구 딸이 낳은 아이를 입양한 것이다. 눈망울이 수정처럼 크고 맑은 캔자스는 세 살 된 흑인 여아였다.
그 당시 나는 아들이 1학년에 입학하면서 휴직을 했는데 테스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니 외로워서 아이를 입양했다. 12시가 좀 넘으면 하교하는 한국의 초등학교 1학년에 비해 입학과 동시에 3시 이후까지 수업을 받는 미국 초등학교 시스템의 차이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거다. 하지만 여덟 살 쌍둥이를 키우면서 세 살 된 딸을 입양한다는 건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거기다 피부색도 다른 아이를 입양한 것을 보고 테스가 정말 마음이 큰 여자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친한 친구의 딸이 낳은 아이를 입양했으니 그 친구와 친구의 딸은 얼마나 안심이 되었을까. 테스처럼 배울 점이 많은 친구와 알게 된 것이 참 감사했다.
당당하게 소신대로 행복을 쌓아가던 테스 부부와 쌍둥이들. 이제 타이도 스무 살 청년이 되었을 텐데 얼마나 멋있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인사동에서 만났을 때 태권도를 배운다며 우리에게 때때로 절도 있는 품새를 보여주던 타이가 청년이 된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태권도를 좋아하고 한국을 좋아하던 소년 타이와 수줍은 소녀 맥신, 에너지 넘치던 테스와 조용하게 배려하던 데이비드는 지금 어디에서 행복을 쌓고 있을까.
그들 덕분에 우리의 3박 4일 괌여행과 테스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은 다시 못 올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기억해 보면 행복한 순간은 너무나 많다. 단지 잊고 살아갈 뿐. 상대방을 위한 선의와 진심만 있다면 어디서든 행복한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지않을까.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한 줄 요약 : 상대방을 위한 선의와 진심만 있다면 어디서든 행복한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