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미소와 함께 주고받는 인사가
마음을 밝히는 메아리가 되어
마음 끝 수평선에 닿았다가
울림이 되어 다른 이에게로 갔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내가 먼저,
내가 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Hi. 00"
어떤 아이들은 입으로는 '하이'를 말하며
수줍은 '꾸벅 인사'를 한다.
어떤 아이들은 제법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며 당당한 '손 인사'를 한다.
둘 다 귀여운 건 매한가지다.
4학년 0반 준서는 매일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 나와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친다.
준서는 내가 "하이"하고 인사를 해도
"안녕하세요" 하며 '꾸벅 인사'를 하는 쪽이다.
축구 교실 단짝인 윤성이와 같은 반이 되었고
둘은 매일 복도를 어슬렁 거린다.
처음 영어 수업으로 두 아이들을 만났을 때
준서는 외계어를 듣는 듯한 표정이었고,
윤성이는 알아듣지만 관심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준서의 시선은 봐야 할 곳이 아닌
허공을 향해 있었는데
의도치 않은 '의식의 실종'으로 보였다.
영어라는 언어가 낯설고,
자신과 연결성이 없다는 생각으로 이루어진
단절의 귀마개를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과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장면에서 귀를 닫고 눈을 감는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은 소리 없는 스크린 화면 속 움직임일 뿐 일상과의 연결고리는 끊어진다.
그 순간, 유익한 발견이나 의미 있는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을 닫은 사람에게는 눈앞의 소중한 진리도 차창밖을 지나가는 풍경처럼 눈 깜빡 한 번으로 사라진다.
'의식의 창'을 열어야만 신선한 공기를 느끼는 감각이 살아나 운전하는 차를 멈출 수 있다.
준서의 '귀마개'를 벗게 해주는 것은 '의식의 창'을 여는 시작이었다.
"이번엔 준서가 해보자."
이름이 불린 준서는 고개를 들고 쌍꺼풀 없이 큰 눈을 깜빡거린다. 초록빛 필드 위에 있었을 공상에서 초록색 칠판 앞으로 돌아오는 교차점을 지나면,
준서는 아이들이 내뿜는 다양한 빛깔의 에너지에 정신이 아득해진 표정으로 주어진 과제에 순간적으로 집중한다.
다음 시간부터 준서는 매일 이름이 불린다.
"준서가 말해볼까?"
"준서가 따라 해 볼까?"
몇 주가 지나자 준서는 수업시간에
초록빛 세계로 자주 달려가진 않는다.
준서에게 말을 시킨다.
"준서 축구 좋아하는구나.
축구 잘하려면 집중력이 좋아야겠네.
열심히 배우는 태도는 너한테 스며들어서
축구 배울 때도 너도 모르게 나온다."
잠시 틈을 뒀다가 다시 말한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하고
멋지게 영어로 인터뷰도 해야지."
준서의 표정이 잠깐 심각해지다
다시 수줍은 봄바람처럼 웃음을 짓는다.
복도에서 다시 만난 준서에게
더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한다.
"Hi, 준서"
준서는 소금사막처럼 맑고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를 한다.
2학기가 되고 첫 받아쓰기를 하는 날이다.
내가 단어를 다 불러주고 나서도
준서 짝꿍 연서가 준서의 속도에 맞춰
준서가 못 쓴 단어를 불러주고 있었다.
준서는 고개를 숙이고 알파벳 하나하나를
씨앗을 심고 흙을 덮는 농부처럼 꾹꾹 눌러썼다.
채점된 시험지를 받은 아이들 대부분은
성취의 희열을 느끼고
일부는 아쉬움에 한숨 섞인 탄식을 내보냈다.
희열 속 탄식이 소다팝의 가스처럼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컵바닥에서 가스가 위로 올라와 통통 터지는
들뜬 분위기 속에 준서 짝꿍 연서가 손을 들며 말했다.
"선생님, 준서 100점 받았어요."
"진짜?"
읽는 것도 친구들의 도움을 받던 준서였다.
"준서 쉬는 시간 내내 연습했어요."
연서의 말에 아이들과 나는 동시에 "와" 하고
함성을 지르며 준서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선생님은 준서가 100점 받은 것도 좋지만,
준서가 열심히 노력했다는 게 너무 감동이다."
앞에 앉아있던 민지가
터울 많이 나는 누나가 막내 동생을
대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심지어 저번 시간이 단원 평가라서
놀고 싶었을 텐데, 쉬는 시간에 안 놀고 공부했어요."
아이들은 숲 속 옹달샘을 밝히는 햇살처럼
준서의 마음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준서는 기쁨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고,
아이들의 밝은 말풍선이 준서의 초록 세계에
햇살이 되어 떠 있었다.
다른 이의 마음을 환히 비추는 사람은
제 마음은 더 환히 비추는 빛을 품고 있을 것이다.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 덕분에
감동과 행복이 항상 함께 할 것이다.
준서는 민망한 듯 고개를 숙이면서도
입꼬리는 계속 웃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준서에게 물었다.
"준서야, 쉬는 시간까지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할 결심을 했어?"
"친구들이 도와줘서 했어요."
수줍어하며 친구들에게 은덕을 돌리는 것도 준서답다.
그날 수업에서도 준서 앞에 앉은 채연이는 준서의 책을 보며 준서가 놓치는 부분을 챙겼다.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준서의 마음이,
그런 준서의 속도를 존중해 주는 짝꿍 연서의 마음이,
노력하는 준서의 마음을 환히 비춰주는 민지의 마음이,
준서가 놓치는 배움을 잘 주워 담아 주는 채연이의 마음이
맑고 아름다워서
교실은 초록 샘터가 되고 아이들은 맑은 샘물이 되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힘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 밖에 모른다.
또한 자기 자신도 스스로 도전해 보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다.*
고백하건대,
나는 준서가 단시간에 집중해서
저런 성장을 일으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수업 시간 나의 시선은 준서에게로 향했지만,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예단했다.
그날, 준서는 나의 인식을 깨준 망치가 되어주었고,
아이들은 서로의 온기를 채워준 햇살이 되어주었다.
나도 몰랐던 준서 내면의 힘을
준서 자신은 알아냈다.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힘이
얼마나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의 마음에서 시작된 도전이
어떤 근사한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자신만이 아는 것이었다.
*자기 신뢰철학, 랄프 왈도 에머슨
*사진출처 : pinterest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