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흔을 갓 넘긴 사촌동생이 교통사고로 생사를 달리했다.
내 기억 속 사촌동생은 아직도 열 살의 아이다.
한 여름날, 할아버지 집 거실에서 개구쟁이 동생은 해맑게 웃으며 놀고 있었다.
환한 웃음에 초승달로 변하던 그 아이의 눈을 다시 바라보고 있었다.
고모에게 위로의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위로의 말이 되려 상처가 될까 봐
공감이 칼이 되어 마음을 벨까 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쓰는 사람으로 산다고 말하면서
이럴 때 힘이 되는 말 한마디 찾지 못하는 내가
무능하게 느껴졌다.
철학책을 읽으며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자연의 원소로 다시 돌아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슬퍼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이렇게 가족을 갑자기 떠나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참척의 고통을 당하고 글을 쓰며 슬픔을 극복하려 했던 박완서 작가는 에세이 '나를 닮은 목소리로'에서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 참척을 당하고 가장 힘들었던 일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원망을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거였다.
슬픔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게 원망과 치욕감이었다.
그때 만난 어떤 수녀님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 내가 뭐관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나에게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여긴 것일까. 그것이야말로 터무니없는 교만이 아니었을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면
순간, 순간이 못을 밟고 지나가는 고통일 것이다.
장자는 이런 큰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나는 걸 '하늘님의 매닮에서 풀려나는 것'이라고 했다.
운명과 변화에 저항하지 않고
'때'를 편안히 맞아들일 때,
매달린 줄, 즉 자연이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있어도 마음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집착이 끊어진 자리에서는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도 하나라는 말이다.
박완서 작가가 말한 '교만'과 장자가 말한 '매닮'에서 벗어난다면
삶과 죽음을 순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늘 나의 죽음은 두렵지 않고
순리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죽음은 순리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가족의 죽음은 순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나를 바라본다.
모든 삶과 죽음이 나의 의지에 달려있지 않고
나의 관할이 아니라 자연의 관할이라면
그냥 순리라는 관할에 맡기는 것이
'겸손'이겠다.
삶과 죽음 앞에는
그저 순종하는 수밖에...
사촌동생이 사고가 난 후, 일주일 간 뇌사상태에 빠졌을 때
고모는 엄마에게
아들이 한순간에 떠나지 않고
일주일 동안 자신의 곁에 머물러 주었으니
아들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힘을 낸다고 하셨다.
아들의 마지막 일주일을 함께 하기 위해
병원으로 향하던 고모의 마음.
그 마음 앞에
나는 다시 한번 낮아졌다.
내 기억 속 해맑던 영혼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