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30화를 쓰는 동안
삶이라는 우주 안에서
마음껏 사색하며 유영할 수 있어 좋았다.
삶을 사유하는 건
삶이 건네는 좋은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내 마음의 크기를 키우는 일에 시선을 두는 일이었다.
현실의 땅을 밟고 미래의 시선에서 바라보며
조각을 이어 붙여 삶을 완성하는 과정이었다.
어떤 조각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것이
사유와 사색의 힘에 따라 달라졌다.
현상은 잘못된 인식에 의해 자주 왜곡되고 변질되었다.
고착화된 생각덩어리인 인식에 의해
잘리고 부서진 현상의 조각 중
한 조각을 선택해서 내 삶이라는
미완성된 예술품을 완성할지 결정해야 했다.
왜곡되어 깨진 조각은 조각자체가 뒤틀려 있어
내 삶에 아름답게 맞춰지지 않았다.
맞지 않는 조각을 억지로 끼우려고 하니 괴롭고 힘든 건 당연했다.
나를 바깥에서 바라보며 인식에서 벗어나게 하는
의식에 의해 분절된 조각은
깨진 조각이 아니라 깨어난 조각이다.
의식에 의해 유약이 칠해지고 오묘한 빛깔을 지닌 조각은 삶을 멋지게 만드는 한 부분이었다.
빛나는 조각 하나가 맞춰질 때 내 삶은 조금씩 아름다워진다.
의식에 의해 해체되어 새롭게 변신한 조각을 맞추는 것은 삶을 우주로 품은 자의 특권이다.
삶과 생!
나에게
삶이 사색하는 것이라면
생은 살아가는 것이었다.
삶이 사유하는 것이라면
생은 살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삶과 생을 분리하지 않는다.
나에게 삶은 곧 생이요. 생은 곧 삶이다.
과거의 나를 지키기 위해 살려하지 않고
과거의 나를 버리기 위해 살고자 한다.
과거 인식 속의 나를 버리는 순간,
영혼 속 의식이 관장하는 나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직 의식의 힘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아니, 어느 순간 내게 왔다 갔는지도 모른다.
내게 오래 머물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을지도.
현실은 의식을 시험하는 일의 연속이다.
나를 깨우는 의식은 시험을 통해서 키워진다.
삶에서 오는 일을 어떤 마음으로 맞을지 결정하는 내가
옳은 마음을 가지도록
삶을 사색하고 산책하는 일을 계속한다.
삶을 사유하는 에필로그는 또 다른 프롤로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