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후회로운 순간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요즘 우울할 때 드는 후회 중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삶의 분기점에서의 후회들인데, 우선은 대학교 입학으로 돌아가 본다. 대학 입시에서 첫 해 실패를 겪고 두 번째 해에 어느 정도의 점수를 받았다. 심리학과, 의대, 경영학과에 합격을 했다. 합격한 의대는 신생 의대로 문과생에게도 입학의 기회를 주었다. 그 당시에는 학비 무료, 유학 기회 제공 등의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나와 엄마는 그 당시 명문대의 네임 벨류를 맹신했기 때문에 대학 랭킹이 높았던 심리학과를 선택했다. 의대를 갔더라면 평균 이상 수준의 수입과 사회적으로 상위 계층에 속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부족한 사회성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겪는 고뇌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생판 모르는 이공계 학문에 적응하여 의사 가운을 입을 수 있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수입과 별개로 끊임없이 환자를 대하고 피를 보는 일에 적응할 수 있을 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그 당시 서울대만을 목표로 했던 나에게 아빠의 의견을 내세우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가족 간에 대화가 부족했던 것인지 의대의 장단점, 서울대의 장단점에 대해 충분히 서로 논의해보지 못했다. 20세의 내가 그런 부분에 대해 옳은 판단을 했을지는 의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물론 내 아내처럼 늦은 나이에 다시 궤도를 수정하여 목표를 이룬 사람들도 많다. 스스로 가능한 여러 방향을 탐색하고 계획을 세우고 착수해가는 것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랬던 것인지 대학 입학 후, 회사 입사 후 궤도 수정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새로운 방향에 대해서 길을 만들어 가기도 하는 것을 보면 부럽고 그런 능력이나 용기가 없는 부분에 대해서 나의 부족함이 많이 느껴진다.
두 번째로 후회되는 일은 심리학과 공부로 유학생활을 이어가지 못한 점이다. 그 당시에는 5년 이상의 시간이 무한히 길게 느껴졌다. 30세에 군대에서 세상으로 나왔고 그 뒤로 5년 이상을 정해진 바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43세의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5년이 되었든 10년이 되었든 시작을 해보는 것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50세의 내가 43세의 나에게는 무슨 얘기를 할까? ‘그때도 늦지 않았던 때였어 50이 되도록 뭘 했니?’라고 하려나?
삶에서의 후회는 현재에 살지 못하고 과거에 머무르는 모습이다. 그렇게도 ‘지금 이 순간의 현실에 충실해라’라고 강조하는 경구가 많은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의 욕심이 현재 가진 것에 더불어 과거에 가질 수 있었던 것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고 보면 난 정말 욕심이 많은 사람인건가.
대학생활은 취미생활도 다양하게 하고 대학원 생활까지 하며 나름의 즐거움을 느꼈다.(4학년 때 사귀었던 여자 친구가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서 네덜란드 남자랑 바람이 나 충격을 받았던 것 제외) 회사 입사 후에도 공부에 대한 압박 없이 여행도 많이 다니고 즐겁게 지냈다. 그래도 직장이 있었기에 가정을 꾸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딸은 정말 사랑스럽고, 아내는 조금 무섭다.)
지금 나의 모습에 대해서 나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딸에게도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딸이 ‘나도 아빠처럼 살고 싶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개척하고 도전하며 살아야 한다. 너무 거창하게 나간 것일까? 수정하자면, ‘이렇게 살면 즐겁게 살 수 있어’라는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고 싶다.