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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Oct 21. 2023

음악사의 소오름 돋는 평행이론?!

바흐와 헨델의 인생 이야기


지난 글에서 아버님 이야기를 하고 나니 


https://brunch.co.kr/@9d4e06de5e20474/39


왠지 어머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군요....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교과서에서 아버님 옆에 나란히 계신 그분, '음악의 어머니, 헨델'  

우리 어머님도 아닌데 매우 친근하게 느껴지는 그 이름입니다.  


그게 바로 나요~  George Frideric Handel (1685 ー1759)


엄근진 아버님 Johann Sebastian Bach, (1865~1750)

바흐와 헨델은 서양 음악사에서는 쌍벽을 이루는(!) 슈퍼스타이지요. 보기 좋게 늘어진 이중턱과 당당하고 정겨운 풍채... 를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둘 사이에는 소름 돋는 평행이론이 존재한다는 사실 아셨나요?!   




출생과 죽음 

두 사람은 일단 같은 독일땅에서, 같은 1685년에 태어난 동갑내기 음악가입니다.  바흐는 1685년 3월 21일 아이제나흐에서,  헨델은 1685년 2월 23일 할레에서. 헨델이 한달정도 형님이군요! 

 

그리고 놀랍게도, 이 둘은 존 테일러라는 희대의 사기꾼에게 백내장 수술을 받은 후 사망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소오름~ 


나 불렀소?   - John Taylor (1703 ~ 1772)


이분이 바로 존 테일러. 역사적으로 악명 높은 돌팔이 의사십니다. 

영국 출신인 존테일러는 영국 국왕 조지 2세의 궁정의사이기도 했는데요. 1885년 발간된 <영국인명사전>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당시 전 유럽에서 이름난 안과의였지만, 실은 화술과 자기 PR능력이 엄청난 뻥쟁이 사기꾼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유명세를 바탕으로 스스로가 교황과 왕실의 전속 의사임을 선전하며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전 유럽 왕궁을 돌아다니며 회진을 합니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바흐도 헨델도, 이 인간에게 백내장 수술을 받은 후 실명에 이르게 되고, 끝내 사망하게 됩니다. 바흐는 1750년에 독일땅에서, 헨델은 그로부터 9년 후인 1759년 영국 땅에서. 

돌팔이 의사 하나가 인류의 문화 유산과도 같은 대 음악가를 둘씩이나 저세상으로 보내다니. 우연일까요, 운명일까요. 역사에서는 때로 소설이라고 해도 믿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니까요. 


이런 소름 돋는 공통점들이 있지만, 실은 매우 대조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음악계의 금수저와 흙수저? 

지난 글에 이야기했듯 음악사에 전무후무한 엘리트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바흐, 그는 자연히 어릴 때부터 가족들에게 음악을 배우며 음악에 둘러쌓여 자라납니다. 

그에 비해 헨델은 집안의 돌연변이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3대가 음악을 해야 성공하는 음악가가 나온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사실 우리가 알만한 음악가들은 음악가였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으며 재능을 꽃피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음악의 어머니 헨델은 예외지요. 헨델의 아버지는 외과의사 겸 이발사였는데 무려 63세에 헨델을 낳았습니다. 헨델은 나이 드신 아버지의 유언대로 법대에 진학하지만 돌연변이와도 같은 내 안의 넘치는 음악적 재능을 이기지 못하고 음악가가 된 케이스랍니다.   



내향형 인간 바흐와 외향형 인간 헨델? 

그 시대에 MBTI 검사가 있었더라면.. 바흐는 아마 I, 헨델은 대문자 E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바흐는 독일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독일 밖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헨델은 보다 더 자유롭고 글로벌한 영혼이었어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하고 영국에서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작곡으로 성공을 거둡니다. 그리고 영국에 정착해 41세 때는 영국 국민으로 귀화를 합니다. 50여 년의 생을 영국에서 살며 왕과 귀족, 유럽 각계의 저명한 인사들과 교류를 하며 인싸로운(!) 인생을 즐깁니다. 



성실한 가장과 화려한 싱글 라이프? 

바흐는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 정력가 다산의 상징이었습니다. 두 번의 결혼을 했고 20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현생에서도 '아버지'로서의 책임이 막중했겠지요. 

하지만 헨델은 자유로운 영혼이었기 때문에, 평생을 무자식 상팔자,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만끽하며 살았습니다. 



사회적, 경제적 성공과 명성

바흐는 일생을 교회음악가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독일 시의회 소속으로 계약서를 쓰고 매달 월급을 받는, 지금으로 말하면 공무원과도 같은 생활을 한 사람이지요. 오르가니스트이자 궁정 악장으로서, 교회 칸토르로서, 또한 음악 교육자로서, 음악가로서 가능한 여러 역할 모드를 묵묵히 수행하면서도 비교적 근검하고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헨델은 아마도 근검 성실한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오페라라는 장르는 거의 유일하게 바흐가 건드리지 않았던 장르이기도 한데요. 헨델은 오페라의 세계에서 화려하게 등장하여 승부를 봅니다. 당시 유럽에서 오페라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결정판과도 같은 곳이었거든요. 돈과 명성이 모이는 곳이었죠. 추측컨대 아마 헨델은 야망도 출세욕도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또한 여러 에피소드들에서 미루어 봤을 때 헨델은 아마도 사업가적인, 돈에 대한 감각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음악과 사업을 연결시켜서 대규모 연주회를 열기도 하고, 대규모 오페라단을 경영하며 주식투자를 하기도 하고. 돈 많은 귀족 후원자들이나 시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것을 채울 수 있는 감각을 가진 세련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 더 돈을 많이 벌었을까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당대에 성공을 거머쥔 헨델은 돈맛을 아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딸린 가족이 없으니 혼자 누리고 살았겠지요.  (.. 거기 부러우신 기혼자 계시나요?)


