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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장 친절한 사람

by 리인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내가 자라온 가정을,

나의 토양이 되어준 부모를

바라보는 렌즈를 투명하게 하는 것이 첫 발걸음이다.


나를 향한 '연민 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기억은 상처로 물든 붉음이고,

사건은 아픔으로 퇴색된 낡음이다.

<삶의 모든 순간은 나를 위해 찾아온다> by 근아작가님

암전 된 극장에 앉아 '부모님'이 주인공인 영화를 관람한다.

당신이 서 있던 자리와 말과 행동을 따라가 본다.


당신들은 언제나 현명하고 친절해야 하는 나의 엄마, 아빠가 아니었다.

우리가 부모가 됐을 때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한 푼 쥔 것도 없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두려운 젊은이였고,

가족의 생계와 생존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는 불안한 사회인이었다.


부모가 처음이고, 소통에 서툰 관계의 초보자였다.

우리에게 항상 커 보였던 당신들도 책임을 등에 짊어진 미약한 존재였다.

다만 책임에 존재가 가려져 마음의 소리가 묻혔다.

소리를 내는 방법을 몰라

때론 그릇된 방법으로 항변할 뿐이었다.


지워진 책임과 의무를 벗기고 한 존재로 당신들을 바라보면

당신들의 몸이 얼마나 작고 여렸는지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내 책에 실린 근아 작가님의 목탄화

주인공의 감정에 공감하고, 마음을 울리는 장면이 다가온다.

그 과정을 앞당기는 방법이 당신들이 주인공인 영화의 감상문을 쓰는 것이었다.


내가 주인공인 글은 나에 대한 애정과 연민으로

주변 인물과 사건을 원망으로 몰아갈 수 있다.

부모가 주인공인 영화는 연민이 나에게로만 향하지 않는다.


부모를 이해하는 것은 부모를 위한 것이 아니다.

부모의 삶을 이해하지 못해 원망이 들어선 내 마음을 위한 것이었다.

가족을 향한 작은 미움의 조각을 삼키는 것이,

미세한 원망의 작은 가시가 걸린 것이

내 삶의 윤택을 방해할 균열을 가지고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부모를 이해하고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은 그들을 위한 선심이 아니었다.

나를 위한 정심이었다.

그 다난한 삶을 이해하려면 긴 장편 영화를 관람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을 듣고 보고 쓰는 과정은 우리가 삶의 폭과 깊이를 넓히는 일이었다.


부모를 향한 원망과 미움의 렌즈를 벗은 사람은

삶을 향한 흐릿한 렌즈도 벗긴 것이다.

맑은 시야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깊은 속내까지 보게 한다.


부모를 이해하려고 했을 뿐인데,

삶을 이해하는 시선을 가진다.

내 책에 실린 근아 작가님의 목탄화

그가 날마다 옷을 갈아입듯이, 하루하루 생명 없는 환경은 벗어 버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머무름의 상태에서, 나아감 없이 서서 쉬고, 신의 섭리인 발전에 협력하지 않고 도리어 저항하므로 이런 성장은 갑작스럽고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자기 신뢰철학, 랄프 왈도 에머슨-


사건이 일어난 순간에 서서

자신의 감정을 내맡기며 머무름의 상태에 있지 않고,

스스럼없이 더 큰 나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 과정 속에서 환경은 족쇄가 아니라 성장이다.


오랫동안 연을 이어온 소중한 이들에게 출간 소식을 전하자

책을 쓰게 된 과정을 내게 물었다.

내가 책을 쓰게 된 과정과 그 속의 변화를 이야기하자

그들도 스스럼없이 마음에 품었던 상처를 꺼내 놓았다.

<삶의 모든 순간은 나를 위해 찾아온다> by 근아작가님

내가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듯

그들도 풀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울고 웃었고, 그 순간 한 뼘 더 자랐다.


그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는

힘들어 보이지 않고 편안했다.

홀로 품은 '가슴 시린 이야기'는 상처가 되어 곪지만,

함께 나눈 '나를 키운 이야기'는 성장이 되어 움튼다.


자신과 부모를 멀리서 바라보며 '연민을 품은 해석가'가 되어 그들의 순간을 해석했다.

상처가 사라진 곳에 희망이 돋고,

고통이 쓸고 간 곳에 새빛이 비춘다.


나와 가족의 삶에 대한 재판관이 아닌 해석가가 될 때, 비로소 내게 가장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삶의 모든 순간을 나를 위해 찾아온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직장이나 지역 도서관의 희망 도서 신청도 저에게 큰 빛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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