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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Oct 20. 2023

음악의 아버지는 왜 아버지일까?

요한 세바스찬 바흐


몇 년 전 아재개그로 시작해 봅니다.


Q. 바흐가 울면 어떻게 울까요?



정답: 바흐흑 바흐흑



그럼 이번에는, 바하가 웃을때는 뭐라고 웃을까요?

정답 : 바하하 바하하하하


……. 썰렁했나요…


  바흐라고도 바하라고도 하는 이 분을  모르시는 분은 아마 안 계실 겁니다. 클알못도 초딩도 유딩도 아는 위대한 그 이름, Johann Sebastian Bach, 요한 세바스찬 바흐. 우리는 이 분을 일컬어 흔히 '음악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체 왜! 이분이 음악의 아버지인지 생각해 보셨나요?

이 분이 대체 왜 음악의 아버지인지 모르고서, 우리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러서는 아니되겠지욧!


사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 '음악의 어머니 헨델', '악성 베토벤', '피아노의 시인 쇼팽' , '가곡의 왕 슈베르트' 이렇게 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들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대부분 다 일본에서 붙여진 표현입니다. 일본인들의 서양 고전 음악 사랑은 엄청난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이 분이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지 그 원점을 알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오늘은 간단히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


  1685년 3월 21일, 이 지구상의 모든 음악가 집안들 중에서도 가장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는 대 음악가계(家系)에서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탄생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바흐의 아빠도 음악가, 할아버지도 음악가, 아들도 손자도 음악가인 집안입니다. 음악사에서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고조할아버지 무렵부터를 이 대 음악가 집안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는데요, 이 집안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약 200여 년에 걸쳐서 50명이 넘는 걸출한 음악가들을 배출해 냅니다. 그 후손들은 지금도 독일과 네덜란드 등지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TMI이지만 바흐는 다산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분은 두 번을 결혼했는데 육촌 누나이자 첫 번째 부인이었던 마리아 바르바라(Maria Barbara Bach,1684.10.20~1720.7.7)와의 사이에서는 일곱 명의 아이를 낳습니다. 그리고 결혼 14년 만에 사별을 하지요. (14년 동안 아이를 일곱 낳고 돌아가시다니.... 부인은 얼마나 애만 낳고 기저귀만 갈다가 돌아가셨을까요... 애를 키워보니 이런 게 다 안쓰러워....)


 그리고 바흐는 재혼을 하는데, 둘째 부인 안나 막달레나(Anna Magdalena Bach, 1701.09.22~1760.2.22)와의 사이에는 무려 13명의 아이를 낳습니다. (바흐 정력가 설....)  지금과는 달리 많이 낳고 또 많이 죽기도 하던 시대였는데요, 총 20명의 아이들 중 절반은 사망을 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10여 명의 입들을 먹여 살리려면 금전적으로도 많은 돈이 필요했겠지요. 실제로 바흐는 평생을 바쁘고 근면하게 생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보다 쉽고 단순하고 감정적인 선율의 음악들이 주류를 이루었었고 견고하게 만들어진 건축물처럼 치밀하게 짜인 바흐의 음악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일반 대중에게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생전에는 지금처럼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바흐는 평생을 그저 묵묵히 작곡을 하고, 궁정 악단과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고 지휘하고, 또 어린 음악가들을 가르치는 일들로 투잡 쓰리잡을 하면서 성실하게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바흐 사후에 멘델스존이 잊힐 뻔했던 바흐를 세상밖으로 끌어내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1750년, 바흐는 백내장 수술을 받은 후 심한 염증반응을 일으켜 사망하게 됩니다. 음악사에서는 바로크시대를 1600년 정도부터 1750년, 대략 150년 정도의 역사로 분류하는데요, 이탈리아의 몬테베르디에서 시작한 바로크 시대가 바흐 사망과 동시에, 1750년 그 문을 닫습니다. 즉, 거대한 음악사에서 바흐는 바로크라는 한 시대를 종결시킨 음악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왜, 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를 이제부터 살펴봐야겠지요.




음악의 구약성서 - 평균율과 클라비어 곡집


평균율과 클라비어 1권, 자필보의 표지
평균율과 클라비어 곡집 제1권 중 푸가 제2번



바흐는 평생 1000곡이 넘는 곡을 남겼는데요,  1722년과 1742년에는 각각 <평균율과 클라비어>라는 두 권의 책을 완성합니다. 이 곡은 24개의 조성에 각각 프렐류드(전주곡)와 푸가를 작곡해 총 48곡으로 구성된 책입니다.