야마네 고로라는 일본의 작가는 그의 저서 <비즈니스로 보는 서양음악사>에서 음악가들의 수입을 분석했는데요. 그의 계산에 따르면 헨델의 유산 총액은 추정액 약 2만 영국파운드(현재 가치의 한화로 환산하면 60억 원 정도?)라고 하네요? 그에 비해 바흐의 유산 총액은 969독일 탈러 (현재가치로는 약 7000만 원 정도)라고 하니, 헨델 가비얍게 승! 

 


음악적 차이 

같은 바로크 음악이지만  바흐의 많은 음악들이 교회라는 공간에 걸맞은 중후하고 경건한 음악들이 많습니다. 그에 비해 헨델의 음악들은 당시의 일반 대중에게도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악들이 많습니다. 아름다운 화성이 돋보이는 쉽고 밝고 명랑하고 화려한 느낌의 음악들이 많지요. 바흐의 음악보다 감정적으로도 풍부하고 왠지 이탈리아스러운 세련된 느낌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곡이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바흐도 대중적이고 세속적인 곡들을 작곡했고 헨델도 종교적이고 경건한 음악들을 많이 썼지만 두 사람의 작곡 경향의 차이가 그대로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별명에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서로 살아 생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출생과 죽음의 기묘한 평행이론 속에서, 사실은 생전에 단 한번도 서로를 만나지 못한 헨델과 바흐. 독일의 한 지방 음악가에 지나지 않았던 바흐는 상대적으로 더 명성이 있는 동갑내기 음악가 헨델을 늘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의 인생에는 두번의 찬스가 있었습니다. 1719년, 헨델이 영국에서 고향 할레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바흐는 그를 만나러 할레까지 갔지요. 그러나 이미 헨델이 떠난 후였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729년, 다시 독일을 방문한 헨델의 소식을 듣고,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던 바흐가 라이프치히의 자택에 와 주십사 헨델을 초청합니다. 그러나 헨델은 거절하지요. 바흐가 헨델을 만나고 싶어 했던 만큼, 인기 작곡가였던 헨델은 바흐라는 일개 지방 음악가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무리는 헨델의 할렐루야!

Royal Choral Society: 'Hallelujah Chorus' from Handel's Messiah


이 곡은 헨델의 메시아 중 2부 마지막 곡, 할렐루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오라토리오이자 헨델 필생의 대표작이지요. 2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성탄절과 부활절이 되면 전 세계에 울려 퍼지는 곡입니다.


이 곡이 작곡될 당시, 56세의 헨델은 경영했던 오페라단이 파산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뇌졸중으로 편마비를 겪고 있었습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노년의 헨델이, 마치 신내림을 받듯이 그의 필생의 역량을 쏟아 부어 약 20일 만에 완성한 곡입니다. 2시간 30분에 달하는 대곡이지요.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 끝부분 자필보, 1741년 9월 6일이라고 적혀있다. 


브람스는 40분짜리 교향곡 1번을 완성하는데 21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2시간 반짜리 오라토리오를 20일 만에 완성하다니, 경이로운 스피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헨델이 눈물을 흘리며 작곡하는 것을 하인이 목격했다고도 하지요. 헨델의 자필보를 보면 떠오르는 영감을 그의 손이 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 곡은 초연 두 달 후 유럽에서 대히트를 치고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헨델은 멋지게 재기에 성공합니다. 잉글랜드 신문사는 공연장이 복잡하니 여자는 폭 좁은 치마를 입고 남성은 칼을 차지 말라.라는 기사를 내 보낼 정도였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곡에는 재미있는 클래식계의 불문율과도 같은 것이 있답니다. 

총 2시간 30분짜리 대곡 중 할렐루야의 부분은 기립한 채로 듣는 것이 수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지요. 이 전통은 헨델 사후 25년, 메시아의 영국 공연 중 당시 왕이었던 조지 2세가 할렐루야에서 너무 감동을 받은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고 합니다. 왕이 일어나니까 신하들도 따라 일어나고, 다른 관중도 모두 기립해서 합창이 끝날 때까지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건 이후로 이 곡을 들을 때는 청중이 일어나는 게 관습이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 설이 실제인지 어떤지는 기록으로 확인된 바가 없지만,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클래식계의 유서 깊은 관례랍니다! 


그럼, 오늘도 일상의 기쁨을 발견하며 할렐루야! 를 외치는 하루 되시기를 바라며, 다음 연재에서 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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