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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느 Jan 16. 2023

쫓기며 부대끼며 성장하며

아홉 번째 | 연말 스픽에서 살아남기

AI튜터 페이지 오픈을 앞두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작업은 바로 '소개 영상' 만들기였다. AI튜터의 특성상 미리 랜딩 페이지에서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그 경험을 개발적으로 구현하기에는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경험을 대신할 만큼 직관적이고도 매력적인 설명 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처음엔 랜딩 페이지 중간에 들어가는 영상 소스 중 하나이겠거니 하고, 기획 일정을 느슨하게 잡았는데 그게 화가 되었다. 랜딩 페이지 기획을 하다 보니 이거 대충 만들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서비스의 첫인상이고, 유저들에게는 전혀 정보가 없지 않은가?

나는 이 사실을 팀에 솔직하게 공유했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별 것 맞는 것 같다. 제대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일주일뿐이다. 일주일이면 랜딩 페이지 디자인 하고 퍼블리싱하고, QA 하기에도 타이트한 시간이다'


매번 나의 무리한 일정과 요구에도 너그럽게 '가능가능'을 말해주던 근희도 이번엔 웃음기가 사라졌다.

근희는 이제 곧 릴리즈 되는 옥외 광고 시안과 랜딩 페이지 디자인 일정만 해도 리소스가 터져 나갈 지경이었고, 디자인 인턴이었던 정민님은 근희를 대신해 광고 크리를 혼자 감당하고 있던 차였다.


부랴부랴 외주를 알아보기 시작했지만 때는 연말이었고, 프리랜서들은 휴가를 떠났거나 마감 기한이 짧다는 이유로 돈을 얹어서 준다는 나의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직접 만들기로' 결정했다.


디자이너가 시퀀스 하나하나 고민할 필요 없이 기획자인 내가 모든 시퀀스를 기획하고, 근희는 디자인 프레임을 잡아주고, 정민은 그걸 바탕으로 모션&영상 작업을 하기로 했다. 바쁠 때일수록 칼 같은 분업은 큰 힘이 된다. 나는 그 날밤 바로 앉은자리에서 밤새 시퀀스를 짰다. 다행히 좋은 레퍼런스들을 많이 아카이빙 해둔 덕분에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그 다음날 아침 우리는 완성된 시퀀스를 들고 모여 한 컷 한 컷 뇌싱크를 마쳤다.

'여기서는 마이크가 우왕우왕 했으면 좋겠고요. 스코어는 또르르르 올라가서 쾅하고 강조 모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등 각종 의성어 혹은 외계어가 난무하는 싱크를 맞추고 나서야 우리 셋의 머릿속에는 공통된 하나의 영상이 만들어졌다. 이제 그걸 근희와 정민이 현실로 만들어줄 타이밍이었다.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정민님의 활약이었다. 정민님은 스픽에 오기 전 영상 프로덕션에 있었기 때문에 모션과 영상 작업에 능통하다는 걸 알았지만 그 모든 시퀀스가 모션의 옷을 입고 나오기까지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정민님이 자신의 역량과 스타일이 잘 맞는 영상을 만나니 정말 물 만난 고기처럼 눈을 반짝이며 날아다녔다. 처음 계획대로 이 영상을 외주를 줬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싶을 만큼 정민님의 영상은 우리의 마음에 쏙 들었고, 우리는 점차 퀄리티를 높여나갔다.


영상에 삽입되는 성우 목소리도 처음엔 내부 팀원에게 부탁했었다. 한 번의 녹음, 두 번의 녹음, 세 번의 녹음.. 영상의 퀄리티를 조금이라도 해친다 싶으면 다시 했다. 그러고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국 근희는 크몽에서 전문 성우를 섭외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음 날 우리에게 성우 녹음 파일이 들려져 있었다.


성우 녹음 파일까지 얹히니 제법 '신제품 소개 영상' 같아졌고 우리는 샌프란 팀에 공유했다. 샌프란 팀에서는 듀*링고가 만든 게이미피케이션 영상에 부엉이를 얹은 영상을 보고 cool하다며 부러워하던 참이었다. 그때 우리가 샌프란 팀에게 'I think our video is much cooler' 하며 툭 공유한 영상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고, 모두가 마음에 들어 했다. 코너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한다며 general 채팅 방에 공유하기도 했고, 우리가 만든 영상은 결국 앱의 가이드 영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안다. 누군가에게는 부족해 보일 수 있는 이 영상보다, 이 영상 하나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쏟은 피땀눈물, 그리고 그 추억들이 오래 남는다는 것을. 팀원의 성장을 목격하고, 팀원을 더 신뢰하는 경험은 우리가 회사에서 쌓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자 영광이라는 것을.


모든 프로젝트가 우당탕탕 흘러가고, 시간은 촉박하기만 했던 연말, 우리는 그렇게 또 한 번 부대끼며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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