흔히들 이 책을 일컬어 음악의 구약성서라고들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약 내일 당장 지구에 대재앙이 와서 지금까지 인류가 구축해 온 이 세상의 모든 악보와 모든 음악이 사라진다고 합시다. 그때 음악이 없어져 슬피 우는 우리 인간들 앞에 하느님이 떡 하고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엣헴, 내 가엾은 너희 인간들을 위해 오직 단 한 권의 음악책만을 허락하겠노라'  

그렇다면 우리 인류는 어떤 책을 골라야 할까요?


혹자는 고민 없이 바로 이 바흐의 평균율과 클라비어를 골라야 할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왜냐고요? 그동안 인류가 구축해 온 그 모든 음악이 깡그리 몽땅 사라진다 하더라도(아 상상만 해도 통곡각...) 만약에 이 책만 있다면, 인류는 똑같은 음악의 역사를 다시 재건할 수 있을 테니까요.


바로 그 책이 이 평균율과 클라비어입니다.


클라비어(Klavier)란 독일어인데 피아노의 할아버지 격인 현이 달린 건반악기들을 뜻합니다. 오르간 쳄발로(하프시코드) 같은 악기들이 모두 클라비어에 해당하지요.  

1680년경의 볼로냐 쳄발로 (사진 출처: 도쿄 민음음악박물관 https://museum.min-on.or.jp/collection/detail_G00239.html)



평균율은 도레미파솔라시도의 8개 음에 각각 반음씩을 더한 열두 개음, 거기에 장조와 단조를 붙여서 스물네 개 조성. 쉽게 말해 이 스물네 개 조성 이 외의 수많은 다른 음들은 오류로 처리한다,라는 개념이지요.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쓰이고 있는 평균율의 개념이지만, 바로크 이전까지는 이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순정률이 쓰였습니다 순정률이란 도레미파솔라시도로 나눌 수 없는, 그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음을 음으로써 인정을 하는 개념이지요.


바로크 시대에 등장한 평균율이라는 개념을 확립시키고, 평균율이 보여줄 수 있는 그 모든 가능성과 그 기술을, 그것도 아름답게 제시해 낸 책이 이 평균율과 클라비어입니다. 그 역사적 가치는 실로 어마어마하여서,  바흐가 없었더라면 몇백 년이 걸렸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외에도 바흐의 업적은 어마무시합니다. 두 개 이상의 독립적인 선율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대위법과 푸가의 대가이기도 하고요, 성악 위주의 음악이 주류이던 시대에 다양한 독주와 합주곡들을 작곡하여 기악곡의 엄청난 발전을 이끌어낸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코랄(찬송가), 미사곡 등의 교회음악을 뛰어난 음악성을 갖춘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물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지금도 너무 사랑하고 자주 연주되는 무반주 첼로 조곡,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플루트 소나타와 파르티타.. 각 악기들의 바이블과도 같은 곡들을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바흐 이전까지는 반주 악기에 지나지 않던 악기들이 바흐에 의해 독주곡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려지며 여러 악기들의 가능성을 제시한 분이기도 하지요.

정말 한 인간이 이루어낸 업적이라고 하기에는 그야말로 어마무시한 업적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양 고전 음악의 기틀이 이 분 손에 의해 확립이 된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를 일컬어 음악의 아버지라고 한답니다.

알겠느냐~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마우리치오 카겔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음악가는 있어도 바흐를 믿지 않는 음악가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클로드 드뷔시는 '바흐는 음악의 주님이다. 모든 작곡가들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에게 기도하라'라고 했지요. 또한 브람스는 '바흐를 공부하라. 거기서 모든 것을 찾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바흐의 음악들은 결코 낭만주의 음악들처럼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는 음악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평생을 음악에 바쳐 온 노년의 거장들에게도 바흐는 너무도 깊고 어려운 존재입니다. 원대한 우주와도 같은 바흐의 음악들 앞에 서면, 때로는 한낱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미물인지를 느끼게도 하지요. 인간 세상사의 수많은 감정들, 분노와 번뇌와 어리석음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를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 동네 카페의 테라스석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데요, 아재개그로 오늘의 글을 시작했던 제 마음까지 왠지 경건하고 차분하게 만드는 것이 음악의 아버지의 힘인가 봅니다. 관세음보살 아멘.


수많은 연주들이 있지만, 많은 분들 좋아하시는 글렌굴드의 연주로 골라봤습니다.


그럼, 행복한 가을날 되시기를 바라며 다음 글에서 또 뵈어요!


J.S.Bach The Well-Tempered Clavier-Book #1 & #2 [ G.Goul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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