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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May 26. 2024

신발같은 가족

연결된 우리

⭕라라크루 [금요문장: 금요일의 문장 공부] 2024.05.24


[오늘의 문장]

세상에 매몰될 때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수행의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붙들어 주었다.

포기하지 않고 길을 모색하게 하는 힘은 나 자신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와 연결된 존재들로부터 온다.

그것을 인식할 때 우리는 안도하게 된다.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_류시화


며칠 전 감기 끝에 맞은 아침이 무겁게 가라앉더니 양쪽 관자놀이에 돌덩이 두 개를 올려놓은 것만 같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에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그것을 가지고 걸어보기로 했다.


호수공원 둘레길에서 몇 걸음을 걷다 문득 맨발 걷기가 해보고 싶어졌다. 이 길을 10년째 걸으면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시도를 이유 없는 호기에 떠밀려 양말을 벗었다.

 알을 깨고 처음 세상에 나온 새가 이제 막 여린 발바닥을 땅에 짚은 것처럼 발끝에서 낯선 통증이 전해왔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발바닥에 작은 돌과 흙이 굳은살을 뚫고 짓누르는 거 같은 느낌이 신경을 통해 전해진다. 자연히 속도를 낮추고 보폭도 줄이고 걸어가는 길을 대하는 태도가 겸손해진다. 발끝으로 온 신경이 집중되니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나를 앞서가는 사람에게 괜한 승부욕이 발동하여 더 빨리 가려고 하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온전히 내 속도를 가지게 된다.


걸을수록 발바닥이 더 아파왔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 방금 전까지는 견딜만하더니 이제 신발이 신고 싶다. 좀 쉬다 갈까, 이제 그만 돌아가야 하나. 신발을 신고 걸을 때는 몰랐는데 새삼 신발이 소중하다.

맨발로 길을 걸으니 발바닥 아래의 모든 허들을 피부로 직접 느껴야 했다. 보송보송한 쿠션이 막아주는 밑바닥이 없으니 그야말로 밑바닥을 체험한다.


갑자기 가족들이 보고 싶어졌다. 내가 돈을 벌지 않아도 마음이 울적한 날이 있어도 나의 경제적, 심리적 쿠션이 되어주는 신발 같은 가족이 있어  힘차게 걸을 수 있는 날이 많았다. 때론 발등을 조여 오는 압박감이 답답하기도 하고 신발에 쓸려 뒤꿈치에 상처가 나기도 했지만 발을 감싸주는 신발이 없었더라면 상처가 아물기보다 또 다른 상처를 만나 덧났을게다. 어느새 신발이 주던 압박감은 신발이 나에게 크기를 맞춰 늘어나주면서 편안함으로 바뀌었다.


영어학원에서 20-30대 친구들이 결혼은 고민 중이고 아이를 낳는 건 생각도 안 한다고 했을 때 그럴 수도 있다고 수긍했다. 혼자 사는 것도 괜찮다고, 나도 다음 생에는 결혼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이젠 그들에게 서로의 신발이 되어줄 가족을 만들라고 말해주고 싶다. 가끔은 내 발보다 신발을 아끼느라 잠시 나를 잊기도 하지만 어느새 나를 보호해 주고, 나를 세상 속에 흔들림 없이 서있게 해 주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쿠션 좋은 신발 같은 가족을 만들어 보라고.


미국 퓨 리서치센터에서 선진국 17곳을 대상으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든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주고 보기에서 가치를 고르게 했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고른 것은 건강과 가족인 반면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material well-being)를 선택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한 교수가 강의 시간에 이 질문을 보여주고 앞에 앉은 각 나라의 학생 4명에게 의미 있는 가치를 고르라고 했는데 한국학생만이 물질적 풍요를 골랐다는 사실이다.


교수는 그제야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한국인만이 물질적 풍요를 고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한국 학생은 "우리는 혼자서 잘 살기 위해서 물질적 풍요에 의미를 두는 게 아니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물질적 풍요에 중요한 의미를 둔다."라고 했다. 미국인들은 "나는 가족을 가장 우선시하지만 부자가 되고 싶어."라고 말하는 반면 한국인들은 가족을 위해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가족을 부하기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면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살았던 부모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의 행복이다. 가족을 위한 책임과 희생은 부담스럽다며 혼자 살겠다고 말하는 젊은 세대에게 물질적 풍요라는 가치가 어떤 서사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에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세상에 나가 걸어야 할 때 나의 신발이 되어주는 가족이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그 길에 수많은 자갈과 나뭇가지가 깔려 있어도 함께라는 생각이 외롭지 않게 한다. 이름 모를 우울감이 몸과 마음을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내려앉게 만들어도 나를 보호해 주는 쿠션 같은 존재들로 인해 다시 물기를 털고 일어설 수 있다. 가족이라는 연결고리를 인식하는 순간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블루베리 케잌 한 조각을 사서 7500원의 사치를 부렸다. 케잌 삼키며 우울도 목구멍으로 라졌다.

한 줄 요약 : 내가 세상에 나가 걸어야 할 때 나의 신발이 되어주는 가족이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